"아리랑이 두 잔치판에 보이지 않는 손"
북한 '아리랑축전' 경위와 내용, 민간교류의 가능성
“아리랑은 민족의 화해를 위해 남겨진 거의 마지막의 실마리이다” 한민족아리랑연합회 김연갑 상임이사의 말이다. 아리랑이 민족의 상징이고
대동성을 지닌 노래인 만큼, 통일의 매개로서 아리랑의 사명은 막중하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이루어졌던 각종 문화 교류에서 아리랑이 빠지지 않았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남북교향악단 합동공연을 비롯, 각종
교류 무대에서 어김없이 아리랑이 불려졌으며, 남북합작영화로 ‘춘사 아리랑’이 추진되기도 했다.
4월말부터 6월말까지 북에서 공연하는 아리랑축전도 남북민간교류라는 면에서 관심을 집중시킨다. 각종 우려의 목소리도 높지만, 북이 정치색을
배제하고 세계적인 공연물을 만든다는 점에서 아리랑축전은 남북교류의 새로운 장으로 기대된다. 또한, 아리랑의 재해석이라는 면에서도 의미가
크다. 아리랑이 다양하게 재창조되고 문화상품으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는 시점에서, 북이 대규모로 준비한 아리랑축전이 아리랑 역사에 어떤 획을
그을지 주목되는 것이다.
현재 아리랑축전은 정치적인 이견으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본지는 아리랑을 문화적 측면에 초점을 맞춘 만큼, 정치적 논쟁은 제외했다. 아리랑축전의
경위와 내용, 민간교류의 가능성이라는 면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꺽어지는 해’에 열리는 대규모 집단체조
북은 이른바 ‘꺽어지는 해’라고 해서, 각종 기념일에 대해서 5년 주기로 행사를 크게 벌이는 관례가 있다. 올해가 바로 ‘꺽어지는 해’로,
김정일 60회 생일(2월 16일), 김일성 90회 생일(4월 15일), 조선인민군 창건 70회(4월 28일) 등 연이어 대규모 행사를 맞이하게
된다. 북이 아리랑축전이라는 거대한 행사를 계획한 것은 이처럼 북에게 올해가 축제의 해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면에는 외화벌이라는 목적도 간과할 수 없다. 또한, 남측에서는 아리랑축전을 월드컵 행사에 대한 방해 공작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명칭을 ‘아리랑’으로 한 것이나, 전례 없이 정치색을 배제한 선전문구나 포스터 등은 아리랑축전이 말 그대로 축제이자, 문화상품이라는
해석에 상당한 타당성을 부여한다.
북에서 집단체조는 스포츠와 예술의 결합으로 인식되고 있다. 집단체조는 북에서 ‘기백있는 체조와 체육적 기교를 대규모화한 행위예술’로, ‘예술공연’은
‘우아하고 아름다운 무용과 음악으로 주체적 내용을 담아낸 양식’으로 정의되고 있다. 이 두 가지를 복합한 것이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이고,
금년 행사의 명칭과 주제가 ‘아리랑’이다.
집단체조는 1958년부터 열려, 지금까지 40여차례 이상 공연되었다. 1971년부터 집단체조창작단을 조직하여 운영하는 등 북은 집중적으로
집단체조를 발전시키고 있다. 예술공연이라는 명칭은 2000년부터 쓰기 시작했다. 최근의 집단체조 예술공연의 대규모 공연은 지난 2000년
10월 노동당창건 55돌을 맞아 공연된 ‘백전백승 조선노동당’이다. 미국의 울브라이트 국무장관과 중국의 츠하오텐 국방부장이 관람하기도 한
이 공연은 무려 10만명이 출연했다. “10만명이 일사불란하
게 움직이는 카드색션은 예술의 경지”라는 것이 관람자들의 대체적인 평이다.
민족적 색채 짙은 예술공연
아리랑축전은 지난 8월부터 추진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래 기획당시인 4월 15일(태양절)에는 행사명을 ‘첫태양의 노래’로 정했다. 태양절은
김일성의 생일을 기념하기 위한 것으로, 북의 관례로 볼 때 당연한 명칭이다. 따라서 ‘아리랑’이라는 명칭은 획기적인 것이다. 명칭 변경은
“작품 창작의 원천인 종자의 핵을 아리랑 정신에서 찾을 것”이라는 김정일 위원장의 지시에 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공연의 총연출과 지휘를 맡은 피바다 가극단의 김수로 총장은 ‘아리랑’이라는 명칭만큼 아리랑축전은 민족적 정서가 강한 작품이 될 것임을
시사했다. “민족의 얼이 긷든 명곡들과 민족적 색채가 짙은 우아하고 화려한 무용들, 기교 높은 체조와 교예로 꾸며진다”는 것이다.
또한, 북측은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은 동방조선이 어떻게 파란 많은 수난의 역사를 거쳐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었으며 오늘은 어떻게
존엄 있는 민족으로 출현하게 되었는가를 ‘아리랑’ 노래로써 생활적이면서도 생동한 예술적 장면들로 펼쳐 보인다” 밝히기도 했다.
이에 대해, 김연갑 상임이사는 “북한도 연대와 대동성이 아리랑의 속성임을 알고 있다. 특히 이번 행사를 관광 상품화 하고자하는 의도가 분명히
보여지는데 주목하는 변화이다. 아리랑을 남북의 교착상태를 완화하고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상품으로 내세울만하다고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다”고 긍정적으로 해석했다.
“한번 보면 또 보고 싶은 충동을 금할 수 없다”
남측은 아리랑축전의 내용이 ‘백전백승 조선노동당’과 흡사한 형식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김수로 총장이 지휘를 맡은 점이나, 10만여명의
출연진을 비롯, 작품의 구성도 ‘백전백승 조선노동당’과 같다. 서장, 본문(1~4장), 종장으로 구성되었으며, 본문의 4장은 각 장별 10경으로
이루어졌다. 북측에 따르면, 대형 체조와 무용, 공중 곡예, 90여개 장면의 그림과 카드색션, 특대형 영사화면, 레이저 조명 등이 이번
공연에 동원된다.
홍보문구를 통해 대강의 내용이 짐작 가능하다. “전설속의 선남선녀가 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리는 금수강산의 절경을 황홀하게 펼쳐 보이는
장면들이 있는 것으로 하여 한번 보고 나면 또 보고 싶은 충동을 금할 수 없게 한다. 천변만화의 신비경을 이루는 장면들과 변화무쌍한 배경대의
조화, 특대형영사화면과 레이저 조명이 예술적으로 배합된 화폭들로 15만석의 거대한 입체적공간을 예술세계로 꽉 채우게 된다”는 것이 북측의
설명이다.
북은 숙박시설과 주변 관광 정보 등을 인터넷에 게재하는 등 이번 공연과 관련해 적극적으로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이는 외화벌이 목적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외의 목적도 간과할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여러 기념일을 통합하겠다는 내부적 목적은 물론,
‘아리랑’을 국제 사회를 향한 메시지로 하겠다는 북측의 발언도 일리가 있다. 아리랑을 통해 민족을 알림과 동시에, 이미지를 쇄신하고, 관광사업을
활성화시키기는 효과를 동시에 누리겠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남측은 아리랑축전이 남북 민간교류를 다시 활발하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인지 주목하고 있다. 민족통일연구소 정열철 연구위원은 “아리랑축전은
남과 북의 대화와 협력의 매개체 역할을 할 수 있다”며, “축전을 통해 육로 관광이 가능해진다면 군사분계선을 일정정도 퇴색시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풀이했다.
김 상임이사는 “감상적인 해석일지는 모르지만 이번의 두 잔치판(월드컵과 아리랑축전)은 아리랑의 ‘보이지 않는 손’이 남북간에 무언의 교감을
이루게 한 것이다”며, 아리랑이 남북간에 미칠 ‘힘’을 희망적으로 전망했다. 최근 축구국가대표팀 공식응원단인 붉은 악마가 편곡된 ‘아리랑’을
응원가로 확정해, ‘아리랑’이 사실상 두 잔치판을 이어주는 매개가 되었다. 아리랑축전이 남북 교류의 새로운 장을 열지는 두고볼 일이지만,
남북한은 앞으로도 아리랑이라는 정서적 끈을 통해 서로의 문을 두드릴 것만은 분명하다.
정춘옥 기자 ok337@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