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권형 대통령제와 국가리더쉽 복원을 기치로 내건 통합민주당 이인제 대통령 경선후보가 19일 그 깃발을 높이 들었다.
이 후보는 이날 오후 2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자신의 저서인 ‘한라에서 백두를 보네’ 출판기념회를 갖고 “개헌과 분권화를 통한 국가 리더쉽을 복원하겠다”고 천명했다.
이 후보는 인사말에서 “기업하기 좋은 나라, 일자리 창출을 통해 경제를 살려내겠다”면서 아울러 “햇볕정책의 창조적 계승과 발전, 획기적인 언어교육과 주민에 의한 교육자치권을 부여해 나가겠다”고 공언했다. 또 일하는 복지시스템을 완성하는 등 5개 과제를 집중적으로 해나가겠다고 강조한 뒤 “혼란에 빠진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겠다”고 메시지를 던졌다.
‘한라에서 백두를 보네’는 이 후보가 지난해 말 한라산에 올라 민족과 대한민국의 미래를 생각하며 집필할 생각을 한 책으로 ‘이인제는 누구인가’, ‘어떤 나라를 원하는가’, ‘무엇을 개혁할 것인가’라는 제목의 3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그 속에 이 후보의 살아온 과정과 상상과 이념, 정책이 고스란히 녹아있다고 볼 수 있으며 이 후보는 이 책을 가리켜 ‘누에가 자기 몸의 실을 뽑아 고치를 짓듯이 책을 만들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이 후보는 “지난 두번의 대선에서는 저에게 대세가 있었지만 불안과 두려움도 있었다”고 털어놓으면서 “그러나 지금은 한 점으로 축소되어 있고 국민들은 저를 망각했다”고 변화한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이어 “지금은 의문이나 두려움 없이 시작한다”며 “오뚜기와 같이 두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대통령이 되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날 기념식에 참석한 통합민주당 박상천 공동대표는 “통합민주당에 대선후보가 없다고 해서는 안된다. 경선에 가면 많은 지지를 받을 것이다”고 말해 이 후보에게 힘을 실었다.
박 대표는 축사를 통해 “범여권 대선 후보중 통합민주당 후보들이 지지도가 낮고 보도되지 않는 이유는 너무 늦게 출발해서이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한나라당이 앞서 가는 것은 정책에서 실패한 열린우리당과 비교한 수치이기 때문이다”며 “통합민주당 후보가 나서면 달라질 것이다. 힘센 권투선수는 아직 링에 오르지도 않았다”고 밝혔다.
김한길 대표도 “하늘은 사람에게 세 번의 기회를 준다고 한다”며 “이 출판기념회가 이인제 의원에게 또 한번의 기회가 시작되는 소중한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다시 개헌을 생각한다
이 후보는 출판기념회를 갖기 전 이날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제헌절을 즈음해 노무현 대통령이 제안한 내각제 개헌 주장의 진정성에 대해 “공감”을 표시했다.
이 후보는 “지난번 노 대통령이 불쑥 개헌을 들고 나왔을 때 개헌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개헌제의의 진정성을 믿을 수 없었다”면서도 “그러나 이번 글에서 그의 충정을 읽을 수 있었고, 이제 헌법과 대통령 그리고 국정에 관한 그의 고민을 우리 모두 함께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노 대통령의 주장대로 대통령의 임기는 중임으로, 또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거주기를 일치시켜 가능한 한 여소야대 현상을 줄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공감하면서도 “그러나 지금의 제왕적 대통령제가 만악(万惡)의 근원이라는 인식은 부족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 후보는 “중앙에 집중된 권력을 지방에 분산시키고, 대통령이 독점하고 있는 중앙권력을 의회와 나누는 분권형 대통령제로의 개혁을 단행하지 않고서는 국가경영의 정상화는 요원한 일이 될 것”이라며 “힘으로 국정을 끌고 가던 권위주의 시절이 지나고 민주화 시대가 도래한 이후 역대 대통령 모두 같은 운명을 맞이했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때문에 “일찍이 프랑스와 유럽의 여러 나라가 운영하는 분권형 대통령제(프랑스에서는 반대통령제, semi-presidentialism)를 채택할 때가 되었다고 주장했다”면서 “외교, 안보, 국방, 통일 같은 분야는 직선의 대통령이 직할하고, 나머지 내정에 관하여는 의회 다수파가 책임을 지고 정부를 운영한다면 책임정치가 구현되고 국가리더십이 붕괴되는 일은 없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후보는 “노 대통령은 내각제도 검토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완전한 내각제는 시기상조”라면서 “대통령제와 내각제의 단점을 보완하고 그 장점을 살려 국가경영을 정상화시킬 수 있는 제도가 바로 분권형 대통령제”라고 설명했다.
이 후보는 그밖에 노 대통령이 주장한 선거운동 금지, 선거운동 기간 등 과도한 금지에 대한 개혁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의사를 밝힌 뒤 “이같은 금지는 과거에는 일면의 타당성을 가졌으나 오늘에 있어서는 전혀 타당성이 없는 낡은 제도”라며 “마땅히 뜯어 고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각 정당들의 차기 국회 개헌 약속을 믿고 개헌발의를 유보하였는데 왜 정당과 대선 후보들이 개헌에 관해 아무 말이 없는가를 걱정하고 있다”면서 “특히 정권을 다 잡은 것처럼 생각하는 한나라당과 그 후보들이 지금의 대통령제가 좋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고 지적했다.
이 후보는 한나라당 대선주자들을 향해 “현재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은 자신과 당에게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 될 것”이라며 “만에 하나 한나라당이 집권을 한다 하더라도 임기 말이면 자신들이 만든 대통령을 당에서 쫓아내야 할 운명을 맞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경고했다.
이 후보는 그러므로 “한나라당과 후보들이 지금 내가 주장하는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을 받아들이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한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모두가 예외 없이 직면하는 불행을 보면서 어떤 교훈을 얻었다면 그 답이 바로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이라며 “각 정당과 후보들이 분권형 대통령제에 공감한다면 지금 바로 국회 안에 개헌을 위한 특별 위원회를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개헌 절차를 진행시켜 대통령 선거와 동시에 헌법개정안에 대한 국민투표를 실시한다면 별도의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 후보는 “헌법개정을 통한 권력구조의 진화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신속하게 실천에 옮기는 것이 옳다”며 “한나라당이 노 대통령의 개헌 주장을 정략으로만 몰아붙일 것이 아니라 국가 리더십의 붕괴를 더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차원에서 진지하게 접근하고 행동에 나서기를 희망한다. 한나라당이 개헌을 외면하더라도 결국 국민의 힘에 의해 오늘의 낡은 권력구조는 개헌을 통해 진화하게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배지는 꽃처럼 생기지 않았냐”
앞서 지난18일 이 후보는 서울시당 위원장들과 만난 자리에서 비유와 은유로 가득찬 발언들을 쏟아냈다.
그는 이날 “우여곡절을 겪으며 민주당이라는 집을 나가서 헤매다 돌아올 때 따뜻하게 맞이해 주시고 대선출마의 터전을 마련해 준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 후보는 제3지대 신당 창당을 두고 복잡한 당내 상황을 질문하는 시당위원장에게 “솔직히 말해 배지를 두려워하지 말라”며 “열린우리당이 분열하고 있지만 그 뿌리는 민주당이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국회의원) 배지는 꽃처럼 생기지 않았냐”고 물으며 “뿌리에서 꽃이 나오는 것처럼 꽃이 떨어져도 뿌리가 건강하다면 언제든지 꽃은 핀다. 제3지대에서 신당을 만드는 일은 결국 뿌리가 결합되는 것이다. 꽃들에게 눌려 뿌리지키는 사람이 소외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한나라당을 탈당해 범여권 대선후보로 참여한 것과 관련해서는 “손 전 지사가 자신의 소신과 가치, 노선을 위해 헌신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며 “자기 몸에 맞지 않다면 입고 있는 것보다 탈출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열린우리당은 민주당에서 나와 현 정권을 탄생시켰다”며 “민주당을 깨고 독립해 나가서 국정을 운영하다가 좌초되고 난파되자 (의원들이) 반이상 탈출했고 남은 반도 그 배와 함께 운명을 같이하면서 침몰할 것이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배의 방향은 배의 키를 잡은 사람만이 알수 있듯이 열린우리당의 대다수의 의원들은 중도개혁노선인 것으로 안다”며 “난파된 배와 같은 아무 쓸모도 없는 열린우리당이 해체하면 모든 세력이 통합하게 될 것이다”이라고 내다봤다.
그가 노 대통령의 개헌 주장에 대해 공감을 표시한 것은 이례적인 일로, 향후 대선과 개헌 정국에 많은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12월 대선과 개헌투표를 동시에 실시할 것을 주장하고 있어 정치권의 논란이 치열해질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 이날 출판기념회에는 통합민주당의 박상천 김한길 대표를 비롯해 열린우리당 탈당파 모임인 대통합추진모임의 정대철 대표, 이근식 유인태 유선호 이상열 양형일 의원, 김경재 김민석 박상희 신낙균 임덕규 전 의원 등이 참석했으며 종교계에서도 대전 중문교회의 장경동 목사, 조계종의 신법타 스님, 천주교의 홍찬진 신부 등과 지역인사로 임향순 호남향우회장, 김용래 충청향우회총재, 본지(시사뉴스) 자매지 수도권일보 발행인 강신한 회장 등 1500여명이 참석해 대성황을 이뤘다. 특히 이날 행사에서는 ‘You raise me up’(나를 일으켜주세요)의 곡을 삽입한 영상물이 방영돼 눈길을 끌었다. 또 통합민주당 당원들과 이인제 후보의 오랜 지지자들로 구성된 일부 참석자들은 ‘이번에는 이인제다’는 구호를 외치며 환호해 대선 출정식을 방불케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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