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이 먼저일까, 학력이 먼저일까. 교육열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대한민국에서 확실히 ‘학벌’은 무시할 수 없다. 학벌이 좋으면 당연히 실력이 좋을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한 것도 한 몫 한다. 최근 동국대 신정아(35세) 조교수에 이어, 굿모닝팝스 진행자 이지영(38세) 씨의 잇따른 ‘학력위조’ 사건은 충격을 던져준다. 이유야 어찌됐든 실제 고졸 학벌로도 이들은 실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자리가 그 사람을 만든다고 좋은 학벌로 무장을 해서 실력을 인정받았는지, 아니면 학벌에 상관없이 그 자체로 실력이 특출 났는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한가지 확실한 점은, 거짓으로 사람들을 기만했다는 점이다. 학력위조로 인생의 풍파를 맞은 두 사람은 교묘하게 유사한 면을 갖고 있다. 일단 30대 젊은 여성으로 자기분야에서 성공을 이뤘고 누군가를 가르치는 교육쪽에 몸담고 있다는 점이 유사하다. 국내 대학 졸업장 한 장 없이도 외국의 유명대학의 학.석사 학력으로 감쪽같이 사람들을 속였다는 점도 같다.
유창한 영어, 외국 유명대학 학위위조로 ‘거짓인생’
유창한 영어구사 등 실력이 빛을 발했기 때문에 의혹을 잠식시킬 수 있었다. 다만 사건보도 후 신정아 씨는 모든 정황이 드러나고 있는데도 끝까지 자신은 "거짓이 아니다"고 한 반면, 이지영 씨는 스스로 시인하는 모습을 보여 여론의 긍정적인 힘을 얻고 있다는 것이 다르다.
학위서 증명 한번이면 금방 들통 날 거짓말을 그동안 어떻게 감쪽같이 속여 올 수 있었을까. 이지영 씨의 경우 굿모닝팝스를 7년간 진행해 온 스타강사이고, 신정아 씨도 미술계의 마당발로 소문이 나 자주 언론에 등장했던 인물이라 세간의 충격이 더욱 크다.
그는 중3때 영국으로 건너가 영국 브라이튼대를 졸업하고 1996년 언어학 석사과정을 수료했다는 이력을 내세워 영어강사로 활동해 왔다. 2000년 KBS라디오 ‘이지영의 이지 잉글리쉬’를 진행하며 방송계에 발을 딛었고 이후 2004년부터 ‘굿모닝 팝스’의 진행자로 나서 스타강사로 명성을 날렸다. 이런 공로로 KBS TV부문 최우수 작품상과 TV. 라디오 부문 최우수 MC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연세대 외국어학당과 이익훈 어학원에서 200여명의 수강생을 몰고 다니며 명실공이 영어강사 ‘최고’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그의 실체를 들여다보면 허탈감만 든다. 사건 보도 후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처음 영어강사 일을 시작할 때 (내가 대학을 졸업했다고) 알고 있는 분의 소개로 하게 돼 번복할 수 없었다”고 허위학력에 대해 해명했다. 이후엔 친정집의 빚과 생계 등으로 계속 학력을 속이게 됐다는 것.
신데렐라는 없었다
그의 거짓학력은 자신이 집필한 영어교재와 각종 인터뷰에서 유학파임을 과시하는 등 적ㄱ극 활용돼 왔다. 하지만 전남 광양에서 초중고를 마친게 학력의 전부였다. 그는 “순천대에 입학했지만 학교에 거의 다니지 않았고 서울에서 삼수까지 했지만 실패했다”고 털어놨다.
감쪽같이 속을만한 그의 유창한 영어실력은 1990년경 영국의 한 소도시에 있는 랭귀지 학원에 1년, 브라이튼시에 있는 기술전문학교를 1년 경험이 밑받침 됐을 뿐이다.
동국대 신정아 전 조교수의 대담성은 입이 쩍 벌어질 정도다. 신정아 씨는 미국 캔자스대 학사와 석사, 예일대 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학력을 위조했다. 미술계에 보기 드문 MBA출신으로 행세한 신 씨는 전시 기획뿐 아니라 ‘외부에서 돈을 끌어들이는 큐레이터의 능력’을 강조하며, 전시를 흑자로 이끌어 자신이 일한 미술관 측으로부터 크게 인정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동국대 조교수로 활동영역을 넓혀오다 지난 5일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에 30대로는 최초로 임명되면서 집중적인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학위 위조 사실이 드러나면서 감독 임명이 취소됐다.
미술계의 떠오르는 샛별로 주목받은 신정아 씨의 이면은 이랬다. 1997년 10월 금호미술관 은 MBA 출신이라는 신 씨를 아르바이트생으로 고용했고 이듬해 큐레이터로 정식 채용했다. 이후 유력인사들과 친분을 쌓아가며 스타 큐레이터로 입지를 굳혀갔다. 하지만 뒤늦게 금호그룹 측이 신 씨의 학력위조를 확인하고 퇴직했다. 하지만 탄탄한 인맥을 기반으로 성곡미술관으로 자리를 옮긴 후 홍익대 국민대 중앙대 강사로 활동하며 승승장구 했다.
학벌 만능주의 ‘경고’
신 씨는 영어능력과 외국대학 학위를 내세우며 광주비엔날레 감독에까지 올랐던 것. 간혹 학위 의혹이 있긴 했지만 그의 치밀함에 의혹은 수그러들곤 했다. 의혹에 마침표를 찍듯 그는 지난 2005년 몇몇 언론과 “박사 학위를 받게 됐다”는 인터뷰까지 가졌고 이후 박사 논문을 들고 유력인사 들을 찾아다녔다고 한다.
예일대 측으로부터 신 씨의 거짓 학위가 드러났지만 신 씨는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신정아 씨와 이지영 씨의 대담한 거짓연극은 가족들도 속일 만큼 완벽해 충격을 더한다. 실제로 신 씨 가족들도 “학위를 받은 것이 확실하다”고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이지영 씨 본인도 “친척들을 포함해 주위 사람들 모두 내가 외국에서 대학을 나온 것으로 알고 있었다”고 실토했다.
고졸 학력에 불과한 이들이 학위를 위조하고 그동안 활보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사회에 팽배한 ‘학벌 만능주의’ 때문이다. 학벌로 평가를 하고 실력은 그 다음이다. 학벌의 우월성 때문에 ‘설마…’하는 안일함으로 채용에 앞서 학위서를 꼼꼼히 따져보지 않았던 것도 이번 사태를 키웠다.
동국대는 신정아 씨를 채용하기 전에 예일대에 학위서를 확인했다고 했지만 결국 이것도 ‘거짓’으로 드러나 더욱 의혹이 확산되고 있다. 이지영 씨의 경우 굿모닝 팝스 전임자가 갑자기 그만두는 바람에 학위증 제출 절차 없이 급하게 진행을 맡게 됐다. 하지만 담당 PD는 “7년간 문제없이 진행해 왔기 때문에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고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