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압에 저항하는 예술적 자유
동성애자 쿠바 시인의 일대기 ‘비포 나잇 폴스’
화가출신
감독 줄리앙 슈나벨의 두 번째 작품 ‘비포 나잇 폴스’는 가난과 검열, 탄압과 죽음에 저항해 예술과 정치, 성에 대한 자유를 추구했던 쿠바의
천재 시인 레이날도 아레나스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이다.
‘자유를 위한 투쟁’은 민주화를 위한 험난한 가시밭길을 걸어왔던 우리 민족에게 낯설지 않은 주제이지만, 인류의 보편적인 정서이기도 하다.
그만큼 호소력이 높다는 뜻인데, 이 때문에 묵직한 예술 작품에 주로 형상화되어 왔다. 하지만, 이 영화가 주는 감동은 단지 메시지의 무게에
의한 것만은 아니다. 자칫 지루하거나 암울할 수 있는 이야기를 아름다운 영상과 박진감 넘치는 서사구조에, 적절한 유머까지 곁들여 재미있게
풀어낸 슈나벨의 솜씨가 단연 돋보인다.
성정체성과 글쓰기를 투쟁 수단으로
영화는 아레나스의 동명 자서전을 골격으로 만들었다. 본능대로 시를 쓰고 자연을 즐기던 아레나스는 가난하지만 풍족한 자연의 세레를 받으며
자란다. 10대 시절 카스트로 혁명군에 참가할 정도로 조숙했던 그는 하바나 대학에 입학하면서 당시 유행처럼 번진 동성애문화를 접한다. 문학적
재능 또한 인정받아 작가로서도 급성장 한다. 하지만, 카스트로 정권은 잘나가던 그의 삶에 탄압을 가한다.
그는 정권을 위협하는 예술가이자 국가를 좀먹는 동성애자로 취급되어 쿠바정권의 철저한 억압을 받게 된다. 감옥에서도 끊임없이 글을 썼던 그는
작품을 비밀리에 반출시켜 해외 출판을 감행하지만, 발각되어 사형위기를 당하기도 한다.
80년 카스트로 추방정책으로 미국으로 건너와 허망하게 목숨을 끊을 때까지 숱한 탄압과 고초 속에서도 그는 글쓰기와 동성애라는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버리지 않는다. 획일성과 복종을 강요하는 권위적인 정권에 대한 그의 유일한 투쟁 수단이자, 삶의 목적이 글쓰기와 동성애이기 때문이다.
생사의 기로에 선 순간에도 탐미적인 쾌락의 상상을 펼치는 장면은 동성애가 그에게 저항의 수단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시적
영상과 빼어난 연기 돋보여
실제 자살하기 직전 아레나스가 친구들에게 보낸 “더 이상 글을 쓰거나 쿠바의 자유를 위해 투쟁할 수 없다”는 편지의 내용처럼, 그의 삶은
자유를 위한 투쟁으로 요약된다. 영화는 그의 치열한 일대기를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구조로 엮어 리얼리티와 동시에 시적 영상의 극치를 보여준다.
슈나벨은 화가 출신 감독답게 아레나스의 삶과 작품의 이미지를 생동감 넘치는 카메라 터치와 자연색으로 그려냈다. ‘비포 나잇 폴스’의 영상언어는
고통을 위대한 예술로 이겨내고 억압을 성적 정체성으로 싸워냈던 아레나스의 삶과 닮았다. 암울한 일생을 중남미의 자유와 열정이 가득한 영상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영상미와 함께 극찬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은 아레나스 역을 맡은 하비에르 바르뎀의 연기다. 국내에서는 ‘하몽하몽’으로 알려진 바르뎀은 스페인의
국민배우. ‘비포 나잇 폴스’에서 바르뎀은 해변을 뒹굴며 쾌락에 즐거워하는 모습에서부터 독방에서 사경을 헤매는 표정까지 완벽하게 표현해
베니스영화제에서 최우수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영화는 베니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아 작품성 또한 인정받았다.
유명 배우들의 깜짝 출연도 놓칠 수 없는 볼거리이다. 동성애자 수감자들의 연인인 봉봉 역을 열연한 조니 뎁과 소년 아레나스에게 마차를 태워주는
마부역을 맡은 숀펜의 독특한 캐릭터와 뛰어난 연기는 드라마틱한 쿠바음악과 함께 이 영화의 매력적인 보너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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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춘옥 기자 ok337@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