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한나 기자] 신설희(25)는 홍대 앞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새로운 계보를 이을 만하다. 목소리가 특히 매력적인데 서정성이 배인 몽환과 한이 깃든 애절함의 줄을 타는 듯하다.
최근 발매한 첫 번째 EP '일상의 잔상'(After Image)을 들은 뒤 찾아온 소회다.
2013년 발매한 1집 '힐스 오브 더 타임(Hills Of The Time)'에서 장르 구분을 무색케 하는 내공을 자랑한 신설희는 다작하는 뮤지션으로 유명하다. 이번에는 30여 곡의 신곡 중 앨범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의 색을 지닌 5곡을 골라 실었다.
그 만큼 탄탄하다. 타이틀곡은 '원'이다. 아련한 음색의 기타연주가 인상적인 곡으로 외로움의 성장통을 겪는 그녀와 비슷한 또래의 모든 청춘들에게 바치는 노래다.
인트로 격으로 청아한 벨소리가 인상적인 '타임 고즈 플라이(Time goes fly)', 몽환적인 피아노 연주와 대비되는 웅장한 전개가 돋보이는 '플로라(Flora)', 단출한 사운드가 귀에 감기는 포크 풍의 '잠들고 싶어', 오직 피아노와 목소리로만 노래한 '라스트송(Lastsong)'도 저마다 사연으로 신설희의 보컬 줄타기에 기꺼이 동참하게 만든다. 특히 노래에 오토튠을 일절 사용하지 않아 마치 라이브공연과 같은 자연스러운 음색이 들린다.
최근 홍대에서 만난 신설희는 점차 늘고 있는 대중음악 신의 관심에 대해 "잘 모르겠다"고 부끄러워했다. "그저 진정성을 담아 자연스러운 소리를 내려고 했다"고 눈을 반짝였다.
-'일상의 잔상'은 무엇보다 자연스런 음색과 분위기가 좋아요.
"날 것의 느낌을 내고 싶었어요. 제 노래가 음원보다 라이브가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거든요(웃음). 그래서 이번에 최대한 인공적인 느낌은 배제하고 라이브 같이 자연스럽게 느낌을 담으려고 했죠."
-목소리가 참 매력적인데 어떤 음악들을 듣고 자랐나요.
"10대 초반에는 록 음악을 많이 듣고, 10대 후반에는 흑인 음악을 들었죠. 20대 때는 골고루 듣고요."
-10대 초반에는 아무래도 아이돌 그룹 음악을 많이 듣는 편인데요.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만 해도 아이돌 음악을 들었어요. HOT를 좋아하기도 했죠. 근데 중1이 되면서 TV를 안 보기 시작했어요. 그냥 안 봐도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라디오를 많이 들었고, 록음악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됐죠. 학교에서 동아리로 밴드를 하면서 한국 밴드는 자우림, 외국 밴드로는 너바나와 라디오헤드 등 필수코스를 거쳤죠(웃음)."
-흑인 음악의 영향도 많이 받은 편인가요?
"한 때 앨리샤 키스를 정말 좋아했죠(웃음)."
-2013년 데뷔 앨범을 정규 앨범으로 냈어요.
"당시 싱글에 대한 반감이 있었어요. 정규에 대한 환상을 품고 있어 낸 앨범이었어요. 제 다양한 스펙트럼을 한번에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있었어요. '나 이런 사람이다'라고요(웃음). 근데 내공이 부족하다보니 앨범에 집중력이 떨어진 부분이 있었죠."
-이번 EP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부분은 무엇인가요?
"편곡적인 부분이요. 평범하게 하는 것은 싫어서요. (사이키델릭한) 산울림의 '내 마음은 황무지'를 완전히 서정적으로 바꿔서 부르기도 했었는데 그런 예상치 못한 편곡들이 재미있어요."
-'일상의 잔상'이라는 제목이 너무 좋아요. 운율도 맞고(웃음).
"살면서 일어난 일들과 발생하는 수많은 감정들이 머릿속에 이미지로 남아 있는데 그걸 잔상으로서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런 잔상들이 때로는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들기도 하고 슬프게 만들기도 하고 외롭게 만들기도 하잖아요. 그런 정서를 노래하고 싶었죠."
-영감은 어디서 얻나요?
"책을 많이 읽는 편이에요. 폴 오스터를 좋아하는데 그의 환상적인 면이 좋아요. 최근에는 '백년 동안의 고독'(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을 읽었는데 역시 환상적인 면이 마음에 들더라고요. 도스토옙스키도 좋아하고요."
-지금 설희 씨 목소리는 그 나이대에 정제되지 않은 날 것의 감정을 오롯이 전달해서 또 좋아요. 즉 투명하다는 거죠
"동물원의 박기영 선생님이 학교 교수님이셨는데 '20대 때는 20대만이 할 수 있는 음악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던 것이 아직 잊혀지지 않아요."
-이번 앨범 타이틀곡 '원'은 그런 곡 중에 하나죠. '외로움의 성장통을 겪는 설희 씨와 비슷한 또래의 모든 청춘들에게 바치는 노래'라고요?
"요즘 20대 청춘의 삶이 고통이 큰데 모두 같이 느끼고 있다는 걸 그대로 전달하고 싶었죠. 제가 할 수 있는 건 노래니 이를 통해 비슷한 정서를 느낄 같은 세대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죠."
-마음에 드는 수식이 있나요?
"무엇으로 부르시던 상관은 없어요. 개인적으로 뮤지션이 좋기는 하지만(웃음). 예전에는 가수라는 수식이 크게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틀리지 않은 수식이잖아요. 노래하는 사람이 맞으니까요. 싱어송라이터는 좀 한정된 느낌이 들고요.
-음악의 힘을 믿나요?
"'세상을 움직인다' 그런 거창한 것은 아니지만 일상에 소소한 변화는 줄 수 있다고 믿어요. 저도 개인적으로 힘든 시절에 음악으로 위로를 받았어요. 누구에게나 그런 경험은 있잖아요."
-설희 씨에게 음악은 어떤 의미인가요?
"음악을 하는 이유는 음악이 너무 좋아서예요. 어렸을 때부터 너무 좋았어요. 나중에 보니 초등학교 일기장에 제목이 '작사, 작곡'이라는 일기도 있더라고요. 계속 성장하고 발전했으면 좋겠어요. 라디오헤드의 톰 요크처럼요(웃음). 큰 욕심이지만 그처럼 '독보적인' 음악을 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