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실리콘밸리를 다룬 역사서다. 150년 동안 캘리포니아를 설계한 이데올로기, 기술, 정책을 추적하면서 그 결과 어떻게 왜 이곳이 남다른 방식으로 발전할 수 있었는지 조사한다. 화려한 기술과 기업의 성장과정을 구체적으로 담고 있을 뿐 아니라 미국 자본주의의 철저한 탐욕과 약탈에 대한 다소 적나라한 이야기까지 다루고 있다.
1850년대 골드러시에서 2000년대 테크기업까지
팔로알토는 정말 좋은 곳이다. 날씨는 온화하고, 사람들은 다들 교육 수준 높고, 부유한 데다 야심차고, 진취적이다. 1인당 소득을 기준으로 할 때 실리콘밸리는 명실상부 지구상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 중 하나다. 그러나 이곳은 동시에 자신의 것을 빼앗긴 인디언의 묘지 위에 지어진 유령이 출몰하는 유독성 폐기물 처리장이며 자본주의 세계 시스템의 필수불가결한 존재이기도 하다.
캘리포니아 경제사는 1850년대 골드러시에서 시작된다. 사람들이 모이고 산업이 다양화되고 금융과 상권이 발달하면서 캘리포니아 경제는 철도라는 새로운 기반이 필요해진다. 여러모로 남는 장사였던 철도건설 과정에서 이익을 독점하는 집단이 생겨나고, 그 가운데 철도재벌이자 미국 상원의원,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특별한 위치를 점하게 된 ‘스탠퍼드’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급속하게 발달한 전자공학과 통신기술은 폭발적 산업화를 이루는 기반이 된다. 스탠퍼드 대학교가 위치한 이 시골마을은 첨단기술 산업의 중심지로 도약하면서, 1906년 리 드 포레스트의 트라이오드 증폭기 발명을 시작으로 20세기를 주도한 스탠퍼드 학생들의 활약은 계속된다.
1939년 바리안 형제는 클라이스트론을 발명했고, 휴렛팩커드의 데이비드 팩커드도 클라이스트론 프로젝트에 참여했으며, 스탠퍼드 영재 발굴의 상징적 결과물인 프레더릭 터먼이 미군에 처음 연결해준 스타트업이 휴렛팩커드였다. 1951년 윌리엄 쇼클리는 트랜지스터를 발명했고, 1957년에는 쇼클리의 회사에 있던 연구원 8명이 회사를 그만두고 페어차일드로 옮겨가 반도체 사업부를 만들고, 이후 각각의 커리어를 쌓아가는 과정에서 실리콘밸리의 판은 확장된다.
자본주의 권력 속성을 창의적으로 활용
스탠퍼드 대학교는 인재양성의 기능만 했던 것이 아니다. 19세기 말 스탠퍼드 대학교에 입학한 하버트 후버는 1929년 미국의 31대 대통령이 되는 야심찬 인물이다. 캘리포니아 사회를 구축해나가던 그시기에 후버를 중심으로 군사와 산업과 학계의 단단한 블록화가 형성된다.
1980년대 레이건 대통령을 내세워 잘 짜인 각본대로 움직이던 정치와 자본의 결탁으로 이어졌고, 1990년 직전까지 계속되었던 냉전이라는 커다란 외부 갈등 또한 한몫했다.
1세대 디지털 개척자들의 활약에 힘입어 개인용 컴퓨터가 발전하면서, 1980년대에서 1990년대 온라인 시대를 거쳐 2000년대 들어 급부상한 아마존, 애플, 구글 등의 테크기업은, 인류 역사상 가장 최단기간에 최고의 성장과 부를 이룬 전례 없는 사례다.
일찍이 빌 게이츠의 소프트웨어 로열티 계약과 독점공급 문제에서 시작해, 애플의 폭스콘 아웃소싱과 저임금 압력, 상상을 초월하는 구글의 데이터 수집력과 개인정보 침해, 아마존의 비인간적인 생산성 극대화 시스템, 테라노스, 우버, 에어비앤비 등의 수익성보다는 살아남기 전략 등 첨단기술의 최전선에 있는 그들 또한 자본주의 권력과 이해관계의 속성을 보다 창의적으로 활용하며 수익화해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