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검열의 역사
사전심의제부터 등급제까지
‘죽어도 좋아’가 구강성교와 성기노출 섹스씬으로 영상물 등급위원회로부터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자 영화계에서는 ‘검열의 부활’이라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개정된 영화진흥법은 등급보류 조항을 삭제했지만 제한상영관이
없는 현실에서 제한상영가 등급은 사실상 검열 효과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표현의 자유와 사회적 통제에 대한 해묵은 논쟁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등급분류나 제작지원, 언론과 여론의 비평 등 어떤 방식으로든
검열의 기능은 유지될 것이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검열 기능은 최대한 ‘간접적’인 형태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영화인들은 검열의 수위와 영화의 발전 정도는 거의 정확하게 반비례 곡선을 그린다고 강조한다. 영화평론가 김소희는 “검열은 한 사회의 가치관을
가늠케 하는 리트머트 시험지”라고 말한 바 있다. 한국의 파란만장한 검열의 역사를 살펴보면, 억압으로 점철된 현대사의 굴곡이 보인다.
가위질 당한
영화들
검열의 피해는 1970년대 영화사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유신조치와 함께 시작된 혹독한 검열에 한국영화는 암흑기를 맞았다. 당시 영화법
개정안에 따르면 영화는 당국의 허가를 받은 제작업자만이 찍을 수 있었다. 시나리오와 필름의 사전 검열은 물론 제작편수까지 정해져 있었다.
현재 영상물등급위원회 김수용 위원장도 하길종, 이만희 감독 등과 함께 검열의 대표적 피해자다. 김수용 감독의 ‘야행’은 52군데가 잘렸고,
버스안내양의 비인간적인 노동조건을 묘사한 ‘도시로 간 처녀’는 상영이 불허됐다. 사회적 비판이나 영상적 실험은 가위질 당한 대신에 도식적인
계몽영화, 반공영화, 정책영화가 범람하면서 한국영화는 뒷걸음질을 치게 된다.
1980년대는 특히 성애 묘사 기준을 둘러싸고 논란이 많았다. 선정적 장면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애마부인’은 검열을 무사히 통과했지만,
공연윤리위원회 이영의 위원장 취임 이후 성적 표현에 대한 검열이 엄격해졌다. 김수용의 ‘허튼소리’는 13씬이 가위질을 당해 감독이 은퇴
선언을 하는 등 논란이 되었다. 사회비판 영화 ‘내일은 뭐할거니’ 같은 경우에는 너무 많이 잘려나가서 상영된 필름으로는 내용을 전혀 파악할
수 없을 정도였다.
1990년대는 광주항쟁을 그린 독립영화 ‘오! 꿈의 나라’와 전교조문제를 담은 ‘닫힌 교문을 열며’가 사전심의를 받지 않고 영화를 상영해
파문을 일으켰다. 공권력이 대학까지 침투해 영화 상영을 제지해 엄청난 파장을 불러왔다. 사전심의제는 이후 1996년 헌법소원을 통해 철폐됐다.
하지만 사전심의제 철폐가 검열 제도를 완전히 사라지게 하지는 못했다. 트리플 섹스 표현으로 화제가 된 ‘노랑머리’와 장선우 감독의 ‘거짓말’을
비롯해 많은 작품들이 등급보류를 받아 일부 장면을자진 삭제했다. 작년 8월 헌법재판소는 등급보류제 또한 위헌으로 판결했다. 하지만 등급
분류의 기준이 또다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죽어도 좋아’는 9일 삭제 없이 재심의를 신청했다. 8월 말이면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재심의 결과에 따라 표현의 자유와 등급 분류 기준에
대한 논쟁은 새로운 형태로 전개될 것이다.
정춘옥 기자 ok337@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