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는 종교가 아니다, 과학이다”
KBS 강좌 중단 1년여만에 돌아온 ‘도올 선생’
도올이 흰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돌아왔다.
KBS 강좌 ‘도올의 논어 이야기’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그가, 갑자기 방송을 중단하고 미국, 인도 등을 떠돌다가 오랜만에 대중들에게
얼굴을 드러냈다.
8월 10일 장마비가 처연히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동국대 중강당에는 1년여만에 돌아온 도올 김용옥 씨를 보기 위해 1천여 명의
청중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었다. 강당을 가득 메운 청중들은, 빈 의자를 찾지 못해 강당 구석구석에 신문지를 깔고 앉았다. 또 강당에 미처
들어오지 못한 청중들의 행렬이 복도까지 이어졌다.
이같은 모습을 본 김씨는 “위로 올라 오라”면서, 수십 명의 젊은이들은 연단 좌우에 앉게 했다.
“방송 강좌 돌연 중단은 목 통증 때문”
김용옥 씨는 이날 강의에서 자신이 방송 강좌를 그만둔 이유에 대해 “목이 아팠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김씨는 지금도 목이 아파 치료를 받고
있는 상태라고 털어놨다. 하지만 목이 아프다는 말이 믿기 힘들 정도로,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카랑카랑했다. 청중을 압도하는 열정적인 몸짓
또한, 그가 ‘도올’임을 확인시켜줬다. 김씨가 힘주어 말하는 대목에선 예의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터져나왔다.
이날 강연의 화두는 단연 ‘불교와 과학’에 대한 성찰이었다. 김용옥 씨는 “싯다르타를 느껴보고 싶었다”며 인도를 여행한 이유를 밝히면서,
달라이라마와의 대화 내용을 공개했다.
김용옥: “불교가 무신론이냐?”
달라이라마: “그렇다.”
김용옥: “그럼 불교는 종교가 아니냐?”
달라이라마: “그렇다.”
김용옥: “그럼 불교는 무엇이냐?”
달라이라마: “불교는 과학이다.”
김씨는 “니체라는 사람이 ‘신은 죽었다’고 말한 것은 우주를 지배하는 신이 돌아가셨다”는 것을 뜻한다면서, “신이 죽고 나면 우주는 자체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즉 과거 왕정(王政)적 사고에서는 누가 시키는 데로만 움직였지만, 근대적 인간은 스스로 행동한다는 것.
김씨는 “민(民)이 주가 돼서 운영하는 사회가 근대적”이라고 말했다.
“과학적 시대, 불교는 복음”
김용옥 씨는 “산스크리트어로 붓다라는 말은 앎이지, 깨달음이 아니다”라면서 앎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싯다르타가 보리수 밑에서 깨달은
앎이란 것이 ‘어떤 것도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건 없다는 연기(緣起)’였다면서 “연기는 철저한 과학적 통찰이다”라고 주장했다.
김씨는 또 기독교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기독교는 20세기 한국 사회에서 교육 분야 등에 많은 긍정적 역할을 했지만, 우리 사회를
광신적으로 만들었다”면서 “기독교는 과학과 대립한다”고 말했다. 반면 “과학적 시대에 바른 지식을 추구하는 사람에게 불교 이상의 복음은
없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자신의 이같은 주장들을 정리해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1·2·3>(통나무)을 펴냈다.
해박한 지식과 신랄한 비판으로 늘 학계의 논쟁을 일으켰던 김용옥. 그의 다음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원순 기자 blue@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