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화와 일상이 뒤섞인 독특한 판타지
만화적 상상력으로 빚어낸 남기웅 감독의 ‘우렁각시’
디지털 저예산 영화 ‘우렁각시’는 제목에서부터 짐작할 수 있듯 전래설화를
바탕으로 제작한 작품이다. 단편 ‘강철’과 장편 ‘대학로에서 매춘하다가 토막 살해당한 여고생 아직 대학로에 있다’ 등으로 주목받은 남기웅
감독은 두 번째 장편영화의 소재로 설화를 선택했다. 발랄한 몽환적 영상을 추구하는 남 감독과 유머와 판타지의 결정판인 설화와의 만남은 그
자체가 행복한 궁합이다. 감독은 특유의 비주류적 상상력으로 설화와 일상을 버무려 발칙한 판타지를 만들었다.
독 안의 우렁이가 인간으로 변한다는 기본 아이템을 제외하고는 영화는 설화의 줄거리를 전혀 따르지 않는다. 설화에서 차용한 것은 인물이나
스토리 보다 환상적인 분위기와 해학이다. 작은 선행으로 행운을 얻게 된다거나, 평범한 남자가 미인을 차지한다, 또는 권력과 악에 저항한
힘없는 선(善)이 승리한다는 등의 설화적 주제는 대체로 살렸다.
색채와 질감 이용한 디지털 영상미
가장 돋보이는 점은 특수효과 없이, 기발한 상상력과 공간 재활용법만으로 독특한 판타지를 탄생시켰다는 것이다. 환상적 분위기는 상당부분 화려한
색채에서 나온다. 암녹, 주황, 파랑 등의 색동문양을 연상시키는 조명은 100% 야간 촬영으로 철저히 빛을 통제해 만든 것이다. 의상과
배경 등 영상 전체를 지배하는 강렬한 원색은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특히, 디지털의 뭉개지는 질감을 이용해 신선한
미학적 세계를 창조한 점은 ‘우렁각시’만의 매력이다.
낯설면서도 친근한 판타지 공간들도 기존의 버려진 장소를 활용해 창출한 것이다. 건태(고구마)가 사장(조재연)과 함께 총을 제작해 파는 ‘뒷거래
철공소’, 야비한 용백(기주봉)의 주거주지인 ‘니나노카바레’, 따발총할멈(최선자)이 우렁이들을 키우는 장소인 ‘우렁연못’ 등 대부분의 공간들은
세트를 따로 짓지 않고 소품과 미술적 장치를 활용해 만들었다.
공간은 인물의 성격을 상징하면서, 신화와 만화가 범벅된 작품세계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명화 ‘천지창조’의 얼굴 부분을 주윤발로 슬쩍 바꿔놓은
벽화 소품이 키치적 감수성을 충족시켜준다면, 공간마다 가득한 도깨비나 십이지신 등의 전통문양은 설화적 정서를 자극한다.
그밖에 ‘임금님귀는 당나귀 귀’를 연상시키는 용백의 거대한 귀, 선녀 같은 옷차림에 귀여운 더듬이가 달린 우렁각시, ‘천일야화’의 요정과
흡사한 차림새의 독노인, 우렁이 무리의 총천연색 무늬 등의 분장도 재미있다.
어른들을 위한 유쾌한 동화
영화의 정체성은 한마디로 ‘잡탕’이다. 설화와 일상, 전통과 현대가 뒤섞인다. 장르도 판타지, 느와르, 코미디가 혼재한다. 마임이나 독백
등의 연극적 요소도 눈에 띈다. 전통적 해학미와 엽기적인 유머가 공존하고, 동화적 이야기에 장난스러운 설정들이 가득하다. 영화는 장르의
경계를 부수고 가지각색 요소들을 결합시켜 독창적인 세계를 구축해냈다.
‘우렁각시’의 진정한 판타지는 질서와 법칙이 무너진 자유로움에서 나온다. 감독은 일상의 잡다한 환상들을 엮어 장난과 공상이 가득한 ‘현대판
설화’를 짜냈다. 순진한 청년이 고난을 극복하고 예쁜 여자를 얻는다는 판타지는 현대에도 유효한 것이다. 이 같은 설화적 판타지를 느와르적
방식으로 쟁취한다는 설정이 흥미롭다. 매일 밥상을 차려주는 우렁각시가 과거 노총각이나 홀아비들의 소망을 반영한다면, 주윤발은 영웅심리를
부추기는 신화적 존재다. 색깔이 다른 두 가지 판타지의 절묘한 접점이 ‘우렁각시’다.
디지털 저예산 영화는 따분하고 실험적이며 난해하다는 편견이 크다. 기승전결의 드라마 구성을 무시하고 스타가 출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비주류적인 것은 분명하지만, 연출 스타일은 지극히 젊은 대중적 감성과 호흡하고 있다. 신나는 음악과 개성 넘치는 캐릭터, 버라이어티한
영상 등 즐길 거리가 풍부하다.
‘삐삐롱스타킹’의 보컬 출신인 고구마의 능청스러운 연기도 유쾌하고, 오랜만에 스크린에 등장한 ‘지옥의 링’의 히어로 조상구의 얼굴도 반갑다.
‘공동경비구역 JSA’ ‘친구’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등 다수 영화에서 조연으로 활약한 바 있는 연극배우 기주봉의 연기가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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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춘옥 기자 ok337@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