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의 신화, ‘스크린의 새 얼굴’로 떠오르다
무술감독에서 연기자로 거듭나는 정두홍
MBC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에서 양동근과 이나영 못지 않게
‘오빠부대’를 거느린 스타가 있다. ‘복수’(양동근)에게 액션 연기를 지도하는 ‘양찬석’ 역의 정두홍(37) 무술감독이 바로 그 주인공.
실제 직업도 극중과 같이 스턴트 연기자이자 무술감독인 그는, 인간적인 ‘양감독’ 캐릭터로 시청자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다.
‘네 멋대로 해라’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그에 대한 문의와 찬사가 쇄도하고 있으며, 커뮤니티 포탈 사이트 ‘다음’에는 팬카페가 5개나 생겼다.
스스로도 인기를 체감하는 중이다. 알아보는 사람이 늘어나자 행동과 차림새에 제약이 생겨 불편하다는 그는 “멋진 싸인도 없는 데다 제가 졸필이거든요.
싸인 요청 받을 때마다 난감합니다”며 웃는다.
삶의 역경이 연기의 밑거름
‘무술감독 정두홍’은 충무로의 신화적 존재지만, ‘배우 정두홍’은 한창 떠오르는 신인이다. 3월 개봉한 ‘피도 눈물도 없이’가 배우로 첫
선을 보인 작품. ‘침묵맨’ 역으로 비록 대사는 없었지만 강렬한 눈빛 연기가 인상적이라는 평을 얻었다. 6월 개봉한 ‘챔피언’에서는 의리의
사나이 이상봉 역을 맡았고, 9월 중순에 개봉하는 판타지 액션물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에서는 짝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죽는 ‘오비련’으로
분했다.
이쯤 되면 ‘배우’로 불러도 손색없는 이력이다. 몇 작품만으로도 타고난 카리스마와 기본 연기력을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는 “연기 꽤한다”는 말에 거듭 손사래를 쳤다. “부족합니다. 연기자로서의 보수는 터무니없이 적지만 전 아무 불만 없어요. 그만큼 미흡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죠.”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표했다. “오비련은 멋있는 캐릭터인데 연기가 미흡해 잘 살리지 못했어요. 지금이라면 좀 나을
것 같은데. 그때는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할지 당황했죠.”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은 제작기간이 길어져 개봉은 뒤로 밀려났지만, 그가 최초로
캐스팅 된 작품이다. “홍콩 액션팀의 노하우를 배울 겸 같이 하자”는 장선우 감독의 제안이 배우로서의 길을 열어주었다.
사실 그의 스턴트 연기도 일반 연기와 전혀 무관한 것은 아니었다. ‘액션은 몸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행위예술’이라는 지론에서 엿보이듯, 스턴트
연기에서도 정서 전달과 감정 표현에 정성을 쏟아 온 그였다. ‘무사’의 김성수 감독과 조민환 프로듀서는 ‘삶의 역경을 겪었다’는 점 때문에
배우로서 그의 가능성을 신뢰한다. 연기자로서 장점인 ‘터프함과 순수함이 어우러진 복합적인 마스크’는 남달리 치열했던 그의 삶의 징표라 할
수 있다.
지독한 완벽주의자
그의 이력은 곧 한국 액션영화의 발전사다. 25살 때 ‘시라소니’로 최연소 무술감독에 ‘입봉’한 그는 ‘게임의 법칙’ ‘테러리스트’ ‘비트’
‘쉬리’ ‘유령’ ‘반칙왕’ ‘무사’ 등의 액션 연출로 한국 액션영화의 새 지평을 열었다. 충무로 액션의 과학화 체계화라는 혁혁한 업적의
배경에는 그의 철저한 프로 정신이 있다. 그를 신화적 존재로 올려놓은 일화들은 하나같이 그가 얼마나 정신력이 강하고, 지독한 완벽주의자인지를
말해준다.
그중 공항 검문대를 통과할 때마다 곤욕을 치른다는 ‘쇄골에 박힌 12개의 볼트’는 특히 유명하다. 1995년 ‘본투킬’을 찍다가 쇄골이
바스라지는 중상을 입은 그는 병원대신 다른 촬영장으로 달려가 감독의 만류를 뿌리치고 다섯 차례나 자동차에 몸을 던졌다. 부상은 쇄골에 12개의
볼트를 박아야 할만큼 심각했다. 이런 식의 일화들은 책 한 권 분량은 족히 넘을 만큼 무수하다.
한때 충무로에서는 그가 ‘마약한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평소 내성적인 사람이 촬영장에서는 섬뜩할 만큼 빛나고 독기 서린 눈빛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것이 ‘공포의 눈빛’이라고 해명한다. 다음날 찍을 위험한 장면에 대한 두려움으로 악몽에 시달리다 잠에서 깨어날 만큼 그는
매번 공포를 느낀다고 말한다. 불안감이 아니더라도 그는 온몸의 통증 때문에 잠을 잘 이루지 못한다. 그런 고통 속에서도 끊임없이 위험 속에
몸을 내던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보람이요? 그런 거 못 느끼겠어요. 단지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계속 하는 것이죠.”
“열악한 시스템과 외롭게 싸웠다”
그가 ‘악바리’가 된 것은 ‘충무로와 한판 전쟁’을 선언하고 부터다. 1989년 제대하고 국회의원 수행요원 일을 하던 그는 스턴트맨 경력이
있던 수행요원 선배로부터 영화 출연 제의를 받았다. 장동휘, 박노식 등의 액션연기를 선망했던 그는 꿈을 안고 스턴트 연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스턴트 연기자는 현장에서 ‘몽둥이’라고 불리며 무시당하는 존재에 불과했다. 무릎이나 팔꿈치를 감싸는 보호대조차 없어 부상이 속출했다. 몸을
사리다 보니 당연히 액션도 소극적이게 되었다. 충무로를 전쟁터로 인식한 그는 꿈을 접었다. “끝까지 싸우겠다고 다짐했다. 정말 외로운 전투였다.”
스스로에게는 물론 후배 연기자들에게도 혹독한 이유는 이 때문이다. 후배들은 “다정다감한 드라마 속의 ‘양감독’을 보고 싶다”고 그에게 말하곤
한다. 그때마다 그의 대답은 “너희들이 먼저 성실한 ‘복수’의 모습을 보여달라”는 것이다. “힘든 거, 아픈 거 다 압니다. 하지만 남들처럼
고통을 전부 표현할 것 같으면 이 바닥에서 떠나야 해요. 아프다고 인상 쓰면 연출가는 마음이 흔들리게 됩니다. 그러면 생각했던 앵글을 포기하기
마련이죠. 프로는 돈을 받은 만큼 합당한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멋있어서 치는 박수는 에너지가 전달된다”는 그는, 완벽한 액션을 만들기 위해 후배들에게 냉정하게 대한다. 하지만, 후배 이야기를 할 때
그의 표정에는 따뜻한 ‘아버지의 미소’가 번졌다. “제가 ‘입봉’시킨 감독이 벌써 8명입니다. 하나같이 자랑스럽고 대견해요.” 후배들이
전부 무술감독이 되어서 사단을 이끌고 함께 현장에서 일하는 것이 그의 희망이다.
“사이코 연기하고 싶다”
별도로 감독료가 지불되는 유일한 무술감독인 그는 편당 5,000만원선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그가 부자인 줄 아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대부분의 수입은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장비 구입에 사용된다. 스턴트 연기의 체계화를 위해 4년 전 설립한 ‘서울액션스쿨’도 비영리로
운영되고 있다. 무술감독으로서 그의 인생은 자신의 표현대로 오직 ‘평화’를 위한 ‘싸움’에 소모되고 있는 셈이다. 스턴트 장비는 그에게
무기와 같은 것이다. 그는 헐리우드처럼 합리적인 시스템을 갖춘 프로 스턴트 시대가 올 때, 행복한 직업인으로 스턴트 연기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냉혹한 충무로 판에서 액션배우의 꿈을 접었던 그는, 이 같은 ‘전쟁 중’ 뒤늦게 찾아온 배우로서의 기회 앞에 혼란을 느낀다고 고백했다.
“아버지가 ‘사람은 한 우물만 파야 한다’고 늘 말했었죠. 한 가지 일에 매진해야 한다는 생각은 있는데 욕심이 나요.” 그는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다가 마침내 다리교정기를 부수고 뛰쳐나가는 주인공이 된 기분이라고 심경을 밝혔다. “한과 비애가 묻어나는
무식한 사이코 역을 해보고 싶다”는 그는 연기에 막 욕구가 싹트기 시작했다. 하지만, 스턴트 연기와 일반 연기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그의 대답은 망설임이 없다. “스턴트죠. 전쟁을 끝내야죠.”
정춘옥 기자 ok337@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