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연프로그램 전성시대
유사 아이템 범람으로 선정성 경쟁이 문제
생활 속의 독특한 실화를 재연한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고 있다. MBC
‘타임머신’을 필두로,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KBS 2TV ‘쇼 파워비디오-김경식의 황당극장’ SBS의 ‘휴먼 TV, 유쾌한 세상’
‘깜짝 스토리 랜드’ 등 방송사마다 재연프로그램 열풍이다. 시청률 성적도 좋은 편인 데다 제작이 비교적 쉽고, 제작비도 적게 들기 때문에
상황 재연 기법은 방송사의 효자 아이템으로 각광받고 있다.
언론 모니터 전문 시민단체 ‘매체 비평 우리 스스로’(매비우스)의 곽윤정 간사는 “재연프로그램은 장르 파괴의 전형”이라고 말한다. 연예인의
신변잡기와 말장난이 판치는 기존의 버라이어티 오락프로그램이 더 이상 시청자를 끌어들일 수 없게 되자 제작사는 ‘살아남기 위해’ 필연적으로
장르 변형을 꾀하게 됐다. 이것이 다큐멘터리와 드라마를 합친, 재연 프로그램을 탄생시킨 배경이다.
딱딱하기 쉬운 교양 프로그램에 코믹한 재연 기법을 도입해 연성화를 유도한 것이다. 단순한 웃음뿐 아니라 유익한 정보를 곁들여 온 가족을
대상으로 한다는 명분까지 내세울 수 있다는 점에서, 재연프로그램은 ‘품격’과 ‘시청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엔 최상의 장르다.
신선한 이웃 이야기, 과장과 희화화 심각
재연프로그램의 미덕은 이웃의 알려지지 않은 일화나 소소한 일상을 다루기 때문에 재미는 물론 아이템에 따라 감동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엑스트라급 연기자’들의 신선한 연기 또한 매력이다. 하지만, 쌍둥이처럼 닮은 재연프로그램들의 난립으로 시청률 경쟁이
과열화되면서 문제점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타임머신’은 최근 성적인 표현과 소재를 자주 다뤄 시청자들의 비난을 사고 있다. 지난 8월 25일 방영된 ‘사상 초유의 사우나 소동’은
목욕탕에 갇힌 주부가 뜻밖의 오해를 받게 된 사연을 재연하면서 ‘음탕녀’ ‘섹스’ 등의 자극적 단어를 사용해 물의를 빚었다. 8월 18일에는
선거 전략으로 팬티를 뿌린 브라질 의원이 소개되면서 지나치게 선정적 화면을 연출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김윤미라고 자신을 밝힌 네티즌은 시청자의견
게시판에 “매주 민망한 내용이 방영되고 있어 가족이 함께 보기 거북합니다”며 시정을 촉구했다.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의 경우는 검증을 거치지 않은 미스터리 사건을 다룬다는 점에서 미신조장의 우려를 낳고 있다. 괴담 유포의 수준으로
전락할 위험성이 높은 것이다. ‘깜짝 스토리 랜드’ 또한 비슷한 지적을 받았다. 8월 13일 방송에서는 조선시대의 금서 ‘설공찬전’에 대한
이야기가 조작 의혹을 받았다. 문서 기록에 의하면 ‘설공찬전’은 정치적 연유로 금서가 되었는데, 방송에서는 귀신이 쓴 책이라는 이유로 불태워졌다는
내용으로 꾸며졌다. 8월 20일에 방영했던 핸드폰 도둑을 직접 추적한 시민의 이야기도 사실을 과장했다는 비난을 들었다. 최근 뉴스에 방송됐던
실화라 사건의 전말을 시청자들이 비교적 상세히 알고 있었고, 때문에 왜곡된 부분이 눈에 띄었다.
곽 간사는 “시청자 제보를 바탕으로 만들고, 보도된 뉴스를 소재로 삼더라도 각종 허구적인 요소들이 가미된다. 하지만, 시청자에게 실제 사건을
그대로 재연했다는 착각을 유도하고 있어 문제다”며 재연프로그램의 과대포장 경향을 꼬집었다.
정춘옥 기자 ok337@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