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순수성 의심스럽다”,
민 “당리당략으로 접근 말라”
김정일 위원장 연내 답방 놓고 한-민간 반목 격화
최근 남북관계가 급진전될 기미가 보이자, 한나라당이 제동을 걸고
나섰다. 한나라당 남경필 대변인은 9월 8일 성명을 통해 “대선 전 답방은 시기도 적절치 않고 명분도 없다”면서 대선 이전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답방에 대한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그는 이어 “작년 내내 DJ(김대중 대통령)가 답방을 간청했을 때는 꿈쩍도 하지 않다가
대선을 코앞에 둔 이제 와서 답방한다면 어떻게 그 순수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한-민, 당대표 대변인이 모두 나서 비난 공세
이튿날 열린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에서도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불만이 쏟아졌다. 서청원 대표는 “남북적십자회담에서 이산가족 생사 확인 등
6개항에 합의한 것은 국민적 차원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남북문제에서 그동안 실천된 것이 거의 없다”고 비판했다. 김진재 최고의원도
“남북통일축구대회 경기장에서 태극기를 압수했던 행동은 결코 용납해서는 안될 문제다”라고 성토했다.
이같은 한나라당의 주장에 대해, 민주당은 즉각 비난하고 나섰다. 9월 9일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 한화갑 대표는 “답방이 이뤄질지
아닐지는 모르지만 이 문제는 남북교류협력, 한반도 평화정착 등 국익에 도움이 되느냐 안 되느냐는 관점에서 봐야 옳을 것”이라면서 한나라당이
답방 문제를 당리당략적 관점으로만 접근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광옥 최고의원도 “옛말에 사슴을 쫓는 자는 산을 보지 못한다고 했는데, 한나라당이
바로 그런 꼴이다. 집권 이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나라의 평화나 민족장래도 생각지 못하는 것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북풍 공방, 향후 대선 정국의 손익 계산에 따른 것
논쟁은 11일에도 이어졌다. 이날 한나라당 황준동 부대변인은 “대선을 코앞에 둔 김정일 답방은 극심한 남남갈등, 이념분란을 일으킬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면서 “대선후, 퇴임전 답방이 바람직하다”고 논평했다. 반면 민주당 이용범 부대변인은 “‘대선후, 퇴임전’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은 그 속내가 뻔히 보이는 정략적 궤변에 불과하다. 그럴 바에야‘대선후, (김대중 대통령) 퇴임전’이 아니라 ‘대선후, (이회창
대통령) 취임후’라고 노골적으로 주장하는 것이 떳떳하지 않은가”라고 비꼬았다.
이같이 답방에 대해 정치권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이유는, 향후 대선에서의 손익 계산 때문이다. 보수적인 이미지가 강한 한나라당은 연내
답방 성사로 인해 이회창 후보의 대선가도에 악영향을 끼칠까 우려하고 있는 반면, 민주당은 햇볕 정책 계승자를 자처한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이
올라갈 것을 기대하고 있다.
사실 북풍 논란은 1987년 KAL기 폭파 사건, 1996년 북한군이 판문점에서 무력시위를 벌인 이른바 ‘총풍’ 사건 등 선거철마다 나오는
단골손님이다. 이같은 사건들은 대부분 국민들의 안보 경각심을 유발시켜 집권여당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작용했었다. 북측에서 불어오는 따뜻한
바람이, 대선을 불과 석달 앞둔 상황에서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정치권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원순 기자 blue@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