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 보수에서 온건 개방으로
김일성 사후 사라진 실용주의 다시 살아나
북한이 마침내 개방의 문을 여는가? 경의선과 동해선 철도가 연결되고
도로가 가설된다. 대규모 북한 선수단의 부산 아시안게임에 참석하고 금강산 육로 관광길이 열리게 됐다. 그리고 북·일 정상회담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지난 6월 서해교전 이후 두달 사이에 상상할 수 없는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경제기술관료들의 약진
북한이 최근 보여주고 있는 남한과의 화해 분위기와 한반도 주변 4강(일본, 중국, 러시아, 미국)에 대한 외교노선의 변화는 내부 권력구도에
커다란 움직임이 있었음을 시사한다. 이같은 지적은 1990년대 들어서면서 권력구도의 변화가 대외정책의 변화를 이끌어온 북한 사정을 감안해
볼 때 설득력이 매우 높아 보인다.
남북관계가 안정적 화해ㆍ협력구도로 정착되고, 일본과의 정상회담이 열린다는 것은 북한 내부 권력이 강경 보수에서 온건 개방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전문가들은 일반적으로 관측하고 있다.
실제 북한 내각에서 홍성남 총리, 조창덕ㆍ곽범기 부총리, 박남기 국가계획위원회위원장, 김용삼 철도상, 이광근 무역상, 문일봉 재정상 등
90년대부터 개혁·개방을 주도해 온 실용주의 경제기술관료들의 발언권이 높아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연구기관들도 지난 7월초부터 추진중인
경제개혁을 이들이 주도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 군부도 안보를 강조하는 보수주의에서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에서 열린 경추위 2차회의 때 그토록 꺼려하던 남북한
철도와 도로 연결을 위한 군사적 보장각서 발효에 대해 군부가 동의해 준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는 것.
김 위원장의 선택
1980년대 말 이후 북한 정권 안에서는 개혁·개방을 주도하는 실용주의 세력과 체제유지를 우선시하는 군부 중심 보수세력간 권력투쟁이 끊임없이
벌어졌다.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기 전인 1990년대 초반에는 연형묵 당시 총리 등 실용주의 세력이 득세했으나 김 주석 사망 후 김정일 위원장의
이른바 ‘선군정치’ 선언한 이후 군부세력 쪽으로 권력이동이 이뤄졌다.
이는 김 위원장이 1994년 7월 김일성 사망 이후 경제난 등에 따른 북한 사회주의 체제 위기가 심화되자 군부대 방문 등 활발한 대군 활동을
통해 군부의 절대충성을 유도하면서 군을 체제보위 수단으로 적극 활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1998년 김 위원장의 중국 경제시찰 방문을 기점으로 다시 북한 권력은 실용주의 기술관료 쪽으로 이동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때가 바로 김 위원장이 북한 내부의 권력투쟁에서 실용주의자의 손을 들어주고 경제체제의 개혁을 내세워 대외 평화노선을 정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김정일과 강성대국북한이 주장하는 강성대국은 ‘사회주의 강성대국’으로서 다분히 이념성이 짙은 북한의 건국 강령이다. 김정일이 밝혔다는 북한의
북한은 1960년 통일의 과도적 조치로서의 연방제를 제안한 이래 4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연방제를 주장하고 있다. 그 동안 |
고병현 기자 sama1000@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