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만 되면 가슴에 묻어둔 가족이 그리워”
남한 생활 9년째에 접어든 탈북자 김태범 씨
“명절만
돌아오면 가족생각이 나요. 좋지 않은 기억들이 자꾸 나를 괴롭힙니다. 그 기억을 떨쳐 내려고 노력하지만 힘겹네요.”
탈북자 김태범(41) 씨가 추석을 맞는 소감이다. 시베리아 벌목장을 탈출한 김씨가 자유를 찾아 남한으로 내려온 것은 1994년 2월. 혈혈단신이었다.
2남 3녀 중 차남인 그는 결혼을 한 상태로 아내와 아이가 있었다. 그는 자꾸만 가족이 눈에 밟힌다. 특히 자신 때문에 목매달아 자살한
아버지와 정신이상이 된 어머니, 굶어죽은 딸아이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알코올 중독자가 된 김씨
김씨는 마음의 병외에도 몸에 큰 병이 있다. 그는 위와 소장 상태가 좋지 않아 올 초에 큰 수술을 받았다. 지금도 한 달마다 통원하며 약물치료하고
있다. 사업을 실패하고 술에 찌들어 살 때 얻은 병들이다.
한 때는 그도 잘나가던 사업가였다. 공사판 막일, 주차관리원 등을 하며 억척스럽게 번 돈으로 1996년에는 여의도에 쌈밥집을 차릴 수 있었다.
장사가 썩 잘 돼 일산에 분점도 낼 정도가 됐다. 그러나 1997년말 느닷없이 찾아 온 IMF가 그의 꿈을 앗아가 버렸다. 너무 절망적이었다.
그때 설상가상으로 북한의 가족소식도 접하게 됐다.
“죽을 것만 같았어요. 사업도 가족도 산산조각이 나버렸어요. 의지할 데라고는 술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술병을 끼고 살며 알코올 중독자가 됐다. 그를 살린 것은 강원도 양주에서 만난 김태수 목사.
“김목사님께서 ‘너는 자유를 찾아 내려온 선택받은 사람이다. 이런 것보다 더한 시련도 겪지 않았느냐’며 용기를 북돋아 주셨어요. 그 후
김목사님의 도움을 받아 기도원에서 알코올 중독을 치료했습니다.”
“우린 같은 동폰데”
김씨는 작년 9월 탈북자들의 여러 작은 모임을 한 데 묶어 탈북인연합회(현 자유이주민연합회)를 결성하는 데 큰 힘을 보탰다. 그는 현재
이 단체의 사무국장을 맡으면서 탈북동포 한마당 체육대회, 수련회, 사회복지시설 자원봉사, 탈북자 홀로서기 지원 등의 사업을 주도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봤던 사람으로서 “탈북자들의 자활이 가장 시급한 문제”라고 말했다.
“탈북자의 삼분의 일 가량은 경제적 자활능력이 없습니다. 몸이 허약하고 병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을 위해 중고가구수리, 재봉틀 교육 등으로
힘들지 않으면서 기술을 배울 수 있는 홀로서기 지원사업을 하고 있는데 적극 참여하고 있어 희망이 보입니다.”
그는 “남한 사람들이 조금만 더 따뜻한 마음을 줬으면”하고 바랐다.
“잠수함 사건이나 서해교전이 일어났을 때는 탈북자라는 말을 꺼낼 수가 없었어요. ‘때려죽인다’고 해서 일을 그만 둔 사람도 많았어요. 그런
편견을 견디다 못해 탈남을 하는 사람도 여럿 봤습니다. 안타까워요. 우린 같은 동폰데….”
그는 이번 추석 때, 가족 없는 탈북자들과 소주잔을 기울일 일 외에는 특별한 계획이 없다. “평소에는 웃으며 생활하다가도 명절만 되면 가슴에
묻어둔 가족을 그리는 사람들끼리 아픔을 달래야죠.”
아마도 그의 쓸쓸한 추석은 올해가 마지막일 것도 같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교제중인 여성이 있다고 쑥쓰러워하며 털어놨다.
김동옥 기자 aeiou@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