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명동 은행회관에서 한국개발연구원(KDI) 주최로 열린 외환위기 10주년 세미나에서는 외환위기 발생 원인과 대응과 관련 정부 정책의 부적절성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양수길 국가경영전략연구원장은 "외환위기는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발생한 구조적 위기"라며 "국내 기업의 채산성 악화, 관치금융, 재벌에 대한 정부의 지원 등에 단기외자도입 자유화와 같은 결정적 정책실수가 외환위기를 불러왔다"고 지적했다.
양 원장은 "당시 정부가 정책대응만 잘했어도 위기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그러나 정부와 정치권에서 위기를 해결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국제사회는 한국의 문제 해결 능력에 의문을 품게 됐고, 본격적인 외환위기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당시 기아차의 부도처리 문제를 놓고 대통령과 정치권, 시민사회, 언론까지 모두 반대해 몇 달을 끌게 되면서 국제사회는 한국이 문제 해결 의지가 없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는 설명이다.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를 맞게 된 것은 한국의 자본시장 개방을 원하는 미국과 국제통화기금(IMF)의 중립적이지 못한 의도가 있었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제민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한국은 IMF로 가기 전 일본의 협조를 얻어 위기를 해결하려 했지만 미국이 이를 방해했다"면서 "이는 한국을 IMF로 보내 자본시장 개방을 관철시키려는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IMF가 제시한 고금리정책, 전면적 구조조정, 자본시장 완전 개방은 채권자인 외자에게만 일방적으로 유리한 조치였다"면서 "그 결과 한국 시장은 외자의 일방적인 무대가 돼 알짜기업과 금융기관, 부동산 등이 헐값에 팔려나갔다"고 설명했다.
그는 "외환위기 당시 정부는 외부의 압력을 이용해 국내 개혁을 시도했는데, 세계화는 불가피하지만 위험한 덫도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면서 "미국을 이용해 국내 경제를 개혁하겠다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이러한 덫에 빠질 수 있으므로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외환위기 이후 우리 경제는 고성장도 저성장도 아닌 중성장 체제로 전환됐으며, 바람직한 선진국이 아닌 '나쁜 선진국'으로 가고 있다는 진단도 나왔다.
김기원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선진국은 연 1∼3%, 중국과 인도 등 후진국은 8∼10%의 고성장을 하는 사이 우리나라는 4∼5%의 중성장 체제로 전환됐다"면서 "부작용없이 이를 뛰어넘기는 대단히 힘든 상황이므로 장기적으로 이러한 체제에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1인당 국민소득이 증가하면서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가고 있는 것은 맞지만 미국, 이탈리아 등 선진국의 나쁜 점이 복합된 선진국으로 갈 것 같다"면서 "미국의 낮은 사회보장, 이탈리아의 지역 불균형 성장 등에 우리나라의 재벌체제 등이 결합되면서 '나쁜 선진국'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이인권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외환위기 당시 정부는 빅딜을 단행했는데 과잉투자 해소라는 취지는 이해가 가지만 빅딜 업종을 제대로 선택했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면서 "당시 빅딜에 포함됐던 반도체, 석유화학 등의 업종은 설비가동률이 90%가 넘었는데 과연 빅딜을 선택할만한 상황이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아울러 "빅딜 당시 기업 인수합병에 대한 기업결합심사, 즉 경쟁정책이 전혀 적용되지 못했다"면서 "이에 따라 독과점 시장이 고착되면서 소비자에게 상당한 피해를 입히는 부작용 사례도 관찰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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