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거울이 될 수 있는 영화적 소재
절제된 멜로드라마 ‘비밀’
우리는 곧잘 남의 삶을 들여다보기를 즐겨한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남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남의 삶을 엿보는데 그치지 않고, 내가 다른 사람의 삶을 살게 된다면 그 기분은 어떨까?
요즈음 우리 영화를 보면 소재와 장르가 예전에 비해 많이 다양해졌음을 느낄 수가 있다. 선택의 폭이 넓어졌음은 말할 것도 없다. 개봉을
앞두고 있는 우리영화 ‘중독’은 죽은 사람의 영혼이 산 사람의 몸 속에 들어와 사는 ‘빙의’ 라고 하는 독특한 내용을 소재로 삼고 있다.
내 몸은 죽고 다른 사람의 몸을 빌어 살아간다면?…
개봉 전부터 ‘중독’과 비교되었던 영화 ‘비밀’은 교통사고를 당한 두 모녀의 ‘빙의’를 통해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슬프고 아름답게 때로는
웃음을 자아내는 내용으로 만들어 간다.
1998년 출간된 히가시노 게이고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것인데, 작가는 이미 ‘비밀’의 구상을 10년 전에 해 놓았다고 한다. 하지만,
SF환타지가 암울한 상황에 처한 시기여서 미스터리 소설에 그러한 요소를 가미하는데 큰 용기가 필요했다고 한다. 다행히 ‘딸이 아내’라는
이색적인 소재는 관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게 되었고, 일본뿐 아니라 해외 유수의 영화제에서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하였다.
다소 지루할 수 있는 극 전개
일본 내 폭발적인 인기와 해외 영화제에서의 수상에도 불구하고 실상 영화의 중반부에 느껴지는 지루함은 ‘비밀’의 가장 큰 단점으로 지적된다.
교통사고로 인한 딸과 아내의 혼이 바뀐 순간부터 딸 ‘모나미’의 몸으로 살게 된 아내 ‘나오코’의 새로운 삶은 분주하게 시작된다. 그리고
이제는 ‘모나미’가 되어 살아가는 컷이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당연함’에 있다. ‘모나미’로 살아가는 ‘나오코’와 남편이자 아빠인
‘헤이스케’는 현실적이지 못한 상황에 너무도 자연스럽게 대처해가고 있다. ‘빙의’라고 하는 믿지 못할 현실에 대해 냉정하리만치 적응을 잘해내는
것이 조금 의아하기도 하다.
다행히 ‘헤이스케’의 익살스런 표정과 순진한 행동들이 잔잔한 웃음을 주고, 해맑은 ‘모나미’의 연기가 적절히 어울어져 잔잔한 감동을 전해주고
있다. 예를 들어 ‘헤이스케’가 목욕을 하는 장면에서 ‘모나미’가 불쑥 들어와 때를 밀어준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헤이스케’는 딸의 모습인 아내로 인해 순간 당황하지만, 아내가 잘 닦아줄 수 있게 슬며시 팔을 들어올릴때는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거기다
치부를 가리다가 ‘모나미’가 알몸인 그의 엉덩이를 다독거리자 탕속에 빠져버리는 모습에서의 귀여움은 굉장한 매력으로 다가온다.
감성을 자극하는 소재
‘비밀’은 SF환타지, 미스터리 러브스토리 등의 수식어로 불리운다. 허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소재는 그렇다 할지라도 화면에 흐르는 모습들은
멜로 그 자체다. 우선 배우들의 연기가 그렇고, 영화배경마저도 감성을 자극한다. 아기자기한 느낌의 집과 꽃밭, ‘모나미’와 ‘헤이스케’의
질투어린 다툼마저도 그렇다. 그러나 라스트씬을 장식하는 OST ‘천사의 한숨’은 안타까움과 지고지순한 사랑을 몽환적인 분위기로 이끌어간다.
아쉬운 결말, 하지만 아름다운 사랑…
영화를 보고 나서 영화 ‘비밀’에서처럼 내 자신이 ‘빙의’의 실체가 되어 살아간다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자.. 과연 어떨까? 만약
아버지의 혼이 아들의 몸에 ‘빙의’ 되어 엄마가 그 아들과 사랑해야 한다면… 좀 이상하지 않을까? 영화와 똑 같은 상황인데도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영화를 보며 그런 생각보다는 영화속에서의 인물들에 대해서 냉정한 판단만을 한다. ‘어쩌면 저럴수가 있지?’ 하면서 말이다. 라스트
씬에서의 반전을 두고 많은 말들이 들린다. ‘헤이스케’의 아내와 딸에 대한 사랑을 자신의 삶에서 배제하는, 그리고 절제하는 그 모습에서
진정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나오코’의 표현할 수 없는 자신의 상황에 대한 절제와 새로운 삶을 인정하는 모습 또한 너무나 아름답다.
처음부터 끝까지 깔끔한 느낌을 가질 수 있었던 건 서로의 감정을 절제하며, 눈빛으로 이야기하는 그들의 진지한 사랑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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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규 기자 hasid@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