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복원은 국민적 관심이 중요”
중요무형문화재 제74호 대목장 신응수
망국의
한을 읊조리던 세월. 그 시간의 강이 흘러 흘러 이제 2009년이면 조선 건국과 함께 창건된 경복궁의 공사가 완공된다. 경복궁은 외세에
의해 훼손된 조선왕궁의 정궁으로 궁궐문화재의 진수라고 할 수 있다.
유난히도 상처가 많았던 경복궁의 상처를 치유하고 역사적 상징성을 복구하기 위해 지난 90년부터 지금까지 ‘도편수’로 작업 중인 중요무형문화재
제74호 신응수 대목장(大木匠). 그 동안 불국사, 창경궁, 수원성, 안압지, 상춘재, 오대산 월정사, 단양 구인사, 무량사, 안동 하회마을
등 꼼꼼한 그의 손길로 다듬어낸 복원물들이 즐비하다. 대목장은 궁궐이나 사찰, 가옥을 짓는 목수를 일컫는 말로 나라에서는 이 기능을 높이
사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한다.
경복궁 복원이 자연을 훼손한다?
일제에 의해 훼손, 변형된 경복궁을 복원. 정비하기 위하여 5대권역으로 나누어 정비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만만찮은 목재의 수급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많은 사람들이 ‘경복궁의 복원을 위한 목재수급이 자연을 훼손하는 것은 아니냐’는 의구심을 품고 있다고 한다. 신응수
씨의 대답은 절대 ‘아니다’였다. 우리나라는 산림자원 보호를 위해 ‘수종갱신’이라는 것이 있다. 수종갱신은 수명이 다하거나 효용가치가 없는
나무를 벌목하고, 그 자리에 어린 나무를 다시 심는 일을 말한다. 그 동안 경복궁 복원에 사용된 나무들은 바로 ‘수종갱신’을 통해 벌목된
목재이다.
신응수씨의 나무 사랑이야기가 참 재미있다. 1990년 청와대 관저를 지을 때 이야기다. 그 당시 국가에서 조사한 바로는 우리나라에 ‘쓸만한’
목재가 없어 외송(수입송)을 써서 건축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미 쓸만한 재목들이 있는 곳을 대충 알고 있던 신응수씨는
관계자를 대동하여 질 좋은 국산 소나무를 직접 눈으로 확인시키고 우리 것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였다고 한다.
작업당시 그는 “좋은 나무를 찾고 벌목을 하려면 길도 없는 산속에서 몇 일씩 야영하던 생각이 납니다. 산속의 추위를 텐트 따위로는 버티기
힘들죠. 배운 것이 도둑질이라고 간이 기둥과 서까래로 틀을 만들고 그 위에 보온덮개와 천막으로 마무리 하여 생활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라고
회상하였다.
전통을
고집하던 나의 스승
중요무형문화재 제74호로 지정되어 그 능력을 국가에서 인정 받은 신응수씨에게 참 고마운 스승님이 계시다. 바로 조원재, 이광규 선생님이다.
요즘처럼 편리한 기계시설이 없던 때에는 무엇이든 수작업을 해야 했다. 그것이 당연한 줄로만 생각했던 시절. 전통적인 방법을 고집하던 스승님의
모습을 생각하며, 신응수씨는 호탕하게 웃었다.
이유인즉슨 공사에 들어가는 목재들을 재단할 때 일일이 자를 대고 자르는 전통방식을 고집하는 스승님과, 플라스틱과 같은 것으로 목재를 빙두른
다음 선을 그어 잘라 시간과 노력을 절약하는 방식으로 작업하고자 했던 인부들간의 ‘눈가리고 아웅’하는 재미있는 에피소드 때문이었다.
”우리 방식대로 편하게 작업하고 있을 때 선생님이 보시면 아주 난리가 났었습니다. 항상 계시지는 않았지만, 불쑥 찾아오셔서 선생님 지시대로
작업되고 있지 않을 때는 등에 진땀이 날 정도로 혼쭐이 났었죠. 사실 전통방식은 능률이 잘 오르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조금만 현대적인
방법을 접목하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겠다 싶어서 몰래몰래 작업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아주 재미있는 일이죠.”
하지만, 그 스승의 그 제자라고 신응수씨의 전통 예찬은 스승의 그것과 별반 다를 바가 없는 것 같다. “집을 짓는 것은 절대로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내 마음 가짐이 내가 짓고 있는 집에 그대로 표현됩니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직접 깎고 다듬으면서 내가 느끼는 바를 표현해
내야지, 힘들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생략해버리면 안됩니다.”라고 설명한다.
”조원재 선생님에 비해 이광규 선생님은 거의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이런저런 자질구레한 이야기를 잘 하지 않으셨죠. 불국사 복원 공사 때도
무언으로 작업에 대한 평가를 대신하셨습니다. 조선생님에 비해 어느 정도 현대적인 방법에 대해서도 융통성이 있으신 분이었습니다.” 이제 예전의
스승과 같은 나이가 된 신응수씨에게 아직도 생생한 기억으로 계신 두분의 모습이 자못 궁금하기도 하다.
돈에
얽매이지 않아야 장인
전통 양식의 건물 복원, 중건이라는 흔하지 않은 일에서 장인의 숨결을 느낄 수가 있다. 옛것을 소중히 하는 장인의 숨결이 중요무형문화재라는
‘국가적 인정’으로 드러난 결과라고 본다. 자제분들에 대해 여쭤보았다. 하시던 일을 대를 이어 시키실 의향이 있으신지 궁금했다. “현재
큰 놈은 강원도에 있는 제재소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일을 할지는 아직 모르죠. 지켜보고 있습니다. 작은 놈은 군복무 중입니다.
대학도 이 일과 관련된 과에 다니고 있습니다만, 아직 어리기도 하고, 큰 놈과 마찬가지로 지켜볼 작정입니다.”
16살 어린나이에 목수 일을 처음 배우기 시작했던 때와는 많이 다른 지금 신응수씨는 앞으로 우리나라 전통가옥, 사찰, 왕궁 등을 복원하는데
정열을 쏟아 부을 젊은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물론 자신이 배웠던 전통방식 그대로이다. 다행히도 요즘 젊은 사람들 중에서 이 일을 배우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무조건 배우겠다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다 받아들일 수는 없다. 진정한 장인이 되기 위한 기본 실력과
마음가짐이 없이는 가기 힘든 길이기 때문이다.
”장인은 돈에 얽매이지 말고, 자신이 배운 그대로를 전수할 줄 알아야 합니다. 쉽게 갈려고 하는 마음을 가져선 안됩니다. 돈은 따라오게
되어 있는데도 오히려 돈을 쫓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전통의 맥은 끊어지고, 자기가 맡은 일에 책임감이 없어집니다. 그런
사람은 장인이 아닌 그냥 업자일 뿐이죠.”
이런 이유로 장인정신이 없는 사람들의 공사는 안타까운 부실공사로 이어지는 것이다.
사라져 가는 우리 문화 유산들을 유지하고 후손들에게 계승하려면, 옛 것을 복원하는 장인들이 있어야 겠지만, 그에 앞서 각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문화재에 대한 지역국민의 관심이 있어야 한다고 당부한다. 수십년 세월 동안 우리 것을 지키기 위한 경험과 노력에서 나온 결론적 해답이기도
하다. 새로운 것으로 빠르게 대체되는 문화적 현상이 우리 고유의 전통을 흡수하기 전에 그 맥을 이어줄 장인정신이 계승되길 기대해 본다.
박광규 기자 hasid@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