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의 계절, 철새를 기억하라
때가
때인 만큼 마치 페로몬 향을 좇아 짝짓기에 나선 짐승들처럼 보다 낳은 성적 매력을 발산하는 우두머리를 찾아 나서는 정치인들이 크게 늘고
있다.
한승수, 이완구, 전용학 의원이 최근 한나라당에 입당해 정치권이 술렁였다. 또 올 초 노무현 후보와 함께 노풍을 일으키는 데 직접적인 역할을
했던 김민석 의원도 민주당을 탈당, 국민통합 21에 전격 입당해 민주당은 충격과 분노에 휩싸였다.
한 의원은 현 정권 아래서 외교통상부장관을 지내며 DJ 밥을 먹었던 사람, 이 의원은 당 대변인과 원내총무를 거친 중진, 전 의원은 당의
얼굴인 대변인을 지냈던 사람이라는 데서 국민들은 할 말을 잃는다. 게다가 김민석은 또 누군가? 민주당 국민경선 당시 “노무현 대통령, 김민석
서울시장”을 주창했던 인물이 아닌가!
‘역사적 고뇌’, ‘구국의 결단’은 그런 철새 정치인들이 내세우는 한결 같은 이유다. 그들에게 고뇌와 결단은 역사와 구국을 위한 것이 아니다.
단지 자신의 영달을 위한 것일 뿐이다. 이들의 최고 명제는 “다음에도 내가 당선돼 국회의원이라는 특권을 누릴 수 있을까?”, 내지는 “적(敵)당에
입당해서 도움을 준 대가로 나에게 돌아올 콩고물의 크기는 얼마일까”이다.
탈당 후 전용학 의원은 모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민주당 탈당과 한나라당 입당의 솔직한 심경에 대해 “결혼했다가 이혼하는 것처럼 마음이 힘들다”면서
“정치인생의 첫단추를 잘못 뀄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그는 나이가 젊기 때문에 원외지구당 위원장으로 격하될까봐 두려웠다고도
털어놨다. 그게 직접적인 이유였을 것으로 보인다.
한승수 의원은 한나라당의 강원도 진출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한 춘천시 지구당조직책에, 대권의 키를 가지고 있는 충청도에는 천안갑 조직책으로
전용학 의원이 즉각 기용됐다. 최소한 이회창 후보가 대권을 거머쥐기만 한다면, 훗날 이들의 노고도 어느 정도 인정받을 것이다. 이 후보가
이들을 돌덩이 보듯 ‘팽’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최근에는 이들보다 더한 거물급들의 회귀와 훼절이 큰 관심이다. 한나라당에서 ‘미래연합’의 박근혜 대표와 박태준 전 총리, 이인제 의원 등을
영입하기 위해 손을 쓰고 있다는 소문이다. 현재로선 이 의원의 경우 그 가능성에 대해 전면 부인하고 있기는 하지만 정치인들의 행보는 부처님도
모른다. 박 대표와 박 전 총리는 한나라당 입당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알려지고 있다.
이런 철새 정치인들을 바라보는 국민의 마음은 그저 착찹하기만 하다. 오죽했으면 인터넷 상에 “철새 정치인들은 밤섬으로 돌아가라”는 말이
나돌겠는가?
그러나 이런 철새 정치인을 탄생시킨 데는 국민의 책임이 더 없이 크다. 어느 누가 이들의 과거를 묻고 엄중히 심판을 했다고 자신있게 선언할
수 있는가? 버젓이 새로 입당한 당에서 좋은 지역구를 받아 선거에 나오면 당당히 당선됐으니. 우리는 철새의 도래를 욕할 뿐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데에는 너무 인색했던 것은 아닐까? 물론 여기에는 세상의 가장 큰 한 표를 가진 당신이 지역의 노예였다는 태생적 한계도 작용했을
것이다.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의 승리를 위해 우리는 너무도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었다.
철새로 전락한 전용학 의원은 민주당 대변인 당시인 지난해 10월 자민련 김용환·강창희 의원의 한나라당 입당을 두고 이렇게 말한 바가 있다.
“이들의 입당은 명분을 헌 신짝처럼 내팽개치고 정치생명 연장만을 위한 배신과 야합이다. 배신은 또다시 배신을 부르고 야합은 또 다른 야합을
낳는다.”
이런 배신과 야합의 장본인인 이들 철새의 이름을 유권자는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투표를 통해 이들에게 쓴맛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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