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운을 행운으로 바꿔주는 신비의 달마도
동헌 이양형 화백 부부의 독특한 이웃 사랑
인류의
지나온 발자취를 되돌아 보면 여러 가지 모양의 만남과 이별로 점철되어 있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지금도 우리는 일상에서 벗어나 무언가 새로운 변화를 바랄때면 무작정 길을 떠나곤 한다. 그럴때면 누구나 마음이 들뜨게 마련이다. 때로는
미지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감이, 때로는 앞날에 대한 두려움과 말못할 공포가 우리를 찾아온다. 떠나는 길이 앞마을 쯤이라면 덜하겠지만 수만리
길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인류가 수 만년 전 고대인류에서 현생인류로 중근동 부근에 처음 등장한 이후 이들은 무언가의 필요에 의해서 해가뜨는
동쪽을 향해 떠나기 시작했다. 어쩌면 먹을거리를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호기심 많은 우리의 조상은 동쪽 끝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으리라.
결국 이들은 각자 자신들이 도착한 곳에서 각기 다른 모양으로 문명의 싹을 틔우고 현재까지 삶과 종족을 유지해오고 있다.
달마대사…
중국 남북조 시대의 고승 보리달마(菩提澾磨)는 중국불교 선종(禪宗)의 초대조사로 그 역시 동쪽을 향해 떠나온 사람이다. 중국무술의 정수로
알려진 소림파(少林派)무예의 창시자로도 널리 알려진 신승달마는 석가모니의 28대 제자인데 원래는 남천축향지국의 셋째왕자로 태어났다.
그 당시 석존의 27대 제자인 반야다라(般若多羅)존자가 나라 제일의 보물을 보여주며 왕자들의 지혜를 가늠하고자 할 때, 달마는 보물의 진귀함을
떠나 부처의 가르침과 인간이 지닌 마음의 지혜가 가장 고귀한 보물이라 설파함으로써 그의 비범함을 스스로 나타냈다. 그 후 스승 반야다라존자로부터
40년간 사사받고 마침내 스승으로부터 떠나 나름대로의 깨우침으로 득도하였으며, 140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정법불교를 전파하기 위해 바닷길을
통해 동쪽으로 떠났다. 그리고 3년이란 긴 여정 끝에 양나라(지금 광동성의 광주)에 도착한 달마대사는 구 불교의 폐해에 빠진 백성들을 구도하기
위해 양나라 무제(武帝)를 알현하고 여기에서 그 유명한 문답이 벌어진다.
양무제가 물었다. “나는 지금까지 많은 절을 짓고 경전번역도 했으며, 또한 많은 승려를 육성했소. 그리고 수 없이 많은 시주를 했는데 이
공덕이 얼마나 되겠소?” 이에 대해 달마는 “所無功德 황제의 공덕은 하나도 없다”라고 대답했다. 달마대사는 아직 이 나라에 자신이 불법을
널리 퍼트릴 분위기가 성숙하지 않은 것을 깨닫고 양나라를 떠나 위나라로 향한다. 이 때 달마가 갈댓잎을 꺾어 타고 양자강을 건넜다는 이야기는
오늘날까지도 유명한데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일위도강”의 전설이다.
그렇게 하여 달마는 위나라 소림사(少林寺)로 들어가 면벽좌선하면서 때가 성숙하기를 기다렸다. 마침내 혜가(蕙可)가 자신의 팔을 잘라 가르침을
구함으로서 비로서 가사와 ‘능가경’을 전해주며 법을 전수하게 되었다. 소승불교(小乘佛敎)뿐만 아니라 모든 석학홍유(碩學鴻儒)들도 선화(禪化)시켜
달마선사를 종조로 삼는 선종(禪宗)은 중국의 불교뿐만 아니라 각 방면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달마의 면벽구년(面壁九年)연묵(淵默)은 무궁한
뇌성을 울리게 했고, 진인(眞人)의 법력이 종횡으로 치달아 그 신령스런 기운을 천지간에 충만케 했다 한다.
삼재팔란살을 물리친다는 달마도
예로부터 불가에서는 부처님의 가피를 원하며 천의 손, 천의 눈을 가지고 고통받는 많은 중생들을 구제해 주는 관세음보살의 원력을 많이 의지한다.
근래에는 이러한 관세음보살과 함께 수많은 신화같은 법력을 남긴 달마대사의 그림이 수맥을 차단함은 물론 바라보기만 해도 기를 받고 영험을
받는다하여 세간의 화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수년전 「선화기공서법가」현모씨의 서화가 “살아있는 그림 - 달마도의 비밀”이란 프로그램으로 TV매체를 탄 뒤 그의 글씨와 달마도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적이 있다. 실제 현씨가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수 명의 미국인과 중국인들이 난치병과 고질병을 고친 것으로 되어 있다.
또한 각국의 초능력자들을 초빙해 온 요가수련 미국본부인 「요가난다」측의 공식초청을 받기도 했다. 선승달마의 살아있는 전설은 현대에까지 그
위력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신비의 달마도를 이웃에게…
얼마전 금니불화의 대가 무유스님(부산 기장 금산사주지)의 달마도가 크고 작은 액운을 물리치고 12년마다 한번씩 닥쳐 오는 삼재팔란살도 거뜬히
퇴치함은 물론 악삼재(화재·수재·풍재)를 복삼재로 바꾸어 놓는다는 보도(광고)가 있었다. 이러한 달마도의 효험은 단순한 그림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의 수행과 노력이 뒷받침되어야만 한다는 것 또한 정설이다. 전라도 장성 백양사에서 십수년간 수행하고 많은 불사에도 참여해
왔으며 우리나라 남종화의 대가인 남농 허건 선생에게 이십년 가까이 직접 사사받은 동헌(東軒)이 양형(62)화백이 최근 강원도 횡성에서 「한얼문화예술관」의
개관을 목전에 두고 그려내고 있는 달마도 역시 이러한 선화기공의 효험으로 조용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소위 말하는 삼재와 팔란(손재 및
관재구설·부모·형제·부부질병·가정풍파·이별·주색·학업중단)을 만나면 그 당사자의 흉함이 이루 형용할 수 없는데, 가정에 달마도를 소장해
둠으로써 이러한 삼재팔란을 면하고 그 흉함이 소멸된다는 것이다.
열심히 노력하고 선히 살고자 힘쓰지만 오히려 집안에 우환이 따르고, 하고자 하는 일마다 막히며 가족들이 이유없는 병마에 시달리는 등 인력으로는
어쩔수 없는 경우를 우리는 흔히 경험한다.
부부작가로 부인 설매(雪梅)이 정자 화백과 함께 오랜기간 수행하며 도력을 쌓아온 이양형화백은 장애자돕기, 교도소재소자돕기, 청소년 가장
및 무의탁노인 돕기, 불우이웃 돕기등을 위한 자선 서화전만도 붓을 잡은 이후 수십회에 이른다. 국내외 유명 서화전에도 20회에 걸쳐 입상함은
물론 한·중·일·북한 국제전을 직접 주관하기도 한 이화백은 최근 강원도 횡성에서 한얼문화예술관의 개관에 즈음하여 자신의 이러한 역량을 총집결하고,
주변에서 IMF여파로 인해 본의아닌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웃들을 돕기 위하여 달마도를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불가에서 말하는 이타행(利他行)의 마음으로 그리는 그의 달마도는 신비의 영험함은 물론 작가적 역량이 집대성된 작품성으로도 충분히 소장할
만한 가치가 있다 하겠다.
인 터 뷰 - 동헌 이양형 화백 |
"어려운 분들에게 작은 정성이 보탬이 됐으면" 이번에 한얼문화예술관을 개관한다고 하는데 |
강원도 횡성군 우천면 용둔리 75-2 한얼문화예술관 033)345-0153
강원지역본부/ 김승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