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은 국민 감정을 읽어라”
지난 6월13일 경기도
양주군에서 친구생일잔치에 가던 꽃다운 열네 살의 두 여중생(신효순, 심미선)이 훈련중이던 미2사단 44공병단 소속 장갑차에 압사하는 가슴
아픈 일이 일어났다. 이 사건이 일어난 후 유가족과 시민·사회단체들은 진상조사와 함께 불평등한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의 개정을 요구하며,
용산미군기지와 동두천 미2사단 캠프 캐이시 등지에서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그것은 ‘공허한 외침’이었다. 11월20일 관제병인 니노 병장이 무죄 평결을 받은 데 이어 이틀 뒤에는 운전병인 워커 병장에게도
무죄가 선고됐다.
두 여중생의 죽음은 한국 땅에서 발생했고 명백하게 미군의 잘못에 의한 것이었다. 하지만 재판은 미군기지 내에 있는 군사법정에서 열렸고,
우리의 사법력은 그곳을 뚫을 조그만 힘도 없었다.
그 재판을 지켜 본 사람들은 말을 잃었다. 힘의 우위에 선 자가 도덕까지 지배하는가? 우리의 아이들에게 이 이상한 재판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을 해줄 수 있을까?
대 테러 전쟁이라는 기조 아래 전 세계 평화유지군을 자처하는 미군. 그들은 SOFA 협정을 앞세워 우리나라에서 무법천지로 행동하고 국민에게
피해를 입히고 있는데 우리는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다.
불평등한 SOFA 개정해야
주한미군의 범죄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주한미군의 역사는 곧 미군범죄의 역사로 불러도 될 만큼 이 사회의 뿌리깊은 문제로 자리잡고 있다.
정부 공식 통계에 따르면 1967년부터 1998년 말까지 발생한 미군범죄는 5만 건이 넘는다. 접수된 사건만 이렇다는 것이다. 경찰에 접수되지
않은 사건까지 감안하면 실제로는 더욱 많은 범죄가 일어났음을 짐작할 수 있다. 위의 통계를 근거로 1945년 9월 8일 미군주둔 이후 2002년
11월 현재까지 발생한 미군 범죄는 약 10만 건이 훨씬 넘을 것이라고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는 밝힌다.
그나마 1992년 10월 미군 케네스 마클이 윤금이 씨를 끔찍하게 살해했던 사건 이후 미군범죄가 사회적으로 공론화 되면서 범죄 발생율이
줄어들기는 했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매년 700∼800건의 주한미군범죄가 발생하고 있다.
이런 주한미군범죄로 인해 미군은 더 이상 우리의 우방이 아니라는 생각이 급속도로 번져 나가고 있다.
미군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건의 진상규명과 살인책임자처벌을 요구하는 범국민서명운동은 지난 10월31일부로 100만 명을 넘어섰다.
두 여중생 범국민추모문화제 현장에서 미군의 재판권 포기를 요구하는 서경원 전의원과 학생들을 구타하는 등 미국이 보여준 행동은 불신과 분노의
벽을 넘어 국민들로 하여금 적대관계로까지 인식하게 만들고 있다.
미국은 해외 파병된 자국 군인의 안전을 염려하고 있을 터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타국민의 희생을 담보로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주한미군은
폭발한 우리 국민의 감정을 속히 이해하고, 상식과 도덕이 통하는 SOFA 개정 요구에 응해야 할 것이다.
세계 여러 미군주둔국에서 미군기지의 이전과 각종 군사시설물의 철수 요구가 빗발치며, 미군이 설 땅을 좁게 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요구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모두가 아는데 미국만 모르고 있다. 열 사람의 인심을 얻기 위한 그들의 명분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지고 자꾸만 적을
만들고 있다. 불평등한 SOFA를 개정하고 주둔국의 국민들을 존중할 때만이 미군은 적이 아닌 동지로, 그리고 평화유지군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