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입에 담기도 부끄럽다
지난 12월10일은
54번째 맞는 ‘세계인권의 날’이었다. 이 날은 인권신장과 보호를 위해 제정됐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의 인권 현실은 암울하기만 하다.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 이듬해인 1998년 세계인권선언 50주년 기념사에서 “인류 역사 이래 사람이 있는 곳에 인권이 있었다. 그러나
권력이 있는 곳에 반드시 인권의 침해가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권력으로 인해 인권침해를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뜻이었다. 2000년
김 대통령은 인권과 민주화를 위한 그간의 노력을 인정받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1998년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인권대통령을 뽑자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고유한 권리를 가진다는 천부인권. 이는 미국의 독립혁명(1776)과 프랑스혁명(1789)을 거치며 감히 국가도
침해할 수 없는 권리로 인정받게 됐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인권을 운운하기에는 너무도 부끄러운 현실이다. 권력과 재력 앞에 힘없는 자들은 짓밟히고 착취당했다. 아무리 소리
높여 말해본들 그 벽은 너무도 높았다. 김 대통령이 약속한 결과가 고작 이것이란 말인가?
인권대통령을 자임하던 김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가도록 한국의 인권지수는 아직도 바닥을 헤매고 있다. 장애인과 여성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은 여전하다. 피의자를 구타해 사망에 이르게 하는 등 폭력적 수사관행도 여전했다. 국가보안법은 아직도 살아서 숨쉬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군부독재시절 고문과 폭력을 일삼던 자들은 공소시효가 다 됐다는 이유로 거리를 활보하고 다닌다. 양심수들은 이 추운 겨울 차디찬
콘크리트 감옥 속에서 떨고 있다.
물론 인권의 성장을 가져온 부분도 없지는 않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설치돼 억울하게 인권침해를 당한 사례를 수집하고 접수받아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또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를 한시적으로 운영하며 과거 공권력에 의해 의문의 죽임을 당한 사건을 재조명했다. 하지만 이 마저도
그다지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고 있다. 생색내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국민의 염원을 모아 설치된 국가인권위원회는 관련법의 규정 내용이
미흡한 점이 많아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도 한시적으로 운영된다는 점과 수사권이 없다는 점, 피의자를 소환조사
할 수 없다는 점 등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우리 국민의 인권이 미군의 군화발에 짓이겨질 때도 국가는 보호해주지 못했다. 지난 6월13일 발생한 여중생 사망 사건과 관련, 정부는
소극적 대응으로 일관해 국민의 분노를 샀다. 피해자는 있는데 책임자가 없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우리 정부만 이해했다. 아량이 넓어서인가?
줏대가 없어서인가? 아니면 국민의 인권을 우습게 여겨서인가?
반미감정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정부는 부랴부랴 반미확산방지를 위한 대책회의를 갖고 불평등한 SOFA(한미 주둔군지위협정)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SOFA의 전면적 개정이 아닌 단지 운용상의 개선 약속은 국민들의 분노를 누그러뜨리지 못하고 있다.
호주, 중국 등 해외에서도 갖은 인권 유린을 당하고 있지만 정부는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호주 이민수용소에는 몇 년째 갇혀
있는 한국인들이 다수 있고 중국에서는 재판없이 한국인을 총살시키기도 했다. 하기야 우리나라에서 외국인노동자들을 그토록 탄압하고 있는
마당에 할 말이 없을만도 하다.
복지신장도 좋고 경제성장도 좋다. 그리고 정치 안정도 훌륭한 구호다. 그러나 가장 우선적으로 국민을 소중히 여기고 존중하는 정부가 필요하다.
다음 대통령은 진정한 인권대통령을 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