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수 의원(민주당·서울 중랑구 갑·3선)
노무현 대통령 탄생시키기 위해 심혈경주
민주당의 발전적 해체 주장엔 “무리와 부작용 일어나지 않도록”신중
이웃
일본에서는 변화무쌍한 정가를 두고 “한치 앞이 캄캄하다”고 표현하지만 노무현 후보 당선의 여러 경위를 들여다 보면 이 말이 실감나게 와
닿는데 그 중 민주당 선대위 총무본부장을 맡아 대선승리의 견인차 역할을 한 이상수 의원(56)의 경우를 두고 보면 여러 가지 흥미를 돋군다.
이 의원은 민주당 원내총무를 마다하고 임기도중에 도중하차하고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경선에 나섰다. 상대는 재선의 김민석 의원이다. 결과는
김 의원의 승리로 끝났으나 이 의원의 패배를 아쉬워하는 소리가 높았다. 더욱이 이 의원이 김 의원에게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보내자
정가에는 모처럼 훈풍이 일어났다.
서울시장 후보 탈락 딛고 대선서는 맹약
그러나 본선결과 김 후보가 낙선.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자 민주당에는 암운이 드리우는 듯했다. 수도에서의 패배가 대선에 적지않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측되었기 때문이다.
노무현 후보의 대선까지 겪은 우여곡절은 가히 소설적이다. 외부의 바람보다 당내에서 소용치는 파랑이 더욱 거셌다. 끝내 정몽준씨와의 후보단일화가
거론되고 결국 노 후보도 당내압력에 굴복, 양자택일의 여론조사에 응하게 되었으며 이 와중에서 김민석 전의원은 정몽준 진영으로 합류함으로써
민주당에 충격파를 던졌다.
이상수 의원은 당내에서 일어나는 「반노」바람에 맞서 「친노」의 기치를 높이 들었다. 선대위의 총무본부장으로 맹약했다.
결과는 12월19일 대선일 늦게야 판명되었지만 노 후보의 당선으로 이 의원이 안은 감격이 어떠했으리라는 것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었다.
이 의원은 비록 재야권 출신이지만 온건론자로 알려져 있다. 모진 고통을 겪었으나 자기신조를 굽힌 적이 없으며 항상 주변의 의사를 아우르며
정치적 성장을 이루어 왔다.
그래서 지난 12월22일 조순형 의원을 비롯한 23명의 개혁파 의원들이 민주당해체 및 지도부2선 퇴진을 전격 요구하고 나선 데에 합류하지
않었다. 이 의원은 김원기 정대철 이해찬 김경재 의원 등 선대위 간부들과 더불어 ‘점진적 개혁’을 지지하는 입장인 것이다.
대우 노조 편들다 노 변호사 함께 구속
이 의원은 “이들 개혁 추진파들의 뜻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당내 각파를 아우르는 분위기 속에서 개혁을 추진해야 할 것 같다”고 매우 조심스럽게
소견을 밝혔다. 덧붙여 “빨리 몰아 붙일 경우 대선승리 후부터 당의 갈등이 터져나오는 것으로 비쳐 좋지 않다”면서도 “새 대통령 취임전
까지 당 개혁을 마무리한다는 것이 공약이므로 그것은 지켜질 것”이라고 내다 봤다.
이 의원은 일찍이 개혁신당을 주창 해 왔다. 그래서 금년8월 당내 재야출신 모임인 국민정치연구회에서 ‘개혁신당으로’라는 연제를 통해 “앞으로
창당될 신당은 정책과 이념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모여야 국민의 지지를 받고 대선에서도 이길 수 있다”는 지론을 편바 있다.
동갑인 이 의원과 노 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인연은 87년에 소급된다.
인권변호사로 활약한 두 사람은 대우조선 사태 때 시위중 숨진 노동자의 부검 및 장례식 문제가 발생했을 때에 노동자의 편을 들다가 제3자
개입 및 장례식 방해로 함께 구속된 일이 있었던 것이다.
그후 두 사람은 굳건한 유대를 지녀왔으며 급기야 이 의원은 노 무현 대통령 탄생의 위업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이 의원의
역량발휘는 바야흐로 지금부터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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