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그 이면을 주목하라
우리시각으로
3월20일 11시40분 미국과 영국의 이라크 침공이 시작됐다.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이날을 “유엔과 국제사회에 슬픈 날”이라고 규정했다.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힘센 청년이 어린아이의 손목을 비틀어 과자를 빼앗아 먹는 일을 하는데, 세계의 누구도 그걸 말릴 수 없었다. 심지어
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사회의 최고 협의기관을 자처했던 유엔조차도.
이라크는 폭탄이 아니라 빵이 필요하다
미국은 이라크 전쟁을 수행하는 이유를 ‘국제사회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전쟁을 일으키는 모든 정부의 의도를 우리는 반드시
따져봐야 한다. 자유를 위해, 민주주의를 위해, 침략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전쟁을 종식시키려고 한다지만, 이러한 이유야말로 국민들이
전쟁을 지지하게끔 만들기 위한 가장 손쉬운 동원법임에 틀림없다.
실제로 미국이 이제껏 그래왔던 것처럼 이라크를 침공한 것은 자국의 이익을 위한 것, 즉 이라크의 석유를 차지하기 위해서다. 다른 모든 이유는
석유의 진한 색깔과 향을 가리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프랑스의 식민통치를 무력화시키고 베트남에서 실권을 행사하던 일본의 항복으로 생긴 힘의 공백을 비집고 들어가 인도차이나를 지배하기 위해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 뛰어들었다. 북베트남으로부터 남베트남을 보호하겠다는 것은 핑계였다. 미국은 베트남전에 참전할 명분을 만들기 위해 자국 구축함이
정찰 수행중에 북베트남의 어뢰정 공격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라. 세계최고의 해군력을 보유한 미국에 가소로울 정도의
해군력을 지닌 북베트남이 공격할 배짱이 있겠는지. 사실, 미국의 구축함은 일상적인 정찰을 수행하고 있었던 게 아니라 첩보 활동 중이었다.
미국은 또 힘의 우위를 내세워 스페인으로부터 플로리다를, 멕시코로부터 캘리포니아 일대를 ‘약탈’했다. 또 쿠바의 바티스타, 니카라과의 소모사,
도미니카공화국의 트루히요, 아이티의 뒤발리에, 필리핀의 마르코스는 미국의 지원을 받아 국민을 유혈통치했던 군사정권이다. 이러한 미국에 과연
세계평화를 말할 도덕심이 남아 있을까?
미국의 실천하는 지식인으로 추앙받는 하워드 진은 “전쟁은 폭력과 잔인함에 맞서 선한 대의처럼 보이는 것을 위해 수행될 수 있지만, 전쟁 자체는
폭력과 잔인함을 증폭시킬 뿐”이라고 경고했다.
하워드 진 자신은 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수로서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고 수많은 사람을 살상하는 데 동조를 했다. 그는 전쟁이 끝난 후
그 참상을 보고, 자신의 행위를 지금껏 반성하며 반전의 깃발을 높이 치켜들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러한 전쟁, 특히 유엔안전보장이사회로부터 승인조차 받지 않았다고 비난받는 침략전쟁에 지지를 넘어 파병할 태세다.
1991년 발발한 걸프전 이후 이라크는 기아와 전염병에 시달리고 있다. 신생아의 25%가 2.5kg 이하의 저체중아다. 40%는 만성영양실조에
걸렸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폭탄이 아니라 의약품과 빵이다.
지금 대한민국 곳곳에서 시민들의 반전평화 물결이 넘실대고 있다. 국회의원들도 이에 동참해, 3월25일 통과될 것으로 여겨졌던 파병동의안이 4월
이후로 연기됐다. ‘이라크 다음 북한’이라는 근거없는 소문(아니 실제로 그 전쟁이 혹시 일어난다고 해도) 때문에 파병을 결정한 것은 전혀 옳지
않은 일이다. 남의 전쟁을 지원하면서 한반도에서는 안 된다고 하면 그 얼마나 자가당착식 논리란 말인가.
shkang@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