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 직전에 학교선배인 이헌재 부총리 겸 재경부장관 천거
“백수로 들어와 엽기돼서 나간다”, “다시 백수로 돌아가고 싶은데 굳이 뻘밭에 가라고 하니 뻘밭으로 간다”.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온갖 화제의 중심에서 언론계에 파문을 일으켰던 유인태(柳寅泰·56) 전 의원의 이임사다. 이 말에는 약간의 주석이 필요하다. 백수는 그렇고 ‘엽기’라는 사뭇 튀는 표현은 유 전수석에 붙여진 별명이다.
유래는 정무수석 재직시에 충북 청원의 청남대에서 청와대 전용버스로 서울로 돌아오는 도중 버스에서 내리며 한 “엽기는 이제 물러갑니다”라는 인사말이 시초다. 그런데 그후 유 수석의 톡톡튀는 독설과 애교넘치는 기행이 겹쳐 ‘엽기 수석’으로 고정화되고 만 것이다. 또 ‘뻘밭’은 정계를 뜻한다. 즉 국회의원에 출마한다는 뜻이다.
유 전수석이 ‘내키지 않는 출마’라는 표현을 쓴 것은 그가 14대 총선에 당선했으나 그후 15대 총선과 종로에서의 보궐선거에서 연패해 주눅이 든데 기인한 듯하다.
술잔 부딪치며 ‘건배’ 대신 ‘긴장!’
그러나 17대 총선에서의 상황은 달라졌다. 처음 도봉을에 발을 디뎠을 때의 지지율이 19.5%로 한나라당의 P후보 (14.4%) 와 현역인 설훈 의원(13.1%) 보다 한발 앞섰던 그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 가결의 후폭풍이 겹쳐 36.9%로 급등, 전기한 인사들의 16.2%와 15.9%를 훨씬 상회하고 있어 유전수석의 애당초 걱정은 기우임을 보이고 있다.
유 전수석은 친근미 넘치는 외모와 사치와는 무관한 외양, 그리고 서슴치 않는 언행으로 청와대의 이인(異人)으로 평 나있어 ‘엽기 수석’으로 통했으며 갖가지 에피소드로 장식돼 왔다.
노 대통령이 한동안 언론과의 긴장관계를 주문할 때 그는 기자들과 소주잔을 기울이기에 앞서 ‘건배’대신 ‘긴장’을 선창해 화제에 올랐다.
노 대통령과 유 전수석의 관계는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 때부터이니 두사람은 서로를 너무나도 잘 아는 사이로 알려져 있다. 노 대통령이 청와대 인사를 할 때에 주저없이 그를 정무수석에 기용할 정도였다. “나 때문에 온갖 고생을 했고 또 빛을 보지 못했다”며 배려할 뜻을 주위에 비쳤으며 임명 후 유 전수석의 웬만한 실수는 삭이는 아량을 보였다.
사형선고 받으면서 ‘피식’ 웃어
유 전수석에게는 이런 에피소드가 있다. 1974년 민청학련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의 일이다. 재판장이 사형을 선고하는 순간 ‘피식’ 웃고 말았다. 너무 어처구니 없어서 나온 웃음이다.
그는 노 대통령에게 직언을 할수 있는 몇 안되는 측근참모로 알려져 있다. 이는 그만큼 노 대통령의 깊은 신임과 신뢰를 받고 있음을 말한다. 또 그토록 자신의 직책에 온 심혈을 기울여 일하고 책임을 다했다는 증좌이기도 하다.
그만큼 각계 각방면에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많은 친지를 가진 인물도 드물다. 그러나 그는 인간관계에 있어 매사에 신중을 기해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았다.
그는 목표달성을 위해 어떤 희생도 감수할 만큼 저돌적이다. 또 금전과 관련 어떤 소문도 없을 만큼 청렴하다는 평이다.
그가 물러나면서 노 대통령에게 선사한 마지막 선물은 부총리겸 재경부장관에 학교 선배인 이헌재 씨를 본인이 고사하는 것을 적극 설득 천거한 것이었다.
학력 및 경력 경기중·고 졸업, 서울대 사회학과 졸, 민청학련사건으로 사형선고 (4년5개월 복역), 광주민주화운동 수배, 제14대국회의원 (도봉갑 민주) , 한성대 객원교수 (행정학),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 교육연수원장, 노무현 대통령후보 정무특보, 대통령 정무수석비서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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