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을
거슬러 되새겨보는 고등학교 시절. 제주도 수학여행의 참혹한 기억이 새롭다. 충남 공주에서 출발, 논산을 거쳐 호남선 열차를 타고 목포에
도착했다. 유달산을 돌아본 뒤 저녁나절에 제주행 여객선 3등 칸에 설레는 마음을 가누며 몸을 실었다.
유난히 짙푸르던 다도해를 거쳐 탐라 섬을 향하던 5백t 급 여객선은 처음엔 사뭇 힘차게 파도를 갈랐다. 여객선은 시간이 갈수록 큰 바다로
들어섰다. 선체가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추자도를 지나고 밤이 이슥해졌다. 폭풍우가 일고 파도가 사나워졌다.
선원들은 여행자들을 선실로 황급히 피하도록 주문했다. 이후 출입금지로 캄캄한 시간을 선실 속에서 보내야했다. 3등 칸은 선체의 바닥 쪽에
위치해 움직임이 좀더 심했다. 어둠 속에 파도에 실려 흔들리는 선실에서 우리는 곤혹스런 상황을 맞아야했다.
선체가 가라앉는 듯하다가 솟구치는데 구토를 참아내기가 아주 어려웠다. 여학생들 앞에서 평소 의젓해 보이려던 친구들마저 인사불성 상태였다.
선실은 아수라장이 됐다. 여자 친구들은 체면 불구하고 이물질들을 토해내야 했다.
선생님들까지도 혼이 난 수학여행이었다. 굳이 기억하기조차 거북한 추억을 더듬는 까닭은 그날의 상황이 요즘 우리나라 처지를 보는 듯해서다.
근래 우리나라는 폭풍우 앞에 떠있는 추풍낙엽 같다.
파도에 휩쓸리는 여객선의 중심축, 우리 사회의 중심축이 과연 어디 있는가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다. 우리는 지금 ‘개혁과 보수’라는 양
날개 가운데에 서 있다. 또 지도층과 서민, 가진 자와 없는 자 사이에서 열병을 앓고 있다. 시간과 상황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개혁과 서민이
종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서민, 즉 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세력들은 지금 개혁과 변화에 몸부림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현실이 그저 싫은 것이다.
3등 칸에 실려 방향 감각 없이 흔들리는 처지를 무조건 벗어나고 싶어 한다. ‘변화와 개혁’의 새바람을 맞고 싶은 것이다.
‘변화의 새 바람’은 그러면 어떻게 불어야 할까-. 바로 국민이 목마르게 원하는 방향이다. ‘서민이 따뜻하고 배부른 방향’이라고 정리하고
싶다. 평화롭고 안정된 가운데 성장을 원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이란 배가 난파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필자는 그동안 살아오면서 확실히 체득한 것은 우리 사회에 분명한 중심 세력이 있다는 사실이다. 학교에 가면 선생님이나 교수들 사회에도 중심세력이
있었고 학생들 사이에서도 중심 세력이 있었다. 가정이나 직장, 행정부와 사회단체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들 중심 세력은 때로는 변화와 개혁을
이끌기도 하지만 때로는 제동을 걸기도 한다. 자신들의 이해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거나 집단화하기도 한다. 이들의 움직임은 번번이 우리 사회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 감당하기 어려운 상대로 나타나기도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최근 ‘못해 먹겠다’고 실토해 화제가 됐던 말이 바로 이런 배경이다. 중심세력이 우리 사회에 권력과 조직, 정보를 한꺼번에
쥐고 있는 대통령도 감당하기 어려운 상대로 나타난 것이다. 대통령이 추구하는 ‘변화와 개혁’에 제동을 걸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이때 ‘여객선이 파도의 흐름을 타듯’ 중심세력의 움직임에 국가지도자는 과감히 흐름을 잡아야한다고 본다. 국민이 바라는 것이 무엇이고
목마른 것이 어디 있는지를 알아야한다. 우리 사회가 흘러가야 할 방향을 정확히 꿰뚫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변화와 개혁’을 위해 우선 ‘국민의 힘’이 어느 곳에 있는지 정확히 알아야한다. 여당인 민주당에도 끌어안을 세력이 있고 버릴 세력이 있다.
물론 야당에도 마찬가지다. 진정한 ‘국민의 힘’은 정계와 재계에도 있고 교육이나 사회, 문화계에도 있다.
필자는 우리 사회의 ‘변화와 개혁’을 위해 국가지도자가 나라를 이끌어갈 분명한 나침판을 제시해야한다고 본다. 바로 ‘평화와 안정, 그리고
경제 성장’이란 지표다. 이 중요하고 절실한 과제를 확실히 제시할 때 진정한 ‘국민의 힘’을 얻게 된다고 생각한다.
‘변화와 개혁’의 시대를 맞아 우리 한번 기대해 보자. ‘역사의 수레바퀴’는 결코 되돌아간 적이 없다. 항상 진일보했다. 우리 사회의 중심세력들도
‘나라와 민족’을 위해 이제 마음을 비울 때다. 그리고 힘을 합쳐 바람직한 ‘변화와 개혁’을 이끌어 가야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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