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세상 만드는 음악 전도사
장애인에게 무료 레슨하는 바이올리니스트 손인경 씨
인간을 풍요롭게 만드는 세 가지가 있다.
꿈, 사랑 그리고 음악. 음악은 번역할 필요가 없는 세계 공용어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듣기 때문이다. 연주자의 혼이 서려있는 음악은
관객에게 무한한 감동을 선사하고 세상을 따스하게 만든다. 그러나 세상을 향한 내 안의 목소리를 내고싶어도 방법을 몰라 안타까워하는 이들도
많다. 손인경(38) 씨는 그들에게 음악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법을 가르친다.
조금 불편하지만 열정은 최고인 단원들
손씨는 클래식 계에서는 이미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다. 한국인 최초로 예일음대 대학원에서 음악박사학위를 취득했고, 귀국 후 동문들과 SOMA
피아노 트리오를 조직해 활동중이다. 서울예고, 연세대,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출강하고 있고, 가정에서는 두 남매의 어머니로 바쁜 나날을 보낸다.
시간내기도 힘든 빡빡한 일정이지만 그녀는 첫째, 셋째주 화요일에는 어김없이 서빙고동에 위치한 온누리교회에 모습을 나타낸다. 장애인 음악교실의
15명 단원들이 그녀를 기다리기 때문이다.
“아마 우리 단원이 연주하는 걸 들어보면 깜짝 놀랄 거에요. 처음엔 피아노를 칠 줄 아는 몇 명의 학생을 제외하고 대부분 악기를 다뤄본
적 없는 아이들이었죠. 그런데 지금은 실력이 대단해요. 여기저기서 공연 섭외가 들어온다니까요.”
자식 자랑을 하는 어머니처럼 손씨는 음악교실 학생들 한명 한명에 대해 자랑을 늘어놓았다.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매우 산만하던 자폐아들이
한 명은 뛰어난 첼로리스트가 됐고, 또 한 명은 클라리넷으로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수험생이 됐다. 시각장애아는 청각능력이 탁월해 들려주는
대로 습득하는 능력이 있어 다수의 악기를 연주할 수 있게 됐다.
“딴짓 하다가도 피아노전주가 들리면 준비태세를 잡아요. 얼마나 열심인지 몰라요. 땡강을 부리다가도 ‘음악 못하게 한다’라고 으름장을 놓으면
바로 말 잘 듣는 학생이 되죠. 음악에 대한 열정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어요.”
장애우를 위한 음대 생기길
손씨는 1999년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의 앵콜독주회에서 부모 없는 어린이 60명이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동안
‘나만을 위해 음악을 했구나’하는 부끄러움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때마침 그녀의 어머니는 꿈속에서 커튼 뒤로 휠체어를 탄 아이들과
그들을 가르치는 그녀의 모습을 보았다. 손씨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바로 교회 목사님을 찾아가 자신의 뜻을
비쳤다. 그때가 1999년이었다.
“어려운 일도 많았죠. 장애아를 가르칠 준비가 제대로 돼있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쉽게 배울 수 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아요. 저도 아이들과 생활하면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이 일을 그만 둔다는 것을 생각조차 못 할 정도로 음악교실은 그녀의 생활이 됐다. ‘봉사’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건 잘못이라며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일 아니냐는 그녀는 한 가지 간절한 소망이 있다.
“탁월한 능력이 있는데도 갈 대학이 없어 진학을 못한 학생이 있어요. 그 아이를 보면서 장애인도 음악을 배울 수 있는 학교가 꼭 생겨야
한다는 바람이 생겼습니다.”
손씨는 아직도 첫 콘서트 때의 감동을 잊을 수 없다. 단원들 스스로도 만족했고, 관객의 호응도 뜨거웠다. 장애인을 자식으로 둬 그동안 가슴
아팠을 부모들은 감동의 눈물을 흘렀다.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손인경 씨, 그녀의 눈에도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려 가슴에 깊게 파고들었다.
안지연 기자 moon@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