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심어주는 희망 설계사
소외된 10대 여성 보듬는‘늘푸른여성정보센터’ 성교육상담가 장혜순 씨
“부모들이 찾는 아이들은 행복한 거죠. 많은 아이들이 부모에게 연락했을
때 ‘버린 지 오래됐다’면서 외면 받기 일쑤거든요.”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늘푸른여성정보센터’. 가출·성매매 등으로 갈등하는 10대 여성을 위해 국내 최초로 2000년 12월 서울특별시에서
설립한 종합지원센터다. 이곳에서 성교육상담을 맡고 있는 장혜순(43 여) 씨는 창립 때부터 지금까지 많은 아이들과 정을 나누고 있다.
탈출할
수밖에 없는 아이들
“2년8개월 남짓 아이들과 상담하면서 느낀 것 중 하나는 집을 나온 99%는 가출이 아닌 탈출이라는 거에요.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놀고싶어서,
공부하기 싫어서 집을 나오는 아이들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아요. 대부분은 알콜중독자이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부모로부터 벗어나고자 어쩔 수 없이
집 밖으로 나오는 거죠.”
장씨가 꺼낸 말은 그녀가 사회에서 ‘탈선’ 학생이라 불리는 아이들을 가식적 이해가 아닌 가슴으로 포용하고 있음을 단번에 느끼게 했다. 자신은
봉사하는 게 아닌 다만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라는 전제를 깐 그녀는 야간 길거리상담 때의 경험을 들려주었다.
“매주 목·금요일에 여의도와 동대문에서 길거리상담을 합니다. 처음 거리를 방황하는 그들을 봤을 때 아무 말도 못하고 그냥 안고 울기만 했어요.
제 아이도 중3입니다. 같은 또래인데 어떤 아이는 안락한 집에 있고 어떤 아이는 저렇게 헤매고 다니는구나하는 생각을 하니 눈물이 나오더군요.”
가출해 잘 데도 없이 돌아다니는 아이들에게 처음엔 배고픔을 해결해준다. 그리고 관심을 끌만한 재밌는 이야기나 놀이를 통해 거리감을 해소한
후 성상담을 시작한다.
“처음엔 약간 거부반응을 보이지만 정에 목말라 하는 아이들이기 때문에 금새 친해지죠. 그렇게 만나서 쉼터로 옮겨지면 교육도 받고 자신이
배우고 싶은 기술도 배워요. 매년 70명 정도가 검정고시를 보는데 50명 이상이 합격할 정도로 열심이에요. 미용을 배우는 한 학생은 나중에
꼭 제 머리를 만져주겠다고 약속도 했어요. 실수는 했지만 다시는 실수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게 돕는 것이 제가 할 일이죠.”
함께 어우러지는 사회를 꿈꾸다
금년 3월, 모범사례로 선택돼 행자부로부터 지원을 받아 센터 안에 상설 성교육장을 만들었다. 좀더 체계적인 성상담이 가능해진 것이다.
“5개월동안 1,000명의 아이들을 만났어요. 어떤 분들은 많이 만났네 하지만 개인적으론 너무 적게 만났다고 생각해요. 관심을 줘야할 학생들이
아직 너무나 많거든요. 지식을 주입하는 성교육이 아닌 삶의 전환점의 구실을 할 수 있는 교육장이 되길 바래요. 성상담뿐 아니라 고민도 나누고,
미래의 가정과 꿈에 대한 희망도 심어주고 싶어요.”
그녀의 진심이 통했기 때문일까. 이곳을 거쳐간 많은 아이들은 그녀처럼 누군가를 변화시키는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을 키운다.
“제가 아버지에 대한 반발 때문에 여성문제에 관심을 가졌듯 경험은 매우 중요하게 작용해요. 마찬가지로 아픔이 있는 아이들은 더 좋은 사회복지가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죠. 한 명을 변화시키고 또 그 한 명이 또 다른 한 명을 변화시키고…. 그러다 보면 소외된 사람 없이 함께 어우러지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요?”
문의: 02-322-1585.
안지연 기자 moon@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