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면 언제든 달려오는 ‘슈퍼맨’
의왕시 하우스촌 독거노인 보살피는 의사 김진우
“어, 담배냄새 나네요. 도대체 누가
피신 거에요?”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부모뻘 되는 노인에게 걱정스런 타박을 하는 의사 김진우(49) 씨. 그는 매달 정기적으로 의왕시 백운호수 주변 하우스촌을
찾는다. 몇 해 전, 이곳에 사는 노인들과 연을 맺은 후, 그는 그들이 부를 때면 언제든 달려오는 ‘슈퍼맨’이 됐다. 이날도 정기검진 일이
아니었지만 할머니가 복통을 호소하며 전화를 걸어왔다.
“누군가의 버팀목이 된다는 것이 기쁨”
주인 없는 땅에 마구잡이로 지어 올린 집에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함께 살고 있었다. 김씨가 돌보는 독거노인 중 두 분이 살림을 합친 거였다.
외로움도 달랠 겸 또, 행여나 안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옆에 있어줄 누군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많이 아프세요?”하면서 두 노인의 혈압을 측정한 김씨는 “만날 담배피고 술 드시니까 혈압이 안 떨어지잖아요”하며 핀잔을 준다. 그러면서도
여기저기 눌러보고 짚어보며 꼼꼼히 살펴본 김씨는 복통이 심하다는 할머니에게 주사를 놓는다. 주사 맞은 부위를 문질러주며 할아버지가 대신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갈 때마다 무척 고마워하시고 반가워하세요.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하반신 불구였던 어떤 할머니는 제가 찾아가는 날이면 새벽부터 문 열어놓고
기다리셨죠.”
김씨가 이곳 노인들을 돌보기 시작한 것은 ‘독거노인 주치의 맺기 운동’에 참여하면서다. 노인성질환으로 고통받지만 관리해줄 가족이 없어 병을
키우고 있는 노인들을 찾아 나섰다.
“제가 가면 손도 꼭 잡아주시고, 등도 토닥여 주세요. 그리고 무슨 일이 생기면 저에게 전화를 거시죠. 그들에게 버팀목이 된다는 것이 기뻐요.”
의료선교사의 꿈
김씨는 남들보다 10여 년 늦게 의대에 들어갔다. 성적은 우수했지만 집안 형편상 공업고등학교에 진학한 그는 기술공무원으로 20대를 보냈다.
그러다 서른이 지나면서 문득 자신이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신학대에 들어갈 생각도 했지만 내가 완벽하지 않은데 어찌 하나님의 길을 인도할 수 있겠는가하는 의심이 들었죠. 그래서 선택한 길이 의료선교사였습니다.”
뜻을 굳힌 그는 6개월만에 의대에 합격했고, 가정의학과 의사가 됐다. 그가 처음 품었던 의료선교, 그 일념 하나로 매진했다. 그러나 정정된
사항이 생겼다.
“처음 의료선교를 생각했을 때 아프리카 같은 외국에 나가 봉사하는 것을 떠올렸습니다. 그런데 국내에도 보살펴야 할 이들이 너무 많더군요.
아직도 외국은 한번도 못나갔습니다. 하하.”
대화를 마치고 김씨는 양로원 ‘마리아의 집’으로 향했다. 그곳에도 그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노인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 있어요. ‘일일불념선(一日不念善)이면 제악(諸惡)이 개자기(皆自起)라’. 명심보감에 나온 글귀인데 ‘하루라도
착한 일을 하지 않으면 악한 일들이 모두 저절로 일어난다’는 뜻이죠. 그냥 선하게 살고싶습니다.”
안지연 기자 moon@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