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 이 여자가 사는 법
소외된 이웃과 함께 울고 웃는 공무원 심예경 씨
“얘기하지마.
또 울 거면서….”
남의 말 가로막으며 울지 말라할 땐 언제고 도리어 자신이 얼굴 시뻘개져 우는 건 무슨 행태인지. 그것까지는 괜찮다. 울 테면 자기만 울
것이지 지켜보는 이까지 울컥하게 만드는 건 무슨 심보냐 말이다.
살아온 얘기를 꺼내는 심상신 할머니(78)를 저지하고 나서 심예경(50 여) 씨는 할머니 손을 자꾸만 어루만지며 눈물을 흘렸다. 이미 그
아픔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는 듯 자꾸 기억하지 말라며 심씨는 할머니에게 투정 아닌 투정을 부렸다.
“갖고 있는 걸 나누는 건 당연”
친모녀로 보이는 심씨와 심 할머니는 사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다. 인연을 맺은 지는 5년. 아들 내외를 먼저 하늘나라로 보낸 뒤 몇
십 년을 혼자 살아온 할머니에게 심씨는 선뜻 딸이 돼주었고 지금까지 친딸 노릇을 하고 있다. 때로는 서로 부둥켜안고 울기도 하면서 때로는
한바탕 웃어 재끼기도 하면서 그들은 끈끈한 정을 나눴다.
심 할머니 외에도 심씨는 두 명의 독거노인을 비롯, 장애인, 모자 가정 등에 지속적 후원과 관심을 쏟고 있다. 수시로 전화하고 최소한 한
달에 한번은 방문하면서 갈 때마다 쌀은 있는지 아픈 데는 없는지 체크한다. 그렇다고 심씨의 살림이 넉넉하냐 하면 그건 절대 아니다. 단돈
1만원도 함부로 쓰지 못하는 서민이지만, 다달이 받는 봉급에서 알뜰히 아끼고 쪼개, 나눌 뿐이다.
“풍족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제겐 직장이 있잖아요.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제가 갖고 있는 걸 나누는 것은 당연한 거 아닌가요?”
12곳 사회복지단체 후원
현재 남가좌1동사무소 공무원인 심씨는 1998년 북가좌2동사무소 재직시 사회복지업무를 맡으면서 그들과 관계를 맺었다. 기초생활수급자 240여
세대에 후원금과 물품을 분배하는 일을 담당했는데, 일적인 부분말고도 심씨는 그들에게 관심과 정성을 쏟았다. 2001년 다른 일을 배정 받을
때까지 하루 3시간 이상 자본 적 없을 만큼 열심이어서 간혹 고생을 왜 사서 하냐는 핀잔도 들었다. 하지만 심씨는 자신의 도움을 바라는
이들을 뿌리칠 수 없었고, 언제든 그들이 부르면 달려갔다. 밤12시가 넘은 늦은 시간에 응급실로 뛰어가는 일도 허다했고, 자신을 ‘어머니’라
부르는 청소년 가장들이 손을 내밀 때도 언제든 잡아줬다. 언젠가는 세상에 아무 것도 남긴 것 없이 떠난 어느 할머니의 상주노릇도 했다.
“참 많이 울었다”는 심씨는 “쌀 주고 돈 주면 끝나는 게 아닌 그 사람과 관련된 모든 상황을 검토하는 것이 ‘복지’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금전으로 하는 봉사가 가장 쉬운 나눔의 길”이었음을 말이다.
“오지랖이 넓어서 그렇죠”라며 멋쩍은 웃음을 지은 심씨는 “공납금이 없어 학교에서 여러 번 쫓겨난 기억이 있다”며 자신이 그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그리고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가난 때문에 아파 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나눔’을 일이 아닌 삶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꽃동네 회원을 시작으로 현재 12곳 사회복지단체에 20년간 매달 한번도 빠짐없이 후원금을 보내는 것만 봐도 나눔은 그녀 삶의 또 다른 방식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살아오면서 제가 했을, 또한 했을 지도 모를 잘못에 대해 갚아나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냥 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며 살뿐입니다.”
안지연 기자 moon@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