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 약방문격 재난관리 이제 그만!
우리는
태풍의 위력을 인명과 재산의 손실 정도로 가늠하는 이상한 방법을 사용한다. 이 방법에 따르면 이번 태풍의 위력은 그야말로 대단했다. 행자부는
태풍 ‘매미’로 인해 13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피해 집계액은 4조7,000여 억원이 된다고 밝히고 있다.
물론 실제로도 ‘매미’는 초강력 태풍에 속한다. 제주도에서는 태풍의 초속이 무려 60m를 기록하기도 했다. 기상관측이래 최고였다.
그러나 만약 작년 ‘루사’의 악몽을 되살려 철저히 예방하고 대비했다면 ‘매미’는 ‘맴맴’ 맴돌다가 사라진 그저 그런 태풍으로 기억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소방방재청으로 재해재난관리 일원화
정부는 태풍 매미로 인한 피해복구를 신속히 하기 위해 재해대책예비비 1조1,000억원을 조속히 집행하는 한편, 추경편성도 동시에 진행하기로
했다. 추경편성은 대략 3~4조원 가량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행자부는 전국 피해지역 14개 시도, 156개 시군구, 1657개 읍면동을 특별재해지역으로 선포했다. 이에 따라 재해민들은 일반재해에
비해 50~150% 많은 지원금을 받는다.
특별위로금은 주택전파시 500만원, 반파는 290만원을 받는다. 침수된 가구에는 200만원이 지급된다. 2ha 미만 경작지에 한해 80%
이상 피해를 본 주민에게는 500만원, 50~80% 피해를 본 주민에게는 300만원이 지원된다.
재해민들에게는 턱없이 모자란 돈이나마 조속히 지원이 결정돼 다행이다.
하지만 이런 낭비도 없다.
정부는 사전 예방이라는 단어를 잘 모르는 듯 하다. 재해가 발생하면 그저 수습하기에 바쁘다. 정부의 예산 편성을 보면 명확히 알 수 있다.
정부는 지난 1999년 2조2,000억원의 예산을 재해복구에 투입했다. 2000년과 2001년에도 거의 비슷한 수준. 지난해에는 ‘루사’로
인해 무려 9조원이나 책정했다.
그런데 수해방지 비용으로는 1999년이래 1조8,000억원~2조원 선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니 수해방지가 제대로 이루어질리 만무하다.
그렇다고 복구에 정성을 쏟는 것도 아니다. 지난해 엄청난 피해를 당했던 강원도는 이번 태풍이 올 때까지 하천 정비조차 끝내지 못 한 상태였다.
또 하천과 도로 등이 정비가 됐다고 해도 땜질식으로 모양만 갖춰놓는 식이어서 피해를 더 키우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시스템 문제도 지적해야겠다. 이번 태풍 후 우리는 미국에 불어닥친 허리케인을 보면서 미 연방재난관리청(FEMA)의 활약을 부러워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부러워할 일이 아니라 부끄러워할 일이다.
우리도 미 연방재난관리청처럼 일원화된 재해재난대비시스템을 갖출 기회가 있었다. 이번에 입법이 예고된 소방방재청을 두고 하는 말이다.
소방방재청은 지난 5월 입법예고까지 됐다가 행자부 내부와 관련 부처 사이의 갈등으로 인해 입법예고가 철회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소방방재청은 재난이 발생했을 때, 컨트롤 타워가 돼 사고 예방과 신속한 대응 업무를 맡는다. 사고 유형에 따라 13개 부처에 분산돼 있던
재난 관련 업무를 방재청이 총괄함으로써 보다 효율적으로 대책을 마련할 수 있다. 물론 예방의 기능까지 겸한다.
만약 당시에 입법이 예고되고 공포까지 됐더라면 이번 태풍에는 소방방재청의 활약을 눈으로 확인해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매우 아쉽지만 늦게라도 입법예고된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이번에는 철회되는 일이 없길 바란다. 그리고 앞으로는 소방방재청 중심으로
재해에 슬기롭게 대처해 ‘재해(災害)는 인재(人災)’라는 한국적 공식을 깨뜨리길 기대해본다.
shkang@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