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분만 담당 의사로 일하다 직접 임신과 출산을 경험한 저자가 왜 우리에게 출산이 유감스러운 일이 되어버렸는지를 의학적으로 경쾌하게 풀어낸다. 임신과 출산의 주체인 여성의 서사, 엄마와 아이 관계의 역동성, 출산의 온전하고 바람직한 이해, 편견과 금기와 신화를 벗고 자유롭고 편안하게 임신, 출산, 육아를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에 대해 이야기한다.
의사의 시각에서 본 재생산의 세계
인간의 출산은 다른 여느 동물의 사례를 보아도 이례적일 정도로 어렵고 힘들다. 산모의 진통 시간도 긴 데다 난산이다. 어좁고 구불구불한 산도를 비집고 나오는 아이는 나올 때도 받아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며, 세상으로 나와서도 너무나 미숙하고 유약한 탓에 오랜 시간을 옆에 붙어서 돌봐야 한다. 이렇다보니 출산은 여성의 몸을 희생하는 고통의 경험으로 낙인이 찍혀 있으며, 양육은 두려움과 회피의 대상이 된다. 이렇게 출산과 양육이 힘든 이유는 뭘까? 분만 담당 의사로 일하다 직접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며 이 책을 쓴 지은이는 ‘출산의 배신’을 호소하는 수많은 임신부와 산모들을 만나서 느낀 것들 그리고 임신과 출산에 관한 의학적인 이야기를 통해 왜 우리에게 출산이 유감스러운 일이 되어버렸는지를 풀어낸다.
이 책은 출산의 주체인 여성의 서사에 초점을 맞추면서 임신에서 수유, 양육까지 출산의 전 과정을 개인적 경험과 의학적 내용을 잘 뒤섞어 풀어낸다. 그러면서 그렇지 않아도 힘들고 고통스러운 임신과 출산을 더 힘들게 하는 장애물 네 가지를 하나하나 따져본다. 먼저 임신과 함께 시작되는 몸 전체의 변화이다. 생식기관에서부터 혈액, 대사, 면역 기능, 뇌의 구조 등 50여 가지쯤 되는 몸과 마음의 변화는 일단 임산부를 좌절케 한다. 문명인의 체면이나 고상함 따위는 내던지게 되는 몸의 전면적 변화는 출산이라는 영역에서 우리는 아직 포유류의 삶을 살고 있는 존재임을 사정없이 일깨운다. 문명사회에서 모든 것이 변했지만, 아이를 낳고 젖을 먹이는 방식만은 아주 오래전과 다르지 않다. 역설적인 것은 이러한 고통스러운 출산으로 인해 우리는 두 발로 걷고, 큰 뇌를 가진 똑똑한 호모 사피엔스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두 번째는 재생산이라는 세계의 예측 불가능성, 통제 불능성이다. 임신과 출산은 간절히 원한다고 해서 할 수 있고, 예측한다고 해서 그대로 되는 일이 아니다. 임신도 산전검사도 출산예정일도 아이의 성장도 모두 우리의 예측을 보란 듯이 비껴간다.
과장이나 폄하 없는 온전한 이해
산부인과 병원이 가지는 특수성도 한몫한다. 골반 내진과 같은 진료 자체가 굴욕적일 수 있고, 때로 수치심을 유발하며, 환자 취급을 받을 때도 있다. 분만 병원의 감소로 출산 인프라가 갈수록 무너지는 현실에서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출산을 하는 것 자체도 어려워지고 있다. 태교와 같은 사회적 금기나 이상적인 어머니상을 요구하는 모성 신화가 ‘불필요한 구속을 감수하는 데 얼마나 많은 힘을 소모케 하는지’는 굳이 말할 것도 없다.
저자는 신화와 비극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임신과 출산에 대한 과장이나 폄하 없는 온전한 이해가 필요하고, 불확실성이 클수록 전문가인 산부인과 의사들과 더 많이 소통해야 하며, 사회적으로 출산 인프라가 갖춰져야 하고, 제약과 금기는 최대한 벗어야 하며, 재생산의 과제를 어머니 혹은 어느 한 성(性)의 문제로 남겨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출산과 양육은 엄마 ‘혼자’서 몸과 마음을 희생 제물로 바치는 비극이 아니라, 인류 초창기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해야 하는 일이었다. 저자는 인류에게 출산이 왜 엄마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 주변의 혹은 사회의 수많은 조력자들이 ‘함께 해야’만 했던 일일 수밖에 없는 일인지를 설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