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마임이라면 아직 단순한 ‘상황의 몸적 재연’만을 떠올리는가? 그렇다면 ‘춘천마임축제’를 눈여겨보자. 올해로 17회를 맞이하는 ‘2005 춘천마임축제’는 프랑스 미모스 마임축제, 영국 런던 마임축제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아시아권의 대표적인 마임축제로 마임의 세계적 흐름과 예술적 성과를 한 눈에 보여준다. 순수예술(공연)과 축제(난장)의 복합적 형태로 펼쳐지는 ‘춘천마임축제’는 마임의 ‘오늘’과 ‘진수’를 한 자리에 볼 수 있는 기회다. 이런 기회는 세계적으로도 그리 흔한 것이 아니다.
사색과 쉼의 ‘휴빙(休-being)’ 잔치
이번 축제는 이달 23~29일 마임의집 봄내극장 예술마당 춘천문화예술회관 춘천인형극장 고슴도치섬 명동 강원대학교 한림대학교 한림성심대학 등 춘천 전역에서 펼쳐진다. 국내 70여 마임극단 및 공연단체가 참가하고, 독일 벨기에 영국 일본 캐나다 프랑스 6개국 10개 극단이 수준 높은 작품을 소개한다. 23~27일 평일에는 시내 극장과 거리에서 40여개의 공연이, 주말인 28~29일에는 고슴도치섬에서 60여개의 공연이 이어진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풍요 그 자체다.
축제의 슬로건은 ‘휴빙(休-being)’이다. 휴(休)는 쉼이고 빙(being)은 존재와 생명을 의미한다. 단순히 공연을 보는 것뿐 아니라 자연과 어울려 하나가 되고 편안함 속에 자신을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자는 의도다. 떠들썩하게 ‘잘먹고 잘살자’를 외치던 웰빙에서 휴식으로 그 트렌드가 넘어가고 있는(사실상 웰빙의 진정한 의미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의 경향을 포착한 테마다.
‘휴빙’의 결정판은 도깨비난장이다. 자연과 인간, 예술이 공존하는 난장의 세계는 일상을 벗어난 신나는 세상이자, 지친 몸을 편안히 쉬게 하는 공간이다. 고슴도치섬에서 펼쳐지는 난장은 ‘낮도깨비난장’, ‘밤도깨비난장’으로 구분돼 낮에는 가족이 다함께 공연과 축제를 즐기고, 밤에는 젊은 청춘들이 밤을 새우며 열정을 분출한다.
밤도깨비난장은 마임축제의 대표적인 행사로 마임 영상 무용 퍼포먼스 음악 문학 등 온갖 장르의 20여 팀이 밤 12시부터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논스톱 공연을 펼친다. 밤새도록 자연 속에서 자유로운 모습으로 다양한 예술장르를 즐길 수 있도록 마련한 마임축제 특허의 야심만만한 프로그램이다.
서울에서 춘천으로, 무박 2일의 ‘도깨비열차’
낮도깨비난장은 가족 나들이로 제격이다. 다리밑무대 숲속무대 강변 잔디마당 등 도깨비난장으로 변한 고슴도치섬 곳곳에서 마임 퍼포먼스 음악 무용 등의 공연이 펼쳐진다. 마임놀이터에서는 탈에 그림을 그리고 마임으로 표현해보는 ‘탈과 마임’을 비롯한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이 있고, 마임몰에서는 아티스트들의 독특한 연출이 깃들여진 수공예품으로 멋진 변신을 시도해 볼 수 있다. 친구 연인 가족에 따라 특별한 산책코스도 마련돼 있다.
특히, 낮도깨비난장에 놓여지는 영국의 설치예술품인 ‘休·빛의집’은 이번 축제의 대표작 중 하나다. 이 작품은 어머니의 뱃속과 같은 원초적인 고요와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 특색. 공기구조물속에서 자연광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신비한 색은 일상에서의 복잡함과 고단함을 벗어나 쉼과 고요한 사색을 제공해준다.
신진식의 설치물 ‘징검다리’는 TV와 PC모니터를 재활용해 숲 속에 영상 징검다리를 만들어 자연과 현대문명의 공존을 말하고, 임근우의 섬을 꾸며 섬 전체를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키려는 프로젝트는 자연과 예술이 하나 되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서울에서 춘천으로 축제를 즐기러 간다면 ‘도깨비열차’를 이용해보자. 도깨비열차는 28일(토)에 청량리역를 떠나(오후 3시25분 출발) 춘천역까지(오후 5시30분 도착) 기차 안에서 풍선마임 코믹마임 페이스 페이팅을 즐기고, 도착해선 공식초청작을 관람한 뒤 고슴도치섬에서 흥겨운 난장을 밤새 즐긴 후 다음 날 서울로 돌아오는 무박2일의 축제열차다.
세계적 명성의 화려한 공연진
주말에 여유로운 시간을 낼 수 없다면, 짬짬이 평일 마임공연으로 ‘휴빙’을 즐겨보자. 춘천 명동거리에선 축제기간 중 평일 저녁엔 개막식을 시작으로 매일 저녁 6시 벨기에 프리미티브(The Primitives)의 ‘백조의 호수’, 캐나다 뱀(BAM)의 코믹타악퍼포먼스 ‘파란통을 두드려라’ 여러 가지 지구본과 함께하는 퍼포먼스 ‘지구야 같이 놀자’ 등의 다양한 공연이 준비돼 있다.
춘천문화예술회관 봄내극장 마임의집에선 저녁부터 자정까지 다양한 마임공연이 이어져 골라보는 재미가 있다. 그 중 영국 공식초청작인 데이비드 글라스 앙상블의 ‘이탈’은 독특한 느낌의 우울한 코미디로 카타르시스를 전달하고, 프랑스 공식초청작 라미르 브아뗄의 ‘후스의 사람’은 의자라는 오브제로 독특한 마임을 보여준다. 아시아의 완성도 높은 작품을 소개하는 ‘아시아 나우’ 프로그램에서는 가말초바의 ‘끝내주는 코미디’ 등이 준비돼 있다. 금요일 저녁 고슴도치섬에서 올려지는 코포럴씨어터 몸꼴의 야외공모작 ‘오르페우스’는 그리스 신화를 몸짓언어로 재각색한 작품으로 5m 이상의 긴 사다리를 오브제로 섬의 자연환경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관객에게 자연과 숨쉬는 공연을 선사한다.
부대행사도 독특한 즐거움을 안겨준다. 문화마을 들소리와 함께하는 ‘다같이 돌자, 섬한바퀴’는 관객과 공연자, 스텝이 모두 어울려 섬을 돌며 퍼레이드를 하는 현대판 대동놀이다. 또한 탈과 저글링을 마임을 결합시켜 마임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다.
마임축제 관계자는 마임의 문화적 의미를 ‘소통’에서 찾았다. “말보다 더 진한 몸의 언어로 끊임없이 느끼고 생각하게 하는 마임은 인간의 몸이 얼마나 아름답고 자유로울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예술이다. 말과 글로는 넘을 수 없는 인종과 언어의 벽을 뜨거운 호흡과 차가운 침묵으로 말없이 넘나들 수 있는 마임은 단절 시대의 새로운 소통 구조다.”그런 면에서 ‘마임’은 21세기형 언어이자 가족의 달 5월에 잘 어울리는 예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