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3일 오후 2시 서울 삼성동의 한 사무실. “집 앞에 내놓인 쓰레기 봉투를 뒤져보면 까만 비닐봉투에 싸여 버려진 게 있는데 그런 경우 100에 80~90은 거의 불법 쓰레기 투기라고 보면 됩니다. 그 봉지 안에 있는 내용물을 보면 집주소나 이름 등의 인적사항이 나오는데, 그것을 집 대문과 함께 봉지 앞에 붙이고 잘 보이게 해서 사진을 찍어 증거를 남깁니다. 물론 현장을 지키고 있다가 버리는 장면을 포착하는 게 가장 좋긴 하죠. 하지만 내용물과 함께 찍은 인적사항만 있어도 보상금을 타는 데는 문제가 없습니다.” 20여명의 수강생들이 강사가 하는 말을 주의 깊게 듣고 메모한다.
그리곤 여기저기서 “다른 사람의 인적사항을 찾아서 고의로 불법 쓰레기 투기를 한 것처럼 하는 경우는 없나요?”, “다세대 주택인 경우 여러 집의 인적사항이 나올 수도 있는데 그럴 땐 어디를 피신고자로 해야 되나요?”, “여러 명의 이름이 나올 때 따로따로 신고할 수도 있나요?”라는 등의 질문이 쏟아진다.
보통 사무실도 아니면서 그렇다고 학원도 아닌 이곳은 요즘 한창 입소문을 타고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국내 유일의 신고포상 인력양성 전문학원 (주)미스미즈다.
별도의 교재는 없다. 강사의 경험을 토대로 증거수집방법부터 유의사항까지 노하우와 비법을 전수한다. 60여 가지의 신고보상 종류와 이론을 배우고, 실제 필요한 요령을 학습한 후 최종 현장실습에 나가게 된다.
지나친 신고꾼 난립의 문제성 등으로 없어진 ‘카파라치’ 생활 10개월 만에 4억을 벌었다는 이 학원의 문성옥 대표는 노하우의 키포인트를 ‘심리상태’라고 말한다. 즉, 신고자와 피신고자, 담당 공무원의 심리를 잘 알아야 한다는 것. 예를 들어 카파라치의 경우, 불법 주·정차나 유턴 장소가 빈번한 곳을 사전에 영업용 택시기사로부터 정보를 파악한 후 현장답사를 통해 장소를 물색한 뒤 운전자의 심리상태를 파악하고 불법행위를 할 것 같은 사람을 포착한다.
‘돈벌이’ 목적으로 한 신고꾼 난립
잘만 하면 큰 힘 들이지 않고도 고소득을 올릴 수 있다는 말이 돌면서 요즘 신고 보상요원을 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4년간 이곳에서 배출된 인원만 800~1,000여명에 달한다고 하니, 전국에서 활동하는 신고꾼들만 1,500여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20대 구직자부터 중년의 명예퇴직자, 전업주부 등 성별과 연령대도 다양하다.
장기적인 경기침체로 취업의 문은 좁고 살 길이 빠듯해지면서 빚어진 현상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수강생의 60% 이상이 주부라는 점이다. 취업의 제약이 비교적 많은 주부들에게 섬세하고 꼼꼼한 성격이 이 일에 잘 맞고 실제로 잘 한다는 게 그 이유다. 자발적인 시민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만든 신고포상금제도가 ‘돈벌이’를 목적으로 한 ‘신고꾼’ 양성이 되고 있는 것이다.
교육을 마치고 현장에서 신고보상요원을 하면서 정보교류 차원에서 학원을 종종 찾는다는 김명숙 씨(서울 40세)는 “요즘 남자들도 30대 후반만 되도 구조조정이다 뭐다 해서 난리들인데 우리 나이에 특별한 능력이나 자격 없이 할 일 다하고 자유롭게 시간 내서 할 수 있는 데 이만한 벌이가 어디 있겠냐. 특별히 힘든 일도 아니고 저녁에 한 두 시간 정도 불법 쓰레기 봉투만 적발해 내도 주부들에겐 가계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이 주부의 경우 2개월간 수 백 만원 벌었다면서 돈 들어오는 재미에 현재 하고 있는 가발제작 일을 그만두고 전업할 생각을 하고 있다.
신고전문가(?)인 이들을 바라보는 사회적인 시각이 그리 곱지만은 않은 게 현실. 그러나 이들의 생각은 다르다. 공익을 위한 일이고 국가에서 시킨 일인데, 거기에 상응하는 노력의 댓가를 받는 것이 뭐가 나쁘냐는 것이다. 이 학원의 문창옥 대표는 “이 일은 양심적이고 도덕적인 일이다. 나쁜 짓을 고의로 하는 것도 아니고 법질서를 무너뜨리는 사람을 적발해서 신고하는 게 왜 나쁘냐”면서 “공무원들이 해야 할 일을 못하니까 우리 같은 사람들이 대신 나서서 해주는 것이다. 신고도 대부분 공익제보성이 많다”고 반론한다.
복잡하고 까다로운 신고양식 “일반인 신고 말 뿐”
그러나 역시 궁극적인 목적은 ‘돈’이라는 걸 부정할 수는 없는 것 같다. 공익을 위한다지만 취재 중 만난 대부분의 신고보상요원은 자신의 일을 가족들에게 비밀로 했다. “생각이야 당당한 일이지만 아직까지 인식이 좋지 않아 아무리 가족이라도 부정적인 시각으로 볼 것이 두려워서”라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신고포상금을 받을 수 있는 건 천지에 널려 있다. 운전하고 가다 담뱃불을 떨어뜨리는 아저씨, 쓰레기 버리는 사람, 날짜 지난 식품을 파는 상점 주인 등 모두가 신고 대상이다. 학원비 35만원에 디카나 캠코더 등 기본장비를 다 포함해도 준비자금 150만원이면 O.K.
적발 수법도 간단하다. 손님으로 가장하고 슈퍼에 들어가 유통기한이 지난 빵, 우유 등의 식품을 골라내고 값을 지불하면서 봉투에 담아달라고 주문한다. 영수증에 봉투 값이 없다면 그것 또한 불법이다. 지자체마다 지급액이 다르긴 하지만 보통 불량식품 30만원에 일회용 봉투 10만원을 포함해 쉽게 40만원을 벌게 된다. 7월부터는 불량식품 신고보상금이 1,000만원으로 올라 기대가 더 크다. 이미 이 일은 월 수익 1,000만원도 무난하다는 소리가 파다할 정도로 ‘드림사업’이다.
신고보상금제 실시 이후 불법 행위는 줄었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자발적인 시민참여라는 본래 취지에서 벗어나 보상금을 노린 전문적인 신고꾼이 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운영되는 각종 신고보상금제는 일반 시민들이 참여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고 신고꾼들은 지적한다. 3개월 경력의 주부 최기영(50세·서울 구로구) 씨는 “실상 일반 시민들의 신고는 현실성이 없다”면서 “신고양식이 하도 복잡하고 까다로워서 막상 신고할 일이 있어도 일반 사람들은 거의 못하게 돼 있다”고 말했다. 굳이 신고보상 전문학원을 다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이 주부는 또 “정부가 실컷 필요해서 만들어놓고 신고건수가 느니까 다시 금액을 하향 조정하거나 한도액을 정하는 등 예산부족을 핑계로 수시로 바꾸고 제제를 가한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5월부터 1회용품 사용규제 위반사업장 신고포상금 한도액이 1인당 100만원에서 50만원으로 줄어들고 일률적이던 포상금 지급 기준도 차등 적용되고 있다.
쉬운 쪽에만 몰려… 소규모 영세상인과 서민들이 피신고자의 대부분
일반적인 신고꾼들은 각기 ‘전문분야’를 정하고 활동한다. 주로 일회용품과 쓰레기 투기 등이 활동무대라는 K 모씨(45세)는 일회용품 단속을 위해 여관을 이용한다. 무료로 손님에게 지급하는 치약과 칫솔 등이 타겟이다. 그는 “여관비가 들긴 하지만 나중에 보상금으로 받는 돈이 적게는 3~5만원 정도 된다. 허탕을 치는 경우도 종종 있긴 하지만 이 정도 투자는 할 만하다. 또 그래서 아직은 다른 신고꾼의 손이 아직 덜 미쳐 경쟁력이 있다”고 귀띔한다.
신고포상금제가 비교적 쉽게 할 수 있는 일회용품이나 쓰레기 투기, 불량식품, 유사휘발유 등에 편중되는 현상을 보인다. 한나라당 이계경 의원이 최근 조사한 ‘현행 법률상 신고포상금제도의 운영현황과 개선방안’에 따르면 정부 17개 부처에서 운영하는 28개 신고포상금의 최근 3년간 예산 집행률이 54.13%에 불과하다. 특히 관세청의 탈세제보 민간인 포상금, 노동부의 산재보험급여 허위·부정수급 신고포상금, 산림청 산불가해자 제보포상금 및 산림내 불법행위 신고포상금 등은 집행실적이 전혀 없었다. 그나마 감사원의 부정부패(2.5%), 국세청의 부조리(2.0%), 농림부의 농지불법전용(10.0%), 병무청의 병역비리(1.85%), 부패방지위원회의 부패신고포상금(19.64%) 등은 집행실적이 있긴 해도 그 비율이 매우 낮았다.
이처럼 예산 집행률이 저조한 것은 소액의 신고포상금제에 쏠린 이유도 있지만, 법적 근거가 미비한 것도 원인으로 지적된다. 지급기준과 지급기한 등을 명시한 근거규정이 있어야 하지만 각 부처의 경우 법률 시행령 시행규칙 행정규칙으로 산재해 있는 등 통일된 상위규정이 없다.
부작용은 소규모 영세상인의 피해로 이어진다. 피신고자의 대부분은 쓰레기 봉투 값 몇푼 아껴보려는 다가구 주택의 서민들이나 영세 상점이다. 쓰레기 벌금을 세 차례 정도 냈다는 김희순(54세 주부)씨는 “전에는 대강 버려도 그런 고지서가 날라오지 않았는데 근래 들어서 벌금이 부과되고 있다”면서 “‘쓰레기를 잘 버려야겠구나’ 라는 반성이 되면서도 그게 신고포상금을 노린 사람들 때문일 수도 있다는 걸 알고 나니까 한편으론 심히 불쾌하다”고 말한다. 또한 신고포상금에 대한 욕심에 의도적인 적발을 유도하는 부작용도 배제할 수 없다.
분야막론 신고포상금제 속출… 정확한 집계 없을 정도
현재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증권거래소 등이 운영 중인 신고포상금은 수 십 가지에 달한다. 신고대상의 첫 글자와 유명인을 뒤쫒는 프리랜서 사진가를 의미하는 ‘파파라치’를 합친 신조어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환경, 의료, 식품, 회계에서부터 농지불법전용까지 없는 분야가 거의 없다. 워낙 여기저기서 채택하고 있어 정확한 집계가 없을 정도다.
산업자원부는 불량 LPG 유통을 막기 위해 포상금 50만원의 ‘엘파라치’를 검토 중이고, 노동부는 내년부터 실업급여 부정수급을 막기 위한 ‘실파라치’를 도입할 예정이다. 농림부는 7월부터 쌀 원산지와 품종 등을 허위 기재하거나 가공용 수입쌀을 밥쌀용으로 판매한 유통업체와 가공업체를 신고하면 최고 100만원의 포상금을 지급키로 했다.
건당 포상금 액수도 만만치 않다. 신고보상금은 최하 자판기처럼 5,000원부터 최고 부정부패위원회에서 관리하는 부정부패 신고보상금 5억까지 다양하다. 현행 30만원인 ‘식파라치’(위해식품)는 7월부터 최고 1,000만원으로 인상된다.
온라인에서는 ‘카파라치’(교통법규 위반 차량에 대한 신고보상금제) 부활에 대한 찬반 논란이 일 정도로 뜨겁다. 2001년 3월 등장했던 카파라치는 ‘신고꾼 양성’이라는 문제점 노출 등으로 22개월만에 사라졌다. 그런데 최근 손해보험협회가 교통사고를 줄이고 보험료 인하 혜택을 위해 내년부터 카파라치 재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보험소비자연맹은 “카파라치는 전문 신고꾼의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돼 왔으며 국민간 불신만 조장할 것”이라며 반기를 들었다. 이에 따라 네티즌 사이에서도 찬반논란이 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