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연기자 박규채(67) 씨가 ‘고대’의 이름으로 무대에 섰다. 지난 6월1~5일까지 국립극장에서 공연한 고려대 100주년 기념작 ‘당나귀 그림자 소유권에 대한 재판’에서 박씨는 원로원장 그릴루스 역을 맡아 후배들과 호흡을 맞췄다. 무대 뒤에서 그를 만나 보았다.
‘고대를 빛낸 100인’에 선정됐다. 축하한다.
기쁘다. 훈장 받은 것보다 기분 좋았다.
작품에 대해 설명하자면.
독일 작가 뷔일란트의 걸작우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묵직한 주제를 뮤지컬적 요소를 도입해 스펙터클하고 흥미롭게 풀어나간 점이 특색이다. 당나귀 주인과 당나귀를 임대한 의사의 사소한 싸움이 집단과 집단의 세력 다툼이 되면서 본질은 흐려지고 싸움을 위한 싸움으로 변질한다. 현 정치권과 비슷하지 않나?
100주년 기념작으로 이 작품을 선택한 것은 자못 의미심장해 보인다. 절대적 가치가 무너진 사회에서 힘의 논리가 곧 정의가 된다는 연극의 주제가 혼란스러운 한국사회를 연상시킨다.
국회의원들이 이 연극 좀 꼭 봤으면 좋겠다.
원로원장을 맡았는데, 이것은 연극계와 고대의 ‘원로’에 대한 추대 같다.
지금까지 고대 선후배 합동공연이 4차례 있었는데 모두 참석했을 정도로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동문들과의 공연은 어땠나.
너무 즐거웠다. 재학생 같은 기분이었다.
후배들과의 호흡은 잘 맞았나.
합동공연을 할 때마다 여건이 점차 더 좋아지는 것 같다. 실력도 날로 좋아지는 것 같고. 후배들이 너무 열심히 해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특히 연출을 맡은 장두이 후배는 아주 명석하고 재능 있는 예술가다.
학창시절이 궁금하다.
내가 고대 58학번이다. 농과대학 출신이지만 중학교 때부터 연극을 했다. 대학 와서는 고대 극예술연극회에 입회해서 본격적인 연극과의 인연을 맺었다. 당시 동기가 여운계 유길촌이다.
고대 극예술연극회는 한국 연극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거장들을 대거 배출했다.
그렇다. 최창봉 김경옥 최상현 이수열 최덕수 등 기라성 같은 연극인이 많다. 이런 선배들이 열성으로 후배들을 이끌었고 그렇게 분위기를 조성하니 훌륭한 인재가 모이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 내가 그 중에선 꼴찌다.
겸손의 말이다. 누구나 인정하는 원로 연기자다. 연기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해도 괜찮을 거 같다.
세익스피어도 이야기했지만 연기란 곧 삶이 아닌가 싶다. 삶을 공부한다고 생각하면 성실하게 안할 수가 없다. 연기를 함으로써 다양한 인생을 살아보고 인생을 공부하고 연구하며 창조하게 됐다. 이건 삶에 있어서 엄청난 기회라고 생각한다.
1980넌대 ‘제 1공화국’ ‘박순경’ 등의 TV 드라마로 인기를 누렸던 박씨는 유행어가 시위 구호로 사용되자 전두환 정권에 의해 ‘방송출연금지’의 탄압을 받게 된다. 이후 박씨는 영화진흥공사 사장의 자리까지 오르지만 정치권의 외압으로 시련 속에 연기 활동에 계속되는 어려움을 겪는다. 지칠 만도 하건만 박씨는 그래도 연기에 대한 변함없는 열정을 불태운다. 박씨는 연기 외에도 현재 한성 디지털대학 교수, 김천 전국가족연극제 집행위원장 등을 재임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한국 연극계를 이끌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