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받으려면 고정관념을 깨라? 최근 이슈를 몰고 다니는 TV 드라마나 영화들의 매력 포인트는 캐스팅과 캐릭터의 발상 전환이다. 역사 교과서의 영웅이 철없는 청년으로 묘사(영화 ‘천군’)되는가 하면, 주인공의 사랑을 방해하는 연적이 비련의 순정파 여인(MBC ‘내 이름은 김삼순’)이고, ‘산소 같은 여자’인 줄만 알았던 그녀는 복수의 화신(영화 ‘친절한 금자씨’)으로 변신했다. ‘드라마 공식’에 대한 이 같은 작은 전복은 대중에게 불륜이나 폭력보다 파격적이고 자극적인 즐거움을 준다.
신데렐라를 조롱하는 신데렐라
시청률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는 ‘내 이름은 김삼순’은 전통적인 모티브인 신데렐라 판타지에 비범한 파격들을 숨기고 있어 가장 진보한 형태의 ‘프리티 우먼’을 보여준다. 그 파격은 별다른데서 나오는 게 아니다. 비록 순정만화 같은 몽상적 러브 스토리지만 두 발은 단단히 땅에 붙이기를 고수한 결과일 뿐이다. 일상적인 것이 오히려 파격으로 통하는 게 드라마라는 점이 아이러니하다고 할까.
통상 이런 종류의 드라마가 판타지를 강조하고 현실성을 덮어두는데 비해, ‘내 이름은 김삼순’은 판타지를 현실을 바탕으로 풀어간다. 그래서 주인공들은 우연한 만남을 반복하지도 않고, 억지스런 오해로 안타까움을 강요하는 일도 없다. 오히려 드라마는 닭살스러운 상항을 오래 참지 못하고 스스로 깨뜨려 로맨틱과 코미디를 정신없이 오간다.
피아노 쳐달라는 김선아의 주문에 현빈은 “꼭 드라마 따라 하는 것 같다”며 낭만적 분위기 연출을 거부해 ‘파리의 연인’과 차별성을 강조한다. 키스를 신성시하는 여성판타지의 신화도 무참히 배반한다. 주인공들은 사랑을 확인한 클라이맥스에서 키스하는게 아니라 일찌감치 술 취해서 키스하고 없었던 일로 하자고 화낸다. 사랑을 고백하고 상처 받은 김선아는 눈물도 금방 닦아버리고 뜬금없는 코믹 제스츄어를 연발한다.
악녀보다 위협적인 순정녀
하지만 기존 드라마의 공식을 가장 파격적으로 넘어선 것은 려원의 캐릭터다. 통상 ‘캔디’와 ‘왕자’ 사이에 가장 큰 사랑의 장애는 일방적으로 ‘잘난 남자’ 뺏으려는 연적과 출신성분 따지며 반대하는 부모 두 가지다. 그런데 ‘내 이름은 김삼순’에는 이 두 가지가 모두 없다. 현빈의 엄마는 김선아를 못마땅해 하지만 려원을 미워하는 것에 비하면 반대라고 할 수도 없는 ‘시츄에이션’을 보여준다. 려원과 김선아는 묘하게 위치가 뒤바뀌어 있다.
려원은 말기 암 선고를 받고 현빈을 떠난 비련의 여인이다. 현빈과 려원 사이에 오해는 있었지만 둘의 사랑은 부모의 반대와 불가항력적인 시련에도 굳건히 살아남았다. 지난 7회에서 려원과 현빈이 서로의 오해를 풀고 애틋한 감정을 확인한 반면 김선아의 사랑 고백은 가치 없는 것으로 버려지자 시청자들은 혼란에 빠졌다. 시청자 게시판에는 ‘누가 주인공인지 모르겠다는’ 반응들이 줄을 이었다. 남녀 주인공의 사랑을 방해하는 연적은 려원이 아니라 오히려 김선아로 보인다. 조연이 주인공 ‘신데렐라’보다 예쁘고 집안 좋고 똑똑하고 선한데다 ‘왕자’의 사랑까지 받고 애절한 순정까지 갖추었다면 ‘신데렐라’가 끼어들 자리가 없다. 기존의 연적들이 정신착란에 가까운 집착으로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악역인데 비해 려원은 진정으로 완벽한 ‘적’으로 시청자에게 신선한 긴장감을 주고 있다.
정치드라마 ‘닮은꼴 강박증’ 버리다
캐스팅 자체가 캐릭터 구축에 결정타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의외의 캐스팅은 그 자체로 캐릭터에 생동감을 부여한다. 1980년대 인기를 모았던 MBC 드라마 ‘인현왕후’는 장희빈 역에 청순한 이미지를 고수하던 전인화를 캐스팅해 주목을 끌었다. 당시 ‘인현왕후’는 ‘장희빈=악녀’의 공식에서 벗어나겠다는 철학을 캐스팅에 반영했고 새로운 장희빈을 만들어내는 성공을 거뒀다.
MBC 드라마 ‘제 5공화국’은 고정관념을 깨는 캐스팅의 성공적 사례다. 전두환 역으로 이덕화 캐스팅은 적어도 시청률이나 드라마적 재미의 관점에서는 ‘이 드라마의 가장 잘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는 ‘닮은꼴 캐스팅’ 강박관념이 강했다. 닮은 얼굴은 연기력까지 뛰어넘는 캐스팅의 1순위였고, 그래서 정치 드라마는 성대모사의 콘테스트장 같은 웃지 못할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대머리라서 캐스팅한 것 아니냐’는 농담도 있었지만 임 PD는 “얼굴이 비슷하다고 캐스팅하는 시대는 갔다”며 연기력이 캐스팅의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덕화 특유의 카리스마는 전두환의 이미지를 드라마틱하게 재현하고 있다. 그래서 얼굴은 닮지 않았지만 기존 영화나 드라마의 그 어떤 ‘전두환’보다도 실제 전두환의 ‘어떤 면’을 가장 강렬하게 포착하고 있다.
정치 드라마의 특성상 바로 그 ‘잘한’ 점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인지도 높은 배우의 카리스마가 캐릭터를 부각시키면서 실존인물에 대한 비판력이 상실한 것. 악행을 아무리 강조해도 전두환이 중심인물인데다 카리스마가 집중 조명 되다보니 반영웅으로 그려질 수밖에 없는 한계를 노출시킨 것이다.
이영애와 금자 사이
‘이미지의 대 반전’으로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작품은 뭐니뭐니해도 이달 개봉예정인 영화 ‘친절한 금자씨’다. 이 영화는 배우 이영애의 캐스팅 자체가 압권이다.
이영애가 누군가. ‘산소 같은 여자’라는 타이틀로 대중들의 가슴에 들어와 줄곧 순수와 우아의 상징으로 군림했고 드라마 ‘대장금’으로 귀엽고 착한 이미지까지 더해 아시아인에게 ‘천사’의 이미지를 심은 배우다. 물론 영화 ‘봄날은 간다’의 얄미운 구석이 있는 캐릭터는 이영애의 새로운 면을 끌어내긴 했지만 기존의 이미지를 뒤엎는 것으로 보긴 어렵다. 더구나 ‘대장금’은 이영애 이미지를 단선적으로 깔끔하게 완성시켜버렸다.
‘친절한 금자씨’는 이영애의 변신이라기보다 이영애가 배우로써 구축해온 이미지 자체를 이용한 캐스팅이다. 청순하고 여린 이영애가 원한을 품으면 어떻게 될까. 그 호기심은 ‘친절한 금자씨’에 대한 기대로 이어지고 있다. 영화가 뚜껑을 열어야 좀더 확실한 것을 알 수 있지만 ‘대장금’에서 친절한 장금도 가슴 속에 무서운 복수의 칼을 숨기고 있었다는 면에서 금자와 사실 다를 바가 없다. 단지 장금의 복수는 시종일관 선함을 유지한 캐릭터 묘사에 의해 미화됐지만 금자의 복수는 박찬욱 감독의 스타일을 생각할 때 참혹하거나 냉소적이지 않을까 예상된다.
아무튼 배우 이영애와 금자라는 이름이 주는 그 뉘앙스의 간격을 일순간 파괴함으로써 묘한 긴장감과 쾌감이 빚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이 전복적 쾌감이 대중문화를 조금씩 진보하게 하는 원동력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