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 강정구 교수(사회학과)가 모 인터넷신문에 기고한 칼럼에서 ‘6.25전쟁을 북한에 의한 통일전쟁’으로 규정하고 ‘맥아더 장군은 전쟁광’, ‘미국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전쟁이 한 달 안에 끝났을 것’이라는 친북성 발언을 쏟아낸 데 대해 논쟁이 뜨겁다.
지난 2001년 만경대 사건에서도 비슷한 전적을 갖고 있는 강 교수의 이번 파문에 대해 보수단체들은 사법처리와 교수 파면 등을 주장하고 있어 논란은 쉬 가라앉을 것 같지 않다.
보수우익단체들 “강 교수의 사법처리와 교수직 해임” 촉구
논란의 중심이 된 강정구 교수의 글은 지난 7월27일 모 인터넷 신문에 기고한 ‘맥아더를 알기나 하나요’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대략 세부분으로 정리된다.
그 하나는 “6.25전쟁은 후삼국 시대 견훤과 궁예, 왕건 등이 삼한 통일의 대의를 위해 전쟁을 했듯 북한 지도부가 시도한 통일전쟁”이라고 주장한 부분이다. 그는 동상 철거 논란을 빚고 있는 맥아더 장군에 대해서도 “폭격을 감행한 전쟁광”이라고 묘사하고 “그의 동상도 역사 속으로 던져 버려야 한다”고 했다. 또 “미국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전쟁은 한 달 이내 끝났을 것이고 비극도 없었을 것”이라며 “전쟁 때문에 생명을 박탈당한 400만 명 대부분에게 미국은 생명의 은인이 아니라 생명을 앗아간 원수”라고 주장했다.
발언이 알려지고 보수단체들은 강 교수의 주장을 ‘망언’으로 규정짓고 강 교수의 사법처리와 교수직 파면에 관한 집회와 시위를 잇따라 개최했다.
재향군인회 회원은 지난 7월29일 서울 중림동 강 교수 집을 찾아가 규탄시위를 열고 강 교수의 발언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인한 ‘망언’이라며 강하게 규탄했다. 대한민국상이군경회 대구지부는 지난달 11일 동국대 총장실을 찾아 회원 1142명의 서명이 담긴 진정서를 전달하고 강 교수의 파면을 요구했다.
상이군경회측은 “학문을 교육하는 교육자로서 국가의 분단 현실을 왜곡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극진좌파적 선동자에게 더 이상 교육을 맡길 수 없다”며 강 교수의 파면을 촉구하고 “만일 파면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회원 전체가 교내에서 천막농성을 벌여서라도 요구를 관철시킬 것”이라고 강경입장을 밝혔다.
자유민주연합은 지난달 18일 ‘친북좌파세력 강정구 교수는 북으로 가서 살라’는 논평을 통해 “동족상잔의 전쟁을 일으켜 수백만 동포를 희생시킨 북한 공산집단의 남침을 ‘통일전쟁’이라고 주장한 것은 분명한 이적행위로, 사법당국은 강 교수를 즉각 의법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을 비난하는 강 교수의 발언에는 이중성이 있다는 점도 논란이 되고 있다. 강 교수는 북한의 공산체제를 고무 찬양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미국 유학을 해 교수생활을 하며 호화주택에 거주하고 있고, 자식은 미국 유학을 보내는 등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최대한 향유하고 있는 이중적 인물이라는 점이 그렇다.
따라서 자민련은 자신이 말한 대로 “미군이 군사통치한 남쪽은 전투와 폭동의 연속이었지만 북쪽은 안정을 누리며 친일청산과 사회경제 개혁이 이뤄졌다”고 믿는다면 하루빨리 한국에서의 생활을 청산하고 북으로 넘어가라고 성토했다.
강정구의 이중성?
23개 보수 우익단체는 지난달 22일 강 교수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여러 단체들이 이번 칼럼 파문이후 강정구 교수의 공개사과와 동국대 교수직 자진사퇴를 촉구했으나, 강 교수가 이에 침묵으로 일관하고 일부 언론에 자신의 친북발언에 대한 변명이 나오고 있는데 따른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강 교수를 검찰에 고발조치한 단체들이 주장하는 강 교수의 혐의 내용은 “강 교수의 기고문이 대한민국의 국헌을 문란하게 하는 국가반역적인 이적 행위에 해당되며, 대한민국의 실정법에 명백히 저촉되는 위법한 범죄행위”라고 주장했다. 또 “강 교수의 주장은 국보법상 찬양.고무죄에 해당되며, 형법상 내란선동죄에도 해당되는 중대 범죄로, 이는 표현의 자유나 학문의 자유로 정당화될 수 없으며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인하는 반역적인 범죄행위”라는 주장이다.
강 교수의 친북발언은 비슷한 시기에 과거에도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지난 2001년 8월15일 평양에서 처음 개최된 ‘8.15 민족 대축전’때 만경대를 방문한 자리에서 “만경대 정신을 이어받아 통일을 이룩하자”는 방문록을 작성한 것이다. 사건이 임동원 당시 통일부 장관 해임까지 이어지자, 서울지검(현 서울중앙지검) 공안부는 2001년 9월19일 강 교수를 국가보안법 위반(찬양.고무)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하지만 1심 선고가 이뤄지기 전(2001년 10월11일)에 보석으로 풀려났다.
검찰과 경찰은 이번에 문제시된 강정구 교수의 칼럼에 대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사법처리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만경대 사건 때보다 훨씬 수위가 높기 때문에 처벌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검찰 내부에서도 이번만큼은 구속수사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강 교수의 논문과 저서 등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반대의견도 있다. 문제의 칼럼내용은 학자의 학문적 견해에 따른 것으로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색안경을 끼고 단죄하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전국교수노동조합 등 5개 교수단체들은 지난달 22일 성명을 내고 “교수의 학문적 업적을 바탕으로 한 기고문에 대해 국가보안법 적용을 검토하는 것은 그 어떤 근거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며 “학문적 내용이 어떻든 간에 그것은 학문적 영역에서 검토되고 비판될 성격이지 결코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해당 학교 측은 이들의 주장에 난감하다. 법적 판단 없이 파면조치를 취할 수 없고, 자칫 좌우대립에 휘말릴 수 있다는 나름대로의 고민 때문이다. 학교 측은 일단 정 교수의 ‘만경대발언’ 건이 재판에 계류 중인 것을 감안, 결과에 따라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동국대 학생들 사이에서도 ‘강정구 교수 추방위원회를 구성하자’는 제안이 나오는가 하면, ‘학자의 소신에 따른 주장일 뿐’이라는 의견이 맞서고 있어 이에 대한 사회적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