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편이나 스틸을 보면 이 영화, 그렇고 그런 B급 코미디물의 혐의를 벗기 어렵다. 촌스러움을 오버하는 듯한 과장된 알록달록 색채나 배우들의 정형화된 얼굴 표정들이 영 그런 선입견을 지우기 어렵게 한다. 하지만 ‘나의 결혼원정기’는 의외로 잔잔하게 소외된 농촌 노총각들의 애환과 사랑을 적당한 선에서 그려낸 괜찮은 상업영화다.
‘인각극장’의 논픽션 버전
농촌총각들의 결혼문제와 국제결혼이 시사프로그램에 수없이 오르내리고 있는 현실 시골 노총각들의 결혼원정이란 소재는 사회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영화가 첫 장편데뷔작인 황병국 감독은 개인의 감성에 초점을 맞추기를 더 원했다. 순수한 인간들의 삶에 밀착해 웃음과 감동을 이끌어내는 것이 감독의 관심사였던 것이다. 이것은 영화의 모티브가 시사고발프로그램이 아닌, KBS 다큐멘터리 ‘인간극장-노총각 우즈벡가다’였다는 점을 상기하면 더 쉽게 납득이 간다. ‘나의 결혼원정기’는 ‘인간극장’의 논픽션판이라고 할만한 구석이 많기 때문이다.
주인공 홍만택은 38세가 되도록 여자와 눈도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쑥맥 노총각이다. ‘서방복 없는 년 자식 복도 없다’는 어머니의 한숨 섞인 푸념을 들을 때마다 장가 못간 죄인이 된 심정이다. 만택의 죽마고우 희철은 여자 꽤나 다룬다고 생각하지만 여자들에게 ‘현실적인 선택’은 항상 받지 못하는 서러운 노총각이기는 마찬가지다. 이들은 마을에 시집온 우즈베키스탄 색시를 보고 온 할아버지의 권유로 우즈벡 맞선 여행길에 오르게 된다.
만택은 커플매니저이자 통역관인 라라와 함께 맞선 작전을 벌인다. 이번 맞선을 반드시 성사 시켜야하는 절박한 이유가 있는 라라에게 여자 앞에서 우물쭈물하는 만택은 구제불능이다. 바로 이 시점에 이 영화의 웃음 포인트가 있다. 결혼에 골인하기 위해 라라가 지시한대로 맞선작전에 임하는 만택의 어수룩하고 순진무구한 행동, 이를테면 땀에 흠뻑 젖어 여자와 눈도 맞추지 못하는 모습이나 혼자 우즈벡 인사말을 연습하다 “내일 또 만나요”라는 뜻의 “다 자쁘뜨러”를 되뇌이며 쑥스럽게 웃는 표정 같은 것이다. 이런 대목들은 순박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빚어내는 무공해적인 웃음이라는 상업영화로서의 미덕을 잘 발휘한다.
‘순수’ 웃음 포인트, ‘소외’ 눈물 포인트
웃음의 포인트들을 지나서 영화는 4명의 농촌 노총각의 사랑과 내면을 부각시키면서 조금 더 깊이 있는 이야기로 진행된다. 감독은 소외된 자들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데 이 소외감은 곧 외로움이며 사랑에 대한 절박함으로 연결된다. 만택과 희철은 물론, 맞선여행의 또 다른 참가자인 상진은 장애와 농촌 총각이라는 이중의 굴레를 짊어진 인물. 여기에 라라 또한 이방인으로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외로운 여자다.
짧은 시간에 말도 통하지 않는 사람들이 만나 결혼하는 이 속전속결 맞선작전에 사랑 같은 감정이 피어날리 있겠냐고 흔히들 생각하지만, 감독은 이들의 외로움과 순수함이 어떻게 애틋한 감정으로 연결되는지를 말하고자 한다.
영화는 서로의 상대적 조건이라는 원천적 거래가 깔려있을 수밖에 없는 농촌총각의 국제결혼 문제에 대한 회의도 슬쩍 내비친다. 상진의 결혼식에 신부의 옛 연인이 찾아와 ‘행복해라’는 말을 전하고 가는 장면에서 돈 많은 남자와 결혼하기 위해 희철을 버린 옛 여자를 떠올리는 장면이 바로 그것인데. 이 오묘한 아이러니에 대해 감독은 그냥 침묵한다. 혹은 이것은 우리네 결혼풍습과 이들의 결혼풍습이 뭐가 다른 것이 있냐는 메시지로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어떤 경우도 명쾌하진 않다.
통찰력을 발휘해야 할 시점에서 모순들을 슬쩍 눈감고 나가다보니 영화는 억지스러운 해피엔딩을 향해 달린다. 그 덕에 보다 흥행요소를 겸비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사랑과 결혼에 대한 형이상학적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았다는 감독은 그런 의문들을 그냥 치워버리고 찬란한 사랑의 결실이라는 결론을 감성에만 의존해 밀어붙인다. 신파가 거슬리면서도 제법 흡인력을 발휘하긴 하지만 용서하기 힘든 억지 엔딩은 가장 큰 단점이다.
만택 역의 정재영과 희철 역의 유준상은 모두 적당히 전형화된 캐릭터에 어울리지만 역시 ‘연기를 하고 있다’는 기분을 끊임없이 느끼게 하는 오버 스타일은 큰 점수를 주기 힘들다. 라라 역의 수애는 러시아어와 평양사투리를 함께 구사하는 만만찮은 ‘언어 연기’를 무난히 소화했다.
그림형제 마르바덴 숲의 전설
감독 : 테리 길리엄
배우 : 맷 데이먼, 히스 레저, 모니카 벨루치
때는 19세기 프랑스. 전국을 돌아다니며 괴물들과 악귀들을 퇴치해 준다는 명목으로 돈벌이를 하는 ‘사기꾼 퇴마사’ 형제 윌(맷 데이먼) 그림과 제이크(히스 레저) 그림. 프랑스 정부는 이들 형제의 어설픈 사기행각을 눈치채게 되고, 그림형제는 목숨을 건지기 위해 정부와 협상을 한다. 정부는 그림형제를 알 수 없는 이유로 처녀들이 연이어 사라지는 정령이 깃든 마법의 숲, ‘마르바덴’으로 이들을 보내버린다. 그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그림형제는 소녀들을 구해야만 한다.
로드 오브 워
감독 : 앤드류 니콜
배우 : 니콜라스 케이지,에단 호크, 자레드 레토
1992년, 우크라이나에서 자그마치 4조원 규모의 무기가 감쪽같이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1990년대 중반에 접어들어 이 사라진 무기들은 세계 각국의 무기 밀거래상들에 의해 공공연히 유통되기 시작하고, 이 와중에 ‘전쟁의 제왕’이라 불리며 독보적인 위력을 떨치는 남자, 유리 올로프(니콜라스 케이지)가 나타난다. 전 세계의 큰 전쟁 중 열에 여덟은 유리의 손을 거쳐 이루어진다고 얘기될 정도로, 그는 명성에 걸맞게 금액만 맞는다면 세계의 독재자, 전쟁광, 무기 밀거래상 등 상대를 가리지 않고 위험한 거래를 만들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