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개봉 예정인 영화들, 특히 헐리우드물에서 눈에 띄는 경향은 대작과 리메이크다. 스타 감독과 스타 배우가 만나 물량을 쏟아 부은 블록버스터, 시리즈물이 유독 많다. 더욱 더 마음을 놓을 수 있는 흥행 안전핀의 요구라는 분위기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인데, 리메이크 열풍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미 인기를 얻어 흥행성을 입증받은 소설이나 만화 등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가 많은 것은 비단 헐리우드만의 세태는 아니다. 좀더 헐리우드적인 트렌드를 짚어내자면 브로드웨이에서 인기몰이에 성공한 뮤지컬들의 영화화라 하겠다. 그것도 고전 뮤지컬들이 잇달아 다시 영화로 재탄생될 예정이다.
흥행성 입증된 작품 재탄생
홍콩의 뮤지컬 영화 ‘퍼햅스 러브’가 의외로 흥행에 선전하고 있다. 뮤지컬이 공연계에 엄청난 열풍을 몰고 있는 만큼, 뮤지컬 영화 또한 흥행성을 과거에 비해 많이 보장받는 것이 아닌가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올해 4,5월경 등장 예정인 뮤지컬 영화 대작이 벌써부터 주목받고 있다. 원작이 영화였지만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라 토니상을 휩쓸었던 ‘프로듀서스’가 멜 브룩스 제작ㆍ각색으로 다시 영화로 재탄생되고, 국내 팬들의 사랑을 유독 많이 받은 브로드웨이 히트작 ‘렌트’도 스크린으로 옮겨진다는 소식이 뮤지컬과 영화팬 모두를 설레이게 하고 있는 것.
한국의 경우 뮤지컬의 영화화보다는 영화의 뮤지컬이 활발하다. 권칠인 감독의 흥행 성공작 ‘싱글즈’ 강제규 감독의 ‘은행나무 침대’ 문근영 주연의 ‘댄서의 순정’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 봉준호 감독의 화제작 ‘살인의 추억’ 등 줄줄이 무대에 올려질 예정이다. 영화가 지배 장르인 한국적 상황을 엿볼 수 있다.
뮤지컬 원작 영화의 역사
뮤지컬 원작의 영화 역사는 헐리우드 영화사와 함께 한다. ‘마이페어 레이디’ ‘사운드 오브 뮤직’ ‘왕과 나’ ‘지붕 위의 바이올린’ 등의 고전은 물론 최근작 ‘물랑루즈’ ‘시카고’에 이르는 영화들은 모두 원작 뮤지컬을 바탕으로 영화화해 원작을 뛰어넘는다는 찬사를 얻은 걸작들이다.
최초의 유성영화인 ‘재즈 싱어’(1927)는 브로드웨이에 있는 나이트클럽에서 일하는 소년의 출세기로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되었던 동명의 뮤지컬을 영화화 한 것이다. 이 작품의 성공을 통해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넘어가는 시기에 영화 속에서 사운드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됐고 연이어 뮤지컬 영화들이 제작되기에 이르렀다. 거대 영화사 MGM은 이러한 사운드 전략의 대중화에 성공해 뮤지컬 영화의 왕좌 자리를 꿰차며 다양한 뮤지컬영화들을 제작했다.
1950년대 들어서며 텔레비전의 보급으로 인해 하락기를 맞이한 뮤지컬영화들은 새로운 돌파구로 보다 자연스러운 뮤지컬을 보여주기 위해 본격적으로 브로드웨이 극장에서 공연되던 작품들을 영화화하기 시작한다. 이때 탄생한 뮤지컬 영화들이 ‘왕과 나’(1956) ‘오클라호마’(1955) ‘남태평양’(1953) 등이다. 브로드웨이에서 별로 히트하지 못했던 작품인 ‘웨스트사이드 스토리’(1961)는 영화로 제작돼 큰 성공을 거뒀고 뒤이어 ‘마이페어레이디’(1964) ‘사운드 오브 뮤직’(1965) ‘화니걸’(1968) ‘올리버’(1969) 등이 원작 뮤지컬의 느낌과는 새로운 분위기의 영화로 제작되며 뮤지컬영화계에 새로운 국면을 가져오게 된다.
2000년대 새로운 전기 맞아
1970년대에 들어서도 브로드웨이 히트작을 영화화 한 ‘지붕위의 바이올린’(1971)을 비롯해 뮤지컬계의 거장 앤드류로이드 웨버의 록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1972) ‘그리스’(1978) 등이 뮤지컬의 영화화에 큰 힘을 실어 주었다. 하지만 1980년대 들어 뮤지컬의 영화화는 쇠락기를 맞이하기 시작했고 ‘애니’(1982) ‘코러스 라인’(1985) 등만이 그 명맥을 간신히 유지하기에 이르렀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뮤지컬 영화화의 흐름으로 인해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영화화는 1990년대 들어 더욱 주춤대기 시작했다. 간간히 ‘에비타’(1992) 정도의 작품만이 스크린에서 재탄생됐다.
뮤지컬 영화의 새로운 전기는 2000년대 들어서면서 펼쳐졌다. 오랜만에 등장한 뮤지컬 영화 ‘시카고’(2003)의 커다란 성공이 그 시발점. 뮤지컬 영화로는 지난 1968년 올리버 이후 35년만에 무려 아카데미 6개부문을 석권하며 전 세계적으로 수억달러가 넘는 흥행 수익을 거둬들여 뮤지컬의 영화화가 할리우드의 21세기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다.
이에 이어 뮤지컬계의 마이다스의 손이라 불려온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대작 ‘오페라의 유령’이 지난 2004년 제작돼 뮤지컬 마니아들 사이에 논란을 가져오며 많은 화제를 불러 일으킨 바 있다.
원작과의 차별성 논쟁
뮤지컬이 영화화 되면서 논란을 가져오는 것은 소설의 영화화에 뒤따르는 논쟁과 같은 것이다. 이미 원작이 존재하는 작품에서 원작과의 차별성이나 존재 가치는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특히 소설의 영화화와는 달리 뮤지컬의 영화화는 시각적인 것을 다시 시각적인 것으로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더 많은 위험요소를 갖고 있다. 공연장에서 실제 배우들과 호흡하며 라이브로 전해 듣는 그들의 열기와 노래와 춤을 화면 속에 얼마만큼이나 담아낼 수 있을지가 불명확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미 뮤지컬을 봤던 관객들에게 영화는 후발주자이기 때문에 뮤지컬을 뛰어넘는 무언가를 보여주지 못하는 이상 본전도 찾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반면에 뮤지컬에서는 모두 표현하지 못하는 스펙터클한 무대구성과 여러 장치들을 영화는 화려한 기술력으로 커버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 장점이다. 반대로 영화를 원작으로 하는 뮤지컬들은 생생한 현장감이 강점이지만 보다 창조적인 역량이 부족하다는 단점이 많이 지적돼 온 것도 사실이다.
‘오페라의 유령’은 뮤지컬 시장 성장의 원동력이 됐던 대작인 만큼 영화와의 비교 논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 이 같은 배경에서 브로드웨이를 비롯한 전세계 25개국에서 지난 10년간 수많은 마니아들을 양산해 온 뮤지컬의 고전 ‘렌트’ 또한 논란이 불가피해 보인다.
한 평론가는 대중음악시장에서 리메이크가 판치는 현실에 대해 ‘리메이크는 반칙’이라고 말한 바 있다. 엄격하게 말하자면 창조성이 부가되지 않은 ‘재탕’은 안일하게 관객을 끌어 모으려는 ‘반칙’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올해 개봉하는 뮤지컬 영화가 원작의 틀을 어떻게 깨는지 주목된다. 또한, 한국 공연 시장이 영화의 성공을 등에 업지만 말고, 반대로 새로운 장르적 역량을 발휘할 날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