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서울대 전 석좌교수의 파워는 어디까지일까. 줄기세포 연구로 세계를 뒤흔들더니, 국민들의 마음도 흔들어 놓은 모양이다. 그의 대단한 연구 업적이 논문조작으로 판명되고 거짓말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데도, 아직 그에 대한 존경과 맹신을 다짐하는 지지자들이 있는 것을 보면 그렇다. 혹자는 이런 세태를 보고 황 교수가 마치 신흥 종교단의 ‘교주’같다고 비꼬기도 한다. 그들이 황 교수 사태의 진위여부와 관계없이 그를 맹신하고 추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황우석 사태 진실조작, 음모라고?
천국에서 지옥으로... 난치병 환자는 물론, 줄기세포가 뭔지도 모르는 어린 아이마저도 황우석 전 교수를 열광하던 때가 불과 얼마 전이었다. 그러나 황 박사의 논문이 조작됐고, 거듭되는 거짓말로 온 국민이 실망할 때도 황 교수 사태가 ‘음모’ 때문이라며, 억울하다고 황 교수를 두둔하는 자들이 있다. 현재 황우석 지지자 모임은 ‘황우석을 지지하는 네티즌연대’, ‘황우석 지킴이 불자모임’, ‘한국척수장애인협회’, ‘한국장애인불자회’, ‘황우석 교수 살리기 국민운동본부’, ‘황우석 난자기증 모임’ 등이 활동하고 있다.
지난달 21일 저녁 광화문 열린 시민공원에서는 황우석 교수 지지모임 단체들의 촛불집회가 열렸다. 황우석 교수의 윤리성 문제와 난자채취 과정에서의 위험성이 언급되는 가운데서도 이들은 난자기증 운동을 계속 벌여 황 교수 연구를 돕겠다고 지지하고 나섰다. 황우석 난자기증 모임의 김이현 대표는 “이미 난자를 기증한 회원들이 여럿 있으며 황 교수가 연구에 복귀한다는 전제하에 다시 기증을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말했다고 한다.
황 교수에 대한 강한 믿음은, 심지어 모든 책임이 다른 데 있고 황 교수가 피해자인양 해석한다. 김 대표는 “난자 기증에 대한 부작용은 불충분한 사전검사 없이 과도하게 난자를 채취한 미즈메디 때문”이며, “난자 기증자에 따르는 고통도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 황 박사님이 잘해주실 것으로 믿는다”는 말로 황 박사에 대한 강한 신뢰를 드러냈다.
황 전 박사에 대한 ‘일편단심’은 지난달 19일 대구 MBC 사옥에서 황우석 교수의 PD수첩 방영에 항의하던 이 모씨(28세)가 독극물을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벌어지면서 황 교수 지지자들의 집단행동에 불을 당겼다.
이후 지난 4일 새벽에는 서울 세종로 이순신 동상 앞에서 60대 정 모씨가 ‘황우석 교수 줄기 세포 연구 재개’를 요구하며 유인물 30여장을 뿌린 뒤 몸에 시너를 끼얹고 분신자살했다. 그는 자살직전 ‘아이러브 황우석’ 인터넷 카페에 ‘황 박사 줄기세포 연구 중단 사태 진실규명과 연구재개를 위해 광화문에 가자’는 글을 올렸고, 유인물에서 “황 박사의 줄기세포 연구 중단사태, 진실조작 및 음모세력을 보고만 있을 수 없다”고 항의했다.
몰입적 애국주의로 물들어
이 소식이 알려지면서 카페에는 정 씨를 추모하는 사이버 분향소가 설치해 추모행렬이 이어졌고 일부 회원들은 직접 조문을 가기도 했다. 치료를 받고 있는 이 씨에게는 격려성금이 잇따랐다고 한다.
그리고 이날 저녁 정 씨의 뜻대로 서울 광화문에는 왼쪽 가슴에 고인의 명복을 비는 검은 색 리본을 달고 나와 추모했다. 이날 집회장에는 ‘황우석 박사 연구 재개 지원을 위한 범국민연합’ 회원 3,000여명이 운집했고 “정 씨는 나라를 위해 희생한 것”이라고 주장하기 까지 했다.
황 교수에 대한 ‘무조건’적인 지지는 서울대와 검찰의 발표, 언론의 보도에 잘못이 있다는 논리를 펴기도 한다. 한 집회 참석자는 이날 “언론이 황 교수 사건을 똑바로 보도하고 있지 않다”며 “이 나라가 이렇게 된 데는 기자들의 책임이 크다”고 주장했다.
또 자신을 황 교수의 선배라고 밝힌 한 참가자는 “서울대 언론 검찰도 믿을 수 없다”면서 “검찰이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우리는 굴복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집회 한쪽에는 정 씨의 분향소가 차려져 많은 참석자들의 추모행렬이 이어졌고, 다른 한쪽에서는 정명희 서울대 조사위원장을 황 교수에 대한 명예 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기 위한 지지서명을 받았다.
한 여성 참가자는 “일반 국민들을 황 교수 쪽으로 끌어들이는 일이 중요하다”면서 “주변사람 7명 이상에게 편지와 이메일 등을 보내는 방식으로 ‘황우석 행운의 편지 보내기’를 제안하기도 했다.
황우석 팬들, 신흥 종교세력의 집단 행동과 비슷
심지어 황우석 연구 재개 지원을 위한 범 국민연합 집행위원장 ‘독립군 대장’(정진완 척수장애인)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황우석 박사의 연구 재개를 지원하기 위해 100만명의 온-오프 라인 정예부대를 양성하겠다”고 밝혔다.
진실여부와 관계없이 무조건적인 사랑을 퍼붓는 이들에 대해, 시사평론가 진중권 씨는 황우석 사태를 사이비 종교와 비유해 비꼬았다. 진 씨는 지난 1월10일 자신이 진행하는 ‘진중권의 SBS전망대’를 통해 “황 박사의 팬들은 논문 조작이 사실로 드러났는데도 여전히 그에 대한 믿음을 버릴 생각이 없나 보다”면서 “‘휴거’가 오지 않아도 다미선교회는 남듯이, 줄기세포가 없어도 황우석을 믿는 신앙의 공동체는 남는다”고 황 교수에 대한 맹신과 맹종을 꼬집었다. 이어 진 씨는 지난 6일 자신의 방송 프로그램 칼럼을 통해 “어느 생방송 프로그램은 인터넷에 떠도는 황 박사 지지자들의 주장을 여과 없이 내보내 믿음과 사실의 경계를 허물고 믿음이 마치 사실처럼 여겨지게 하는데 일조했다”면서 언론의 책임론을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황 교수 지지자들의 극단적인 행동은 강하게 믿고 추앙하고 있던 사실이 거짓으로 판명된 후 나타나는 허탈감이나 충격에 따른 후유증으로 보고 있다. 중앙대 심리학과 현명호 교수는 “충격에 빠진 사람들 중에는 사실보다 정서에 무게를 둬 부인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정서적 측면에 기대는 사람들은 사건 자체를 부정하고 싶은 생각이 강하게 들 수 있다”고 진단했다.
황 교수에 대한 믿음에 맹종하는 것을 전문가들은 ‘결과에 대한 기대’가 ‘사실’처럼 받아들여지면서 ‘애국’이라는 명분과 결합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정 씨가 분신 직전 ‘동학혁명’을 언급하고 황 교수 지지집회에서도 ‘매국노 처단’ ‘특허기술을 외국에 빼앗긴다’ ‘진정한 독립국가’ 등의 표현이 사용되는 것도 이런 맥락이라는 주장이다.
모 대학의 교수는 “황 교수 지지자들은 스스로 ‘애국자’라고 확신하고 있고 검찰의 발표는 믿지 않는 대신 모임 내의 의견을 더 신뢰하고 있다”고 말했다. 황 교수 지지집회에 50~60대가 대거 참여한 것도 권위주의 시대의 국가주의와 애국주의가 비슷한 감정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강준만 교수의 “늘 생존의 벼랑 위에서 신음해 온 한국인은 ‘세계 속의 한국’이라는 이미지에 굶주려 있다”는 말도 일맥상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