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작품성을 겸비한 작은 규모의 영화들이 기대 이상의 흥행 성과를 거두고 있다. 전국 수백 개 스크린에서 수백만 관객을 동원하는 대박영화 틈새에서 작은 영화들의 소리 없는 흥행은 작지만 의미 있는 성공이다. 대형 영화처럼 홍보비를 쏟아 부을 수 없지만 작품성만큼은 자신만만한 이들의 흥행 전략은 소수를 노리는 것.
문화 컨텐츠와 공동 프로모션
지난 1월26일 5개관에서 개봉한 영화 ‘메종 드 히미코’가 전국 7개 스크린으로 관을 늘이며 9만 관객을 동원한 성과는 ‘작은 영화’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안겨줬다. 대중적 인지도나 영화의 규모에 비해 예상치 못한 성공을 거둔 사례는 최근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12월8일 개봉한 ‘브로큰 플라워’는 2개월 동안 2만 관객을 동원했으며, 2월14일 개봉한 ‘박치기!’는 관객 점유율 80~90%을 올리며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다. ‘브로크백 마운틴’ ‘미 앤 유 앤 에브리원’ ‘시티즌 독’ 등도 높은 점유율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작은 영화의 실속 흥행 중심에는 영화팬을 겨냥한 홍보 전략이 있다. 주로 소규모, 혹은 단관 개봉했던 영화들의 홍보 전략은 엄청난 물량공세를 퍼붓는 대작들 사이에서 영화 마니아라는 특정 소수 관객층을 철저하게 관리하는 데서부터 시작했다.
작은 영화들의 수입사는 자사 홈페이지 회원들을 상대로 메일 발송을 하거나 커뮤니티를 조성하는 것은 기본이고, 공동 프로모션을 통한 이벤트를 진행함에 있어서도 관객층의 입맛에 맞는 방법을 모색했다. 주로 마니아들이 문화향유의 성향이 강하다는 점에 착안해 영화의 성격과 일치하는 책이나 음반, 공연 위주의 문화 컨텐츠와 공동 프로모션을 진행해 영화에 대한 호응도를 높였다.
최근 개봉한 ‘천국을 향하여’는 온라인상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영화 소모임의 주요 회원들을 상대로 영화 자료를 적극적으로 공유하고 있다. 이 역시 영화팬들을 공략한 홍보의 일환으로 일반 관객들이 접하기 힘든 보도자료와 정보 등을 전달함으로서 영화에 대한 인지도와 관심을 증폭시키고 있다. 또한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지는 소모임의 특성상 빠른 구전효과 역시 기대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으로 작은 영화에 대해 영화팬들의 높은 관심이 지속되는 것은 물론이고, 입소문을 통한 점차적인 관객 확대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감독의 이름값
물론 단순히 홍보 전략만으로 작은 영화들의 지금과 같은 성과가 가능했던 것은 아니다. 그 바탕에는 이미 영화제 등을 통해 검증 받은 작품 자체의 높은 완성도와 감동적인 스토리 전개가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많은 마니아층을 지닌 유명 감독의 네임 밸류 역시 빼놓을 수 없는 흥행요소다.
‘메종 드 히미코’는 이누도 잇신 감독이라는 이름만으로도 그 완성도가 보장됐다. 작년 개봉해 4만명에 육박하는 관객을 동원한 잇신 감독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흥행 성공이 바탕이 됐던 것. ‘브로큰 플라워’ 또한 짐 자무시 감독의 네임 밸류가 흥행에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미 앤 유 앤 에브리원’의 경우 선댄스 영화제에서 주목 받아 이미 그 작품성을 인정받은 경우다. ‘천국을 향하여’가 2005년 베를린 영화제 최우수 유럽 작품상과 2006년 골든 글러브 외국어 영화상 등 여러 영화제 수상을 내세우는 것도 이 같은 경력들이 작품성을 반증해준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유명세와 작품성이 곧 흥행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한때는 수상경력을 오히려 숨기던 때가 있었다. 수상작은 곧 지루한 영화라는 등식이 성립돼 있었기 때문. ‘재미’는 역시 관객을 모으는 가장 일차적인 여건인데 최근의 작은 영화들이 과거와는 달리 상업적 코드를 두루 갖춘 경우가 많은 것이 흥행 원동력이 되고 있다.
작품의 퀄리티와는 별개로 지루하거나 불편한 영화들은 흥행에 성공하기 힘든 반면, 상업적 코드들을 갖춘 경우는 관객을 쉽게 끌어 모으는 경향은 분명하게 확인된다.
보편성을 지향하면서 불편한 묘사를 감춘 동성애 코드의 영화들이 흥행에 성공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즉, 작은 영화가 곧 예술 영화이던 과거의 개념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 작은 영화의 성공을 이끄는 결정적 요인인 것이다.
친구의 평가를 믿는다
결국 감독 이름이나 수상 이력 등으로 믿음을 갖고 관람한 영화가 재미까지 있다면 입소문이 나기 마련. 입소문은 어떤 마케팅 보다 위력적이다. 어느 시대나 입소문은 대단한 파워를 지니고 있었지만 작은 영화를 뛰어넘어 요즘 영화계 전반에서 입소문의 힘은 어느 때보다 주목받고 있다.
관객들의 눈높이가 높아진데다 인터넷이라는 입소문을 전달할 막강한 매체가 생긴 덕분에 화려한 마케팅을 펼친 블록버스터도 입소문이 나쁘게 나면 쪽박을 차는 경우가 흔해졌다.
지난 15일 개봉 2주만에 전국 108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달콤, 살벌한 연인’은 입소문의 위력을 입증한 경우다. 순제작비 10억원 안짝의 작은 예산과 신인 감독에 톱스타 없는 캐스팅으로 제작 당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으며 18살 이상 관람가 등급까지 받은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성공이다.
입소문이 대박을 낳은 경우 중 최고의 사례는 ‘왕의 남자’다.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이 영화는 일반 시사회를 본 관객들의 입소문으로 유명해졌다.
진부한 신파물이라는 인상에도 불구하고 관객 동원에 성공한 ‘너는 내 운명’도 일반 시사회를 많이 가져 소문 몰이를 한 것이 먹혔다. 작년 흥행작 ‘웰컴 투 동막골’ ‘마라톤’ 모두 스타와 거대 제작비를 내세우지 않고도 입소문으로 성공을 거뒀다. 재작년 가장 이례적인 흥행작이었던 ‘가족’ 또한 입소문이 만들어낸 성공이었다.
실제로 관객들이 영화를 선택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언론의 소개나 평론가의 평가보다는 주위 사람들의 입소문이라는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영화가 좋으면 적극 권장하지만 ‘영화를 보고 난 뒤 속았다’고 느끼면 75.11%가 주변사람들에게 보지 말 것을 적극 권한다고 밝혔다. 넘쳐나는 정보의 시대에 친구의 말 만큼 믿을 만한 것이 없는 시대가 된 셈. 이 같은 풍토가 거대 마케팅이 불가능한 작은 영화에게는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