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머리 앤’, ‘엄마 찾아 삼만리’ 등으로 국내 팬들에게 친숙한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이 한국에 왔다. 이번 방한은 8일부터 CJ CGV에서 열리는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전’에 맞춰 이뤄졌다.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과 함께 스튜디오 지브리를 일군 장본인이자, 40년 동안 일본 애니메이션계는 물론, 세계 애니메이션을 이끌어온 거장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신화를 바탕으로 한 창조적인 환타지의 세계로 관객들에게 어필한다면,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은 리얼리즘을 바탕으로 한 연출로 현대인들에게 잔잔하면서도 깊이 있는 감동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에게 자신의 작품세계와 세계 애니메이션의 경향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았다.
헐리웃 메이저를 중심으로 3D 애니메이션이 세계적으로 흥행하고 있는데, 애니메이션의 기술적인 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나.
요즘은 3차원적 표현이 일반화되고 2차원적인 표현이 많이 줄어들고는 있지만 3차원적인 표현과 2차원적인 표현 중 어떤 것이 더 우수하다는 식의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 선으로 표현한 그림은 보고는 그 뒤에 있는 인물을 상상하게 된다. 하지만 3차원적인 입체로 표현된 것은 그 자체가 거기에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게 된다.
평면적 표현과 입체적인 표현, 이 두 가지는 보는 사람에게 틀린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지 어떤 것이 더 우수하냐, 어떤 것이 더 뒤떨어져 있다거나, 이제 평면적인 표현은 완전히 없어질 것이라는 식의 생각은 갖고 있지 않다.
이번 감독전에는 ‘이웃집 야마다군’, ‘추억은 방울방울’, ‘반딧불의 묘’,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4개의 작품이 상영되게 되는데, 이 4개의 작품이 작품 인생 중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나.
이번의 4개 작품도 각각 틀린 이야기, 틀린 내용이다. 표현하는 방법도 각각 틀리다. 특히 ‘이웃집 야마다군’ 경우는 더욱 차별화 돼 있다. 애니메이션으로서만 표현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라는 고민을 많이 한다. 보통 실사로만 표현되어질 수 있다고 생각되어지는 것은 애니메이션으로 작품을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부분을 애니메이션으로써 표현해서 작업 하는 것을 테마로 생각을 하고 있다. 각 이야기들이 다 틀린 것 같지만, 테마 자체는 일관돼 있다. 보통 사람이 보통 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부분에 대해 항상 생각한다.
‘이웃집 야마다군’을 보면, 호흡이 짧은 에피소드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이 작품을 TV 애니메이션이 아닌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이유가 있나.
일단 TV애니메이션으로 만든다는 것에 대해서는 흥미가 없다. 4컷 만화를 TV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작품은 일본에도 ‘사자의 상’을 포함해 여러 작품이 있다. 그런 작품들은 원작과는 전혀 다른 작품이 되는 것 같다. 원작에는 없는 내용을 막연하게 부풀려서 그리기 마련이다. 4컷 만화는 보통 기승전결이 확실하게 끝나는데, TV 시리즈 애니메이션의 경우에는 기승전결이 애매한 작품이 돼버린다. ‘하이쿠’라는 일본 전통 시가 있는데 짧은 시 몇 개를 나열해 전체적으로 통일된 의미를 표현하는 형식이다. ‘이웃집 야마다군’ 또한 ‘하이쿠’처럼 짧은 에피소드들이 서로 호흡을 맞춰 전체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을 주안점으로 만들었다.
일본 애니메이션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 있는 것 같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특징과 강점이 무엇이라 생각하나.
관객이 작품 속 주인공의 바로 옆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 일본 애니메이션의 특징이다. 즉 작품 속으로 보는 사람들이 빠져들게 해 모험을 직접 체험하게 하는 부분인데, 그런 점이 흥행적 의미에서 일본 애니메이션의 장점이다. 하지만, 나는 조금 더 밖에서 객관적으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작품을 만들고 있다. 이것은 ‘이웃집 야마다군’에서도 그렇고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에서도 그랬다.
혹시 한국 애니메이션이나 영상물을 접한 적이 있나.
한국 영상물을 일본에서 굉장히 유명하다. 한국 작품에 대해 광팬은 아니지만 한국 작품에 대해 이해할 만큼 봤고 우수한 작품도 많다고 생각한다. 애니메이션 작품으로 장편을 끝까지 다 본 것은 ‘마리 이야기’라는 작품이 있다. 한국 단편 애니를 봤을 때, 걸작까지는 아니지만 꽤 재미있는 작품이다라고 평할 수 있는 작품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사람 냄새 풍기는 작품들이 많은데, 이러한 작품들을 만들기까지 영향을 끼친 작품이 있다면.
내가 어렸을 당시에는 애니메이션이라는 것이 많이 없었다. 영상이라고 한다면 극영화가 당시 주류를 이뤘는데, 극영화는 주로 인간에 대해서 취급을 하고 그 내용이 인간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는 작품이 많았기 때문에 그런 영향이 있지 않나 싶다. 한 편의 프랑스 장편 애니메이션들을 보고나서 애니메이션에 대한 가능성을 느꼈고 그것이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들게 하는 계기가 됐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과의 40년 우정 또는 파트너쉽을 유지하고 있다.
미야자키 감독과는 길게 우정을 돈독히 해온 사이다. 미야자키 감독은 지금까지 만나온 사람 중에서 최고의 재능을 가진 사람이 아닌가 싶다. 그런 사람과 같이 일을 해오게 돼 정말 기쁘게 생각한다. 하지만 서로의 생각이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협력하면서 일을 해오기는 했지만 경향이 점점 달라져왔다. 리얼리티를 표현하고자 하는 점은 의견이 일치했지만 스타일이 달라지면서 서로의 작품에 대해 비판도 하게 됐다. 생각의 차이는 있지만 서로 좋은 친구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미야자키 감독에게 한 가지 감사하는 점은 지브리 미술관을 만든 것이다. 당시 미술관을 만든다는 얘기가 있었을 때는 그런 것을 만들어 뭐하나 하는 생각을 했지만 현재 그 미술관이 차지하는 역할 의미가 굉장히 크다.
‘이웃집 야마다군’ 이후 근황과 신작에 대한 작품 구상 등에 대해 말해 달라.
‘이웃집 야마다군’ 이후 조그만 작품을 만들기는 했지만, 거의 작품 활동을 안 했다고 할 수 있다. 애니메이션 작품 활동은 어떤 작품을 기획했다가 중단했다가 하는 식이 반복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애니메이션 이외에 집필활동과 연구를 조금 하고 있다. 앞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의 일반적 경향에서 벗어난 색다른 작품을 만들고자 하는데 우연히 프랑스 작품 2편이 내가 원하는 경향과 일치해서 이것을 번역해 일본에 소개하는 일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