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Fan은 특별전이 특히 강하다. 이것은, 1997년에 닻을 올린 이후 지난 10년을 거치면서 이루어진 평가다. 그 동안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호금전 특별전’, ‘미이케 다카시 회고전’, ‘가이 매딘 특별전’, ‘뉴질랜드 특별전’ 등을 통해 열정적 관객들의 갈증을 해소시키는 큰 역할을 수행해왔다. 10회를 맞는 부천영화제 이번 프로그램 역시, 역대 최강의 특별전으로 다채롭게 짜여져 있다.
정치적 검열로 훼손된 한국영화 원본을 보다
PiFan의 전통적 미학을 계승하는 특별전으로 ‘컬트의 왕 이시이 테루오 특별전’과 ‘이탈리아 공포영화 특별전’ 등이 마련된다. 그리고 색다른 코미디로써 시간의 흐름과 함께 재평가되고 있는 ‘자크 타티 모던 코미디’, 독일 표현주의의 대가 프리츠 랑의 30주기를 기념하는 ‘라이브 음악으로 부활하는 프리츠 랑’이 특별전으로서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이중에서도 ‘한국영화 디렉터스 컷’은 한국영화의 화제작을 원본으로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한다. ‘디렉터스 컷’은 주로 외국영화를 통해 친숙해진 개념이다. 부천영화제 프로그래머는 “리들리 스코트의 ‘블레이드 러너’의 경우에서 보였듯 디렉터스 컷은 많은 경우 연출자 개인과 시스템과의 갈등에서 초래된 개념이었다”며, “영화라는 매체는 역사상 ‘가장 비싼’, 다시 말하면 ‘가장 많은 돈이 드는’ 예술 수단이며, 따라서 영화를 둘러싸고 발생하는 ‘상품과 예술 사이의 갈등’은, 그 자체로서 영화의 역사 전체를 이루고 있다고 보아도 큰 무리가 없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런데 한국의 영화사에는 또 다른 의미의 ‘디렉터스 컷’이 존재한다. 물론 그것은 정치적 상황이 낳은 결과물이다. 권위주의 정권의 시대에 한국에는 정도를 넘는 심한 영화 검열이 존재했다. 그 때문에 때로는 상영 자체가 불가능했고, 예술의 창작자들이 ‘불온하다’는 이유로 주변인으로 내몰리기도 했으며, 많은 영화들이 강제적으로 ‘커트’된 상태에서 불구의 모습으로 관객에게 보여졌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바보들의 행진’ 등 상영
<그림2>부천국제영화제의 ‘한국영화 디렉터스 컷’ 특별전은 심하게 잘려나가 ‘원본’이 달라졌던 영화들의 진정한 ‘원본’을 발굴해 소개한다. “이것은 할리우드에 비해 월등히 숭고한 의미를 지니는 ‘디렉터스 컷’ ”이라는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 안에는 다양한 형태의 ‘인권’의 문제가 숨어 있다. 그것은 당시의 기준으로 볼 때 ‘수위’를 넘어간 ‘성적 표현’의 문제이기도 했고, 기형적 사회의 정체를 드러낼 위험이 있는 ‘사회적 표현’, 또는 국가의 정체성에 도전하는 ‘정치적 표현’ 등 여러 영역에 걸친 것이었다. 명작 한국영화의 원본, 즉 ‘코리안 디렉터스 컷’을 찾는 일은 이런 의미에서 부분적으로는 ‘한국 현대사의 복원’이기도 할 것이다. ‘코리안 디렉터스 컷’의 대상으로 부천영화제는 모두 여섯 작품을 선정했다. 이원세 감독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과 ‘최후의 증인’, 하길종 감독의 ‘바보들의 행진’, 이장호 감독의 ‘어둠의 자식들’ 등이다. 프로그래머는 “이 사회성 짙은 영화들의 ‘오리지널’을 보고 있노라면, 유신시대와 5공시대에 우리가 대면했던 딜레마들이 마치 건빵의 추억처럼 눈앞에 피어오를 것이다”며, “그 순간 우리는 ‘표현의 자유’가 무취의 것이면서도 얼마만큼 소중히 지켜야 할 것인가 새삼 깨닫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드리 헵번의 세 가지 사랑
또 하나 다수 대중의 눈길을 끄는 기획은 ‘은막의 천사 오드리 헵번 특별전’이다. 이 특별전은 오드리 헵번이 남긴 작품들을 기릴 뿐 아니라, 실생활에서 그녀가 실천한 선행을 찬양하는 의미도 함께 지닌다. 잘 알려져 있듯이, 1988년 그녀는 기아로 죽어가는 어린이를 위해 유니세프 특별대사로 활동하는 데에 동의했다. 이후 1993년 사망할 때까지 오드리 헵번은 방글라데시, 에티오피아, 수단, 베트남, 에콰도르,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온두라스와 소말리아 등에서 버림받는 아동들의 고통을 따뜻한 손길을 통해 경감시켰다.
초기작부터 만년에 걸친 작품으로 구성된 이번 특별전에서 관객은 세 가지 관점에서 오드리 헵번의 영화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영화적 차원에서 접근해 가는 방식이다. 1953년 ‘로마의 휴일’에서 시작된 헵번의 신화는, 그녀를 동화 속의 요정으로 만들었다. 주로 ‘사랑’이라는 테마를 지니고 전개되는 이 작품들로 헵번은 세계적 스타의 반열에 올랐고, 그녀에게 ‘판타지 안에서 꿈꾸는 공주’의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이어서 ‘사회 현실 속의 헵번’의 시기가 있다. 프레드 진네만의 ‘파계’를 대표로 하는 이 시기에 헵번은 연기력을 기반으로 하는 배우의 단계로 올라선다. 이번 특별전을 통해 헵번의 연기의 변천을 돌아보는 일은 무엇보다도 유용할 것이다.
그녀의 패션과 선행
두 번째로 오드리 헵번의 패션을 중심으로 접근하는 방식도 큰 흥미를 준다.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듯이 큰 키와 마른 체형을 지닌 오드리 헵번은 처음부터 패션 모델에도 적합한 조건을 지니고 있었다. ‘로마의 휴일’ 이후 헵번의 의상은 언제나 큰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그녀는 출연작을 통해 피에르 카르댕, 지방시, 조르지오 아르마니 등 유명 디자이너의 의상을 뽐내면서 영화의 영역 안에 ‘패션’을 중요한 분야로 위치시켰다. 또한 “오드리 헵번의 길고 얇은 발은 키와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는 살바토레 베라가모의 지적에서 연상할 수 있듯이, 헵번의 신발들 역시 흥미로움을 준다. 이번 특별전은 헵번의 패션의 변천사를 돌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를 지닌다.
마지막으로, ‘오드리 헵번 특별전’은 현실 세계 안에서 선행을 펼친 인물로서의 헵번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줄 수 있다. 영화제의 프로그래머는 “대형화면을 통해 이미 사라져버린 스타의 이미지를 보면서 그 인물이 실생활에서 행한 선행까지 본다면, 그것은 아마도 ‘승화된 사랑의 판타지’에 자신을 일치시키는 숭고한 경험일 것”이라며, “그 순간 빌리 와일더 감독이 오드리 헵번에 관해 했던 ‘신이 그녀의 빰에 키스했다. 그러자 거기에 그녀가 있었다’는 말을 문득 떠올리게 될지 모른다”고 말했다.
물론 영화제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역시 다양한 국가의 다양한 신작을 볼 기회를 제공하는 일이다. 7월13~22일 부천 시민회관 대강당, 부천시청 대강당, 복사골문화센터 등지에서 열리는 부천영화제는 장편과 단편을 포함해 모두 40여개국 250여편의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것은 역대 최고의 규모며,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에서 중동까지, 북유럽에서 남미까지, 북미에서 아프리카까지 다채로운 신작들로 구성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