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보트태권브이’의 존재는 사뭇 심상치 않다. 한 개인에게 그것은 어린시절의 꿈이고 낭만이며 자녀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추억이다. 한국애니메이션 역사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독창성을 인정받은 초기 애니메이션으로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한 작품이다. 무엇보다 ‘로보트태권브이’는 외래문화의 홍수 속에서 상실감을 겪던 세대들에게 이후로도 오랫동안 자긍심을 안겨준 한국 문화의 자존심이었다. 태권도와 로봇의 절묘한 오버랩, 이순신 장군의 외모를 딴 얼굴형 등 민족적인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들은 ‘태권브이’ 신화의 핵심 요인이라 할 것이다.
탄생 30주년이 되는 동안 기성세대로 성장해간 당시 팬들은 동호회를 만들고 관련 자료를 수집하며 ‘태권브이’에 대한 향수를 간직해왔다. 그들의 사라지지 않은 열정을 원동력으로 30주년을 추억하기 위해 서울애니메이션센터에서 1976년 복원판을 상영했고, 남산 서울애니메이션센터 로비에는 관련 자료 전시회를 열었다. 상영회는 어린아이처럼 들뜬 부모와 옛날의 아버지처럼 호기심에 가득한 아이들이 함께하는 뜨거운 분위기였다. “30년 전 영화를 다시 선보이게 돼 식은땀이 날만큼 떨렸는데 여전히 사랑 받고 있더라”며 상기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로보트태권브이’의 아버지, 김청기(65) 감독을 상영회에서 만났다.
상영회를 가진 소감은.
<그림1왼쪽>30년 전을 타임머신 타고 와있는 것 같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그 때가 어제처럼 생생히 떠오른다. 강산이 세 번 변했는데 팬과 마니아, 애니메이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여전히 회자되고 있는 것이 반갑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어깨가 무겁고 책임감을 느낀다. 요즘의 SF영화들, 핸드폰과 같은 디지털 제품들… 이런 것들은 1,2년이 지나면 폐품화되는 상황이다. 그래서 SF영화를 만들 때 걱정이 많았다. 정서적으로 10년이 지나도 좋은 작품이 되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로보트태권브이’ 이후 ‘똘이장군’과 같은 작품으로 변신을 꾀하기도 했다. 당시 코흘리개 소년 소녀들이 장성해서 딱 고만한 자녀들을 데리고와 감회에 젖고 공감대를 교통하는 모습들이 너무 보기 좋다.
‘로보트태권브이’ 1탄을 복원했는데 그 이 후 작품은 복원하실 생각이 없나.
이 작품만 해도 복원하는데 2년이 걸린데다 영화진흥위원회에서 10억이라는 비용을 들여서 복원한 작품이다. 개인적으로는 복원을 다했으면 좋겠지만 욕심이다.
‘로보트태권브이’는 어떤 계기로 탄생했나.
문화적으로 침투 당한다는 느낌이 싫었다. 요즘 아이들에게 ‘떡’과 ‘빵’을 동시에 준다면 대부분은 ‘빵’을 고를 것이다. 그들은 ‘빵’을 먹고 자랐기 때문이다.
음식과 문화는 같다고 생각한다. 당시 아이들이 즐겨보는 만화들은 모두 일본만화였다. 어렸을 적부터 우리 것을 보고 느끼게 해야만 그 어린이들이 자라서도 우리 것을 아끼고 창조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울러 천편일률적인 일본 만화, 너무나 폭력적인 일본 만화에 대한 위기감을 느꼈고 우리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공감대를 갖고 작업을 시작했다.
새로운 ‘로보트태권브이’는 언제쯤 개봉예정인가.
부활프로젝트라고 해서 캐릭터 디자인부터 열심히 작업 중에 있다. 올 해 안에 캐릭터 디자인이 끝나면 내년부터 작화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2008년에는 새로운 ‘로보트태권브이’를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일본 로봇애니메이션이 마징가Z부터 건담까지 무구히 변신하면서 그 궤를 이어오고 있는 반면 한국은 ‘로보트태권브이’ 외 다른 작품은 없다. 극장용 애니메이션이라는 것이 첫 작품이 인기를 끌어도 그 다음 작품, 또 그 다음 작품이 나왔을 때 관객이 외면하기 쉽고 관객이 외면하면 당연히 투자도 어려워진다. 당시에는 또 컬러TV의 등장으로 애니메이션을 TV를 통해 볼 수 있게 되어서 더욱 어려운 상황이었다.
한국 애니메이션이 독창적인 색깔을 가지며 발전하기 위해 어떤 것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다양한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정부기관 외 도움을 주기위한 투자기관들의 관심도 필요하다. 만드는 사람들의 자세 및 노력도 필요하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우리 것에 대한 인프라, 인재들이 많다. 이들을 잘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관객입장에서 관객들이 영화를 볼 때 내가 부모라면 이 애니메이션을, 이 만화를, 이 영화를 과연 우리 아이들에게 보여줄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로보트태권브이’가 과연 독창적인 것인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일본 로봇물과 기본적으로 유사한 면이 많다.
부활프로젝트를 만들 때 가장 고민하는 부분이다. 로보트태권브이가 재조명되면서 아류작, 표절 이야기도 많이 나오곤 한다. 사실 일본 애니메이션의 영향을 안받았다고 말할 순 없다. 상업적인 측면에서 일본 애니메이션이 어떤 방식으로 관객을 끌어들였는가에 대해서는 분석이 필요했다. 그런 측면 외에도 인간형 거대 로봇이라는 동일한 소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떤 부분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것은 당시의 실력의 한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의 외모를 딴 얼굴형, 태권도를 하는 로보트에 대한 부분은 독창적이라 생각한다.
늘 진화된 로보트태권브이를 보여주고 싶다는 바람을 가져왔다. 그러나 반면 너무 급격하게 바뀌면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부활프로젝트는 물론 하이테크의 모습으로 등장할테지만 정서적으로 공감대를 이끌어 낼 수 있는 합의점에 대해서 고민했고 그런 작품이 될 것이다.
넥타이 부대 ‘포스트 쟁탈전’
로보트태권브’이 복원판 상영을 위해 새롭게 인쇄된 포스터가 인기를 끌고 있다. 1976년 ‘로보트태권브이’ 포스터를 그대로 재현해낸 복원판 상영 포스터. 이 포스터를 붙여놓은 서울 남산애니메이션 센터 부근에는 3~40대로 보이는 넥타이 부대가 포스터를 떼가는 진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최근 오빠부대를 이끌고 다니는 스타들이 나오는 영화의 포스터와 전단 품귀현상은 있었어도 중년층이 직접 나서 포스터를 떼어가는 일은 전무후무 사례. ‘로보트태권브이’를 보고 자랐던 3~40대 남성들의 향수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는 부분이다. 특히 이번에 새로 인쇄한 포스터는 팬들에게 소장가치를 가질 수 있도록 최상의 종이로 만들어진 포스터. 주식회사 로보트태권브이의 신철 대표이사는 “로보트태권브이 컬렉터가 많다. 그들에게 복원판 상영은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그래서 특별히 소장이 가능한 포스터로 제작하기로 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