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위트 감각과 개성 있는 드라마로 마니아를 만들어온 장진 감독이 이번엔 사나이의 진한 우정을 이야기한다. 1998년 ‘기막힌 사내들’로 데뷔한 후, ‘킬러들의 수다’, ‘아는 여자’, ‘박수칠 때 떠나라’ 등을 통해 ‘장진 스타일’을 구축해온 그는 신작 ‘거룩한 계보’에 이르러 자신의 스타일을 깨고 대중과 편안한 호흡을 시도했다고 밝혔다. 장편 이외에도 환경영화제, 인권 영화 등에도 활발하게 참여하며 그칠 새 없이 크리에이티브한 작품들을 쏟아내는 충무로의 손꼽히는 흥행메이커인 장진 감독을 ‘거룩한 계보’ 시사회장에서 만났다.
‘거룩한 계보’를 통해 무엇을 이야기 하고 싶었는나.
일반 관객들이 생각하는 ‘나 스러움’ ‘장진 스타일’ 대신 대중적으로 편한 영화를 해보고 싶었다. 작가적 목소리를 내려는 것이 아니라 대중적인 남자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재미들을 과하지 않게 다른 것들과 잘 조화시키면 독특한 영화가 나오겠다는 생각에서 이 영화를 만들었고, 그런 의미에서 ‘거룩한 계보’는 어떤 의미를 찾는 영화는 아니다. ‘거룩한 계보’야말로 그냥 일반 관객들이 편하게, 즐겁게 봐야 하는 영화다.
대중과의 간극이 점차 좁혀지고 연극적인 느낌도 중화되고 있는 것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동안 나는 쭉 상업영화를 만들어 왔다. 다만 내가 대중들이 편하게 생각하는 감독이 아니었을 뿐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기능적 능력이 모자라 그 동안 대중들과 호흡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들어 이번에는 좀더 편하게, 대중들에게 다가가려 했다. 실험적인 디테일이나 엉뚱함이 이번 영화에서는 많이 자제돼 있다. 일부 언론에 강우석 감독님이 편집 권한을 행사한다고 알려졌는데 감독님이 오락적, 대중적 코드를 읽는 능력이 탁월한 분이라 많은 조언을 해주시는 건 사실이지만 실제 편집에 간섭하는 월권을 행하시지는 않는다.
실험적 디테일이나 엉뚱함을 배제하는 등의 변신을 꾀하면서 불안감은 없었나.
가끔 가다가 억누르는 게 힘들었다. ‘여기서 이런 짓도 하고 싶은데, 이건 위험한 거야. 이렇게 하는 건 몇 년 전으로 돌아가는 거야’라는 생각에 힘들었다. 사람들이 더 많은 보편적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영화를 해보자 했는데, 만들고 보니까 딱 대중적인 영화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어쩔 수 없이 내 스타일이 묻어나는 것 같다.
제목이 지니는 특별한 상징성이 있나.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관계’와도 같다고 생각한다. 내가 무슨 일을 하는데 내 옆에 친구가 온다. 그 옆에 또 다른 사람이 붙어서 올 수도 있고, 이 순간에 우리는 무슨 관계가 되지 않나. 이 사람들이 깡패면 조직폭력배가 되는 것이고 말이다. 그런데 ‘거룩한 계보’에서는 내가 어떤 절대적인 목적이 있어서 무슨 일을 하는데 그 옆에 친구처럼 누군가가 있다. 그리고 그들이 사라진 이후에 어떤 누군가가 그들을 추억한다. 추억이라는 것으로 그들과 그 이후의 사람들이 하나의 조화로움, 닮아감으로 인해 하나의 계보가 만들어지는 거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에서는 왜 그런 계보가 형성됐을까 하는 이유를 파고드는 것이고, 그 이유 안에는 너무나도 소중하고, 심지어는 거룩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상징성이 있다.
정재영, 정준호 두 배우를 캐스팅하게 된 이유는.
두 배우는 각자의 캐릭터와 많은 면에서 닮아 있고, 표현적 또는 기능적인 면에서 연기가 좋은 배우들 아닌가? 그래서 아주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또 하나는 그 둘이 붙었을 때 어떤 이미지가 나올까 궁금했다. 정재영 씨는 본인이 할 수 있는 연기적인 경력을 최대한 맘껏 뽐낼 수 있는 연기파 배우이고, 정준호 씨는 그것보다 더 조금 나아가서 대중적으로 편안하고 친숙한 배우다. 이 둘이 가져다 줄 시너지가 우리 영화의 대중성에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고 작업하면서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연출하면서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은.
드라마 정서가 굉장히 강하다. 또한 장면 자체에 신파성도 세다. 하지만 이 작품의 전체적인 부분에는 유쾌한 코믹 터치가 여전히 남아있다. 사실 한 장르의 영화 안에서 대중들에게 편안한, 오락적인 코미디와 감정을 자극해야 할 정서적인 세기를 공존하게 하는 밸런스 조절이 힘들다. 코미디를 너무 많이 보여주면 나중에 느껴져야 할 감정의 세기에 진실성이 떨어질 수도 있고 폭발적인 감정에 젖어 들었는데 그 다음에 코미디가 나오면 배반당한 기분이 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연출 입장에서는 이 수위 조절이 많이 신경 썼고 조심했던 부분이다.
가장 공들여 찍은 장면이 궁금하다.
영화에서 담 무너지는 장면이 위험하기도 하고 찍는데 애를 좀 먹었다. 잘 안 무너져서 3번 정도 재촬영을 했고, 영화 속 동치성이 담을 무너뜨리는 공만큼, 촬영 스탭들 모두 애를 썼다.
촬영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좋은 스탭과 좋은 환경에서 촬영을 해서 특별히 힘들었던 점은 없었다. 그나마 힘든 걸 꼽자면, 나 자신도 영화가 어떻게 나올까 기다리게 되는데, 이번 영화가 그전 작품들보다 곱절로 촬영기간이 길었다. 시간적인 기다림이 힘들었기 보다는 조금 적응이 안됐다.
이번에도 역시 흔히 ‘장진 사단’이라 불리는 배우들이 등장하는데, 항상 익숙한 배우들과 작업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질리지 않아서 그렇다. 왜냐하면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게 너무 많기 때문이다. 매 작품마다 나도 처음 보는 신선한 것을 많이 보여주고 그래서 이번에는 뭐가 나올까 기다리는 재미가 너무 좋다. 오래 같이 일을 하며 얘기를 많이 해온 친구들이다 보니 나의 실수나 프로덕션 환경의 열악함으로 인해 불편한 순간에도 많은 것들을 이해해준다. 친구로서, 같은 동지로서 전폭적으로 지지해줘서 마음이 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70%정도이다. 그 외적인 30%는 새로운 배우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다. 남들이 얘기하는 ‘장진 사단’의 생김새는 아마 계속 이런 식으로 변할 것이다.
최고의 명장면, 명대사를 손꼽자면.
마지막에 동치성이 복수를 하려고 자기가 모셨던 분과 대면하게 될 때, 그의 얼굴을 바라보는 장면 있다. 그를 정말 죽이고 싶도록 미워했는데, 미워함보다 먼저 치성의 입에서 나온 소리는 “얼굴 꼬라지가 그게 뭐여?”다. 찍고 나서도 그 장면과 대사가 인상 깊었다. 내가 모셨고 내가 ‘성님’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인데, 나에게 정말 ‘성님’처럼 당당하게 있어야 할 텐데 당신 정말 쪼다처럼, 바보처럼 왜 그런 얼굴을 하고 있냐고 말하는 치성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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