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류 원산지표시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조 희 욱 자유민주연합 국회의원 |
잘못된 의류원산지
판정기준과 정부의 ‘늑장대응’으로 국내 의류산업의 존립기반이 위협받고 있다.
과거 세계 3대 섬유제품 생산국이었던 우리나라가 현재는 의류의 90% 이상을 중국이나 베트남 등지에서 수입하고 있다.
2001년과 2002년 섬유류 수출은 각각 14.1%, 9.6%가 줄어든 반면, 수입은 오히려 1.2%와 4.2%가 증가했다. 이에 따라
봉제산업을 비롯한 국내 의류산업이 존립기반을 잃어 수많은 업체가 공장 문을 닫고 있는 형편이다.
봉제공장들이 문을 닫아 공급자수가 줄어들면 의류가격이 오를 법도 한데 아이러니컬하게도 현실은 이와는 정반대다. 다름 아닌 잘못된 원산지
판정기준과 이로 인한 ‘가짜 MADE IN KOREA’ 제품이 판치고 있기 때문이다.
현행 대외무역규정 제6-3-1조(수입물품의 원산지 판정기준) 3항 별표에 따르면 ‘의류는 재단 공정이 이루어진 곳을 원산지로 하게’ 되어있다.
일반적으로 전체 의류제조 과정에서 재단은 그 비중이 대략 5% 정도에 불과한 반면 재단 이후의 공정이 95%에 달하는데, 그 대부분은 봉제공정이다.
현재 대부분의 OECD 회원국들이 의류원산지 판정기준을 ‘봉제’ 기준으로 하고 있음에도 유독 우리나라만 ‘재단공정’을 기준으로 하고 있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현행 의류원산지 판정기준은 적지 않은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우선 소비자에게 잘못된 정보를 제공해 소비자 주권을 침해하고 있다.
처음부터 국내에서 재단과 봉제를 거쳐 만들어진 옷과 95%의 공정이 중국에서 처리된 옷이 똑같이 ‘MADE IN KOREA’ 라벨을 부착함으로써
소비자의 선택에 혼선을 초래하고 있다.
또한 한 공장에서 만들어진 의류가 내수용인지 수출용인지에 따라 원산지 표시가 달라지는 모순이 발생하고 있다. 한국에서 재단한 원단을 중국에서
봉제한 경우 미국에 수출할 때는 중국산으로, 국내 반입시에는 한국산으로 표시되는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잘못된 원산지 판정기준은 국내 의류산업의 고부가가치化에도 장애요인으로 작용한다. 의류시장이 비용경쟁에서 브랜드 경쟁으로 전환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가짜 MADE IN KOREA’ 제품의 성행은 진짜 국내산 의류의 가치마저도 하락시키고 있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정부의 대응은 안이하기 짝이 없다. 올 초 업계의 개정요구에 대해 정부는 개정 검토를 약속했으나 한 해가 지나도록 어떠한
가시적인 조치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올 1월 의류원산지기준 개정관련 간담회가 열린 이후 이제껏 나온 대책이라곤 ‘연구용역 추진 중’이라는 답변뿐이다.
현재로서는 ‘의류원산지 판정기준 개정’에 대한 정부의 의지를 신뢰하기 어렵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불합리한 현행 의류원산지 판정기준의
한편에 중국, 베트남 등 인건비가 싼 국가에 현지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대기업들을 위한 배려가 위치하고 있다면, 심각한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영세 봉제기업들과 종사자들의 희생을 담보로 대기업의 이해를 우선하는 정책이 정의감(正義感)에 반하는 것은 물론이다. 더욱이 ‘제조업 공동화’
문제가 사회적 화두로 등장하는 현 시점에서 이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법규정의 개정을 미루는 것도, 정책의 일관성(一貫性)면에서 바람직하지
못하다.
‘의류원산지 판정기준 개정’은 단지 섬유업계에 국한된 문제만은 아니다. 섬유업계는 물론 여타 제조업계와 산업계가 이번 문제를 처리하는 정부의
자세를 주시하고 있다.
모쪼록 정부는 각별한 의지와 세심한 배려를 바탕으로 관련 규정의 개정에 박차를 가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