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것조차 죄처럼 느껴졌던 1980년대를 배경으로 아픈 시대에서 피어난 가슴 아픈 사랑을 그린 황석영의 소설 ‘오래된 정원’이 영화화됐다. 2000년대 영화화하기에는 진부하고도 비흥행적 소재인 이 영화가 얼마나 새로울 것인가로 귀추가 주목될 수 있었던 것은 임상수 감독이 메가톤을 잡았기 때문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암살 사건을 블랙코미디로 그려 화제가 됐던 ‘그때 그사람들’의 임 감독이 1980년대라는 암흑의 시대를 특유의 쿨한 감각으로 그린다는 것은 곧 새로운 운동권영화의 탄생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임 감독의 차가움과 뜨거운 시대의 만남이 화제가 됐지만 사실 임 감독의 전작들은 하나같이 쿨한 어법 내면에 역사의식과 386세대에 대한 생각, 그리고 인간에 대한 뜨거운 연민 등을 담아왔다. 그런 면에서 ‘오래된 정원’은 배경 시대와 장르는 달라졌지만 감독의 전작들의 연장선상에 있다 할 수 있다.
기자간담회장에서 만난 임 감독은 특유의 직설화법으로 질문에 답했다. ‘그때 그 사람들’이 실존인물들의 법적 대항으로 개봉에 어려움을 겪었는데 또 실존인물을 포함한 영화를 만든 부담감은 없었느냐는 질문에는 “ ‘그때 그사람들’도 했는데, 이 정도(전두환)는 80년대 기본사양이라고 생각한다”라는 재치 있는 답변을, 원작과의 차별성을 둔 점에 대해서는 “80년대를 다루지만 고리타분하게 하지 않으려 했다. 원작의 인물은 너무 숭고하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오래된 정원’을 영화화 하게 된 배경이 무엇인가.
‘오래된 정원’의 경우는 출간 당시에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지만, 영화화를 생각한 것은 ‘그때 그 사람들’을 완성한 직후다. 황석영은 생존해있는 소설가 가운데 최고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소설이 영화화되지 못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때 그 사람들’을 완성하고 나서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있기는 했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한국사회에 그 영화가 잘 받아들여진 것 같았다. 그 직후에 ‘그렇다면 이제 황석영의 소설도 영화화할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사실 ‘오래된 정원’은 한국의 80년대 민주화 운동에 관한 집대성이자 결정판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황석영 선생이 소설을 썼을 당시와 내가 영화를 만드는 지금은 또 어떤 사회적 변화가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2006년의 관객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 것인가에 대해 꽤 많은 고민을 했고, 그 결과 시대적 특수성을 뛰어넘은 우리들의 보편적인 삶에 주목하게 됐다. 거대한 사회적 변화를 당한 개인적 신념의 왜소함과 그 개인의 쓸쓸함을 위로할 수 있는 인간적 의리, 또는 사랑에 대해.
‘그때 그사람들’ 때 실존인물을 다루어서 어려웠던 경험이 있는데, 이번에도 실존인물이 언급된다. 그런 부분에 부담은 없었는지.
아마 전두환씨 부분을 말하는 모양인데 어느 시대에나 그런 사람이 있는 것 아닌가. ‘그때 그사람들’도 했는데 이 정도는 80년대 기본사양이라고 생각한다.
주인공이 오래 감옥에 있었는데, 그럼에도 현실에 적응을 잘 하는 것 같다. 그리고 현우 어머니는 원작에 없었는데, 부동산으로 돈을 번 설정이다. 특별한 의도가 있는 것인가.
오현우의 병원 입원장면을 보면 그의 현실적응의 어려움을 표현하고 있다. 남자가 출옥해서 일주일쯤 과거의 그 곳인 갈뫼를 다녀온다. 사실 이 영화는 주인공이 달라진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보여주는, 그의 치유의 과정을 그리는 영화하고 할 수 있다.
멜로드라마지만 운동권 후일담에서 자유롭지는 못할 것 같다. 그 운동권을 어떻게 평가하나.
80년대 운동권에 대한 더 이상의 이야기가 없다는 것이 소설 ‘오래된 정원’이다. 어떤 대상을 본다는 것은 항상 비판적인 것 아닌가. 사실 현실정치에서 정파적인 이유로 386을 얘기하는 것 보다, 이 영화는 좀 더 근원적인 이야기다.
원작과는 인물의 성격이 많이 다른 것 같다. 인물을 다르게 해석한 이유는 무엇인가.
80년대 운동권을 다루지만 고리타분하게 하지 않으려 했다. 대개가 항상 신념에 찬 인물들을 그리는데, 원작의 인물은 너무 숭고하지 않은가. 하지만 실제로 사람들이 어느 순간에는 그렇지 않기도 하다. 그런 현실적인 모습을 담은 것이고, 배우들이 감독이 원하는 걸 잘 표현해 줬다.
멜로드라마로서 중점을 두고자 한 건 무엇인지.
자기신념을 지키기 위해 쫓기는 남자, 그를 숨겨주다가 사랑에 빠진 여자. 그들이 이별하고 여자는 혼자 살다가 남자가 출소하기 전에 죽는 이야기다. 스토리 자체는 너무너무 통속적인 스토리다. 하지만 사실 직접적으로 그렇게 표현하지는 않는다. 그러면서도 어떤 격한 감정을 만들어내는 게 우리 영화의 도전이었고, 재미있는 점이었다.
극중 현우가 밥을 먹다 우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는데, 촬영할 때 어땠나.
첫 날 찍은 건데, 두 테이크만에 오케이가 났다. 그 장면을 촬영할 때 어느 순간 짜릿한 감정이 느껴졌다.
마지막 장면, 한윤희가 등장하는 의미는 무엇인지.
이 영화의 주인공은 사실상 한윤희다. 영작이란 인물도 윤희로 인해 해방이 돼 변호사가 될 수 있었고, ‘바람난 가족’의 주인공이 된다. 현우 역시 갈뫼에서 윤희의 흔적을 통해, 죽은 한윤희에게서 살아갈 힘을 얻은 것이다. 그런 의미다. 또, 이 영화가 80년대를 살아온 어떤 한 화가의 일상에 대한 이야기라는 생각도 한다.
그 영작이 ‘바람난 가족’의 영작이라는 건 의도한 건지. 그리고 이 영화에 대한 젊은 층의 이해도는 숙제가 아닐지.
영화는 진지한 영화다. 내가 영화 만드는 방식은 진지하지만 지루하지 않게하는 것이다. 젊은 세대는, 사실 80년대를 구질구질하게 살았던 사람들의 아들 딸들이고, 그걸 상징하는게 바로 은결이다. ‘바람난 가족’을 찍을 때 영작이란 인물의 젊은 시절을 생각했었고 그게 잘 맞아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