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판에 새긴 자연의 언어
<생명, 그 나무에 새긴 노래> 남궁산 개인전
시원하게
뻗은 나무, 눈망울에 웃음 가득한 새, 편안한 달, 넘실거리는 산줄기, 앙증맞은 동백꽃, 또렷한 포도알…. 인사동 학고재에는 이 같은 자연물이
어울려 빚어내는 대화로 가득하다. 목판화가 남궁산의 ‘생명’ 연작시리즈 <생명, 그 나무에 새긴 노래>전이 열린 것이다.
생명의 대변자인 자연 통해 희망의 메시지를
남궁산은 97년부터 줄곧 ‘생명’을 주제로 목판화를 제작해 왔다. ‘생명’에 대한 그의 천착은, 반생명적인 것들이 인간의 삶 자체를 위협하는
현실에 맞서겠다는 작가적 의도에서 비롯되었다. 남궁산이 포착하는 생명 이미지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잊고
사는 까치, 개구리, 소나무, 동백꽃, 매화, 솟대, 나비, 나팔꽃 등의 자연물로 나타난다. 이들이 만드는 소박하고 정겨운 자연 풍경은
상실해 가는 자연과 그 속에서 피어나는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운다.
작가는 또한, 자연 풍경을 통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남궁산이 생명 연작을 시작한 97년은 IMF 원년으로 사회적으로
어두웠던 시기다. 그는 절망에 빠진 서민에게 위안을 주는 판화를 제작하기로 했다. 60여점 작품의 하나같이 밝고 명랑한 분위기는 작가의
이런 생각을 배경으로 한다.
작품에 빈번히 등장하는 새와 나무도 ‘희망’의 메시지와 연관되어 있다. 새와 나무는 예로부터 하늘과 땅의 매개자였다.‘솟대’의 의미도 마찬가지다.
땅의 염원을 하늘로 전달하는 새, 나무, 솟대는 결국 희망의 상징물이다. 새들이 눈웃음을 짓고 있는 것도 그들 자체가 희망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벽화, 민화, 단원, 혜원… 모두 스승 “판화가는 3차 서비스업”
남궁산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정서적 공감대는 긍정적 세계관의 표현에서만 오는 것은 아니다. 그의 판화에는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민족적
정서가 가득하다. 이것은 문화적 정체성을 찾고자하는 작가의 노력에 의한 결과이다.
미국 문화의 홍수 속에 전통 문화가 매몰되고, 문화의 국가적 경계는 점차 희미해지고 있는 시대. 어느 나라 미술관을 찾아도 똑같은 형식의
작품이 놓여있는 현실에 대해 남궁산은 문제를 느꼈다.
그는 주변국 작가로서 자신의 위치에 대해 고민했고 민족미술의 줄기를 이어나가기로 결심했다.
고구려 벽화와 민화,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고산자 김정호, 이름 모를 수많은 각수들이 모두 자신의 선배라고 남궁산은 말한다. 그는
특히 자신의 작품이 민화를 제대로 계승했다고 자평했다.
민화를 계승한 것은 색채나 도안 등의 형식적인 부분만이 아니다. 그는 민화의 ‘대중성’도 이어받았다. 미술가는 더 이상 고고한 예술가가
아니라고 남궁산은 토로한다.. “판화가는 3차 서비스업”이라고 강조하는 그는, 미술이 워낙 대중과 격리되어 있기 때문에 미술의 대중화에 대한
자신의 노력은 ‘미술운동’으로까지 명명되어질 수 있다고 했다. 판화를 대중의 생활과 밀착시키려는 그의 남다른 열의는 해마다 판화달력을 제작하고
책표지를 비롯한 본문 그림, 엽서그림 등 인쇄출판물에, 또한 <장서표>전과 같은 독특한 양식의 전시회를 통해 다방면으로 보여지고
있다
이번 전시에 맞춰, 남궁산의 판화와 함께 박남준, 안도현, 윤대녕, 이순원 등 문인들의 글을 실은 책 <생명, 그 나무에 새긴 노래>가
발간되었다. 전시는 9월 16일까지. 02-739-4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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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복사본의 원형생산자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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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춘옥 기자 http://www.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