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예결위서 '말 바꾸기' 논란 일어 진땀
홍남기 "초지일관 메시지 전달…말 번복 아냐"
[시사뉴스 김성훈 기자] 얼마 전 취임 1000일을 맞은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때 아닌 '말 바꾸기' 논란에 진땀을 뺐다.
지난 6일 열린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나라 곳간이 비어가고 있다"고 발언한 이후 다음 날 같은 회의에서 "한국 재정은 선진국에 비해 탄탄하다"고 언급했는데 이를 두고 말을 바꿨다는 지적이 나온 것이다.
이어진 8일 예결위 회의에서는 "정말 속상하다"며 "초지일관 메시지를 말씀드렸는데 말을 번복했다는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국민들은 이해할 것"이라고 논란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코로나19로 인해 곳간이 비어가는 것은 맞지만, 비슷한 상황의 외국에 비해 재정은 아직까지 탄탄하다는 게 홍 부총리의 주장이다. 이를 구체적으로 설명할 기회가 없어 오해가 생겼다는 것이다.
홍 부총리가 구체적 설명을 뺀 채 오락가락 발언을 하는 통에 문제가 됐지만, 실제로 우리나라의 재정건전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보다 양호한 상황이다. 하지만 코로나19를 겪으면서 국가채무가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인 점도 맞다.
이런 상황을 들어 전문가들은 가파른 국가채무 증가 속도를 늦추고 재정 건전성 측면에서 무리한 재정 투입을 줄여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9일 나라살림연구소의 '2022년 예산안 정량 분석' 자료에 따르면 내년 예산안 기준 우리나라의 통합재정수지(총수입-총지출) 적자 규모는 55조6000억원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통합재정수지 비율은 -2.6%로 집계됐다.
즉, 내년에도 세금으로 걷는 돈보다 나가는 돈이 많다는 뜻이다.
코로나19 극복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확장적 재정 정책을 지속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이 비율은 2020년(-3.7%)과 2021년(-4.4%)에 비해서는 작지만 2018년(1.6%), 2019년(-0.3%)보다는 크다.
그래도 전 세계 주요국과 비교해서는 재정수지가 건전한 수준으로 파악된다. 내년 예산안 기준 OECD 국가들의 GDP 대비 통합재정수지 비율은 평균 -6.0%로 우리나라보다 -3.4%포인트(p) 적자 폭이 크다.
주요 국가별로 보면 미국(-9.4%), 영국(-6.4%), 이탈리아(-6.4%), 프랑스(-4.8%), 일본(-4.0%) 순으로 적자 폭이 컸다. 우리나라보다 재정수지가 양호한 나라는 독일(-1.6%), 스웨덴(-1.6%) 등이다.
이 수치를 기준으로 할 경우 OECD 국가 가운데 우리나라의 재정건전성 순위는 11위이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2019년(20위)에 비해 높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재정 증감 규모는 액수가 아닌 증감률, 경상성장률·세입·재정수지 등의 재정지표, OECD 국가 등과의 공시적 비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며 "정부의 2022년 예산안은 확장적 성격을 띠고 있으나 정상 예산 증가율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이는 앞서 홍 부총리가 "한국 재정은 선진국에 비해 탄탄하다"고 진단한 이유이기도 하다.
반대로 "나라 곳간이 비어가고 있다"고 걱정한 근거도 있다. 내년 국가채무는 1068조3000억원으로 처음으로 1000조원을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현정부 들어 국가채무가 약 408조1000억원 늘어난 것인데 이는 노무현 정부(143조2000억원), 이명박 정부(180조8000억원), 박근혜 정부(170조4000억원)보다 큰 증가 폭이다.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도 올해 47.3%에서 내년 50.2%까지 치솟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어 2024년 53.1%, 2024년 56.1%, 2025년 58.8%까지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우리나라의 국가채무비율은 2011년 30%대에 진입한 이후 지난해까지 줄곧 30%대를 유지해왔다. 이에 비하면 최근 국가채무비율 상승 속도는 매우 가파른 수준이다.
실제로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Fitch)도 지난 7월 국가신용등급 평가에서 우리나라의 국가채무 증가가 재정 운용상 위험 요인이 될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당시 피치는 보고서에서 "위험 전개는 재정 지출에 따른 생산성과 잠재 성장률 제고 효과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에 정부는 2025년부터 국가채무비율을 GDP의 60% 이하, 통합재정수지 적자를 3% 이하로 관리하는 한국형 재정준칙 도입을 추진 중이지만 아직 법제화 단계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재정준칙을 도입하고 코로나19 극복 과정에서 커진 재정 의존도를 서서히 낮춰가야 한다고 말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재정으로 모든 걸 해결한다고 접근해서는 곤란하다"며 "내년 예산안에도 여러 사업을 통해서 지출 규모 규모가 커지는 쪽으로만 가고 있는데 관리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재정준칙을 강화해 총량을 관리해야 하고 개별 사업들의 경제성 평가를 강화하는 노력도 필요하다"며 "이와 함께 기존 사업들의 구조 정리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