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뉴스 김정기 기자] 김태규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이 지난 7일 페이스북 게시글을 통해 전현희 위원장을 직격했다.
김 부위원장은 SNS에 '늘공(판사)으로 살아온 자신이 어공(정무직)으로 지낸 경험'을 담담하게 작성하며, 말미에 정무직에 대한 자기 소신을 덧붙였다.
'정무직은 임명과정에서 (정권의) 철학과 가치관을 공유' 해야 하다는 것. 김 부위원장은 '현정권이 아닌 전 정권을 추종한다면 국민이 선거를 통해 보인 선택을 배신하는 것이 된다’는고 주장했다.
이어 김 부위원장은 ‘구성이 혼재되어 있으니 소속 공무원의 태도도 어정쩡하기는 마찬가지’라며 ‘1년 예산 약 950여억원을 쓰는 권익위가 촌음을 다퉈 국민이 요구한 과제를 수행해야 하나 구조적으로 가능할 리가 없다’ 적었다.
김 부위원장의 글은 현재 임기가 올 6월인 전 위원장이 새정부가 출범했음에도 '임기 보장'을 주장하며 사퇴를 거부하는 상황과 맞물려 '내부에서 직접 사퇴를 요구하는 모양새'로 해석 새로운 국면을 맞이 할 것으로 보인다.
김 부위원장은 지난 10월 윤석열 정부가 임명했으며 울산지법 부장판사 재직시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판’하는 등 ‘미스터 쓴소리’로 불렸다.
다음은 김태규 부위원장의 게시글 전문이다.
국민권익위에 투입된 지 두 달 보름 정도가 지나갔습니다. 법원에서 '늘공'으로 오랫동안 일했지만, 그래도 정부 공무원으로 그것도 정무직 공무원으로 일하는 경험은 전혀 새롭습니다. 여전히 미숙하고 아쉽게 느껴지는 구석이 많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국민의 ‘고충처리’가 소관 업무이다 보니 관련 국가기관과 다수당사자의 이해를 조율하는 것이라 다소 법원의 사건 해결과 유사한 구석이 있다는 점입니다.
의미 있는 결과도 보았습니다. (1) 전 정부에서 환경단체의 저항을 의식한 탓인지 그동안 미온적으로 대응해 오던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설치 건을 조정으로 원만하게 해결하였습니다. (2) 신한울 3·4호기의 건설에 꼭 필요한 죽변비상활주로 폐쇄의 건도 조정으로 해결하였습니다. 조정회의장에 계란이 날아드는 불상사는 있었지만, 국가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사안이라 조정으로 마무리하였습니다. (3) 그 밖에도 안동 아파트 진출입로 건설의 건, 인천 한센인 정착촌 철거 철회의 건, 하남시 ‘빛 공해’의 건 등 많은 민원을 조정으로 해결하였습니다. (4) 섬진강 댐 수몰민 생계 대책 마련의 건도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결과의 뒤에는 뒤숭숭한 조직의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성실히 일한 권익위 조사관들과 많은 직원의 노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정무직 공무원의 구성에 신·구정권의 인사가 뒤섞이면서 조직이 어정쩡한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현실입니다. 굳이 아니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희망을 말하는 것이거나 현실을 기만하는 것입니다. 정무직이란 그 임명과정에서부터 철학과 가치관이 고려되는데 정반대의 가치관을 가진 구성 분자가 한 조직안에 있으면서 그 조직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면 당연히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전 정부의 정무직이 윤석열 정부의 성공과 정권의 재창출을 기대하고 있다고 믿기 쉽지 않고, 현 정부의 정무직이 문재인 정부의 철학과 가치관을 추종한다면 그것은 국민이 선거를 통해 보인 선택을 배신하는 것이 됩니다.
정무직의 구성이 혼재되어 있으니 소속 공무원의 태도도 어정쩡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국민의 공복으로 임명된 관료 본연의 직분에 충실한 것이 대부분 공무원의 입장이라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들에게 하나의 대오로 신바람 나게 일하라고 요구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국민의 선택으로 세워진 윤석열 정부의 공무원인지, 전 정부 정무직 공무원의 부하직원인지, 모호한 지위에서 지속하여 갈등하면서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권익위의 1년 예산이 약 950억 원이고, 아마 다른 위원회 부처의 예산도 만만치는 않을 것입니다. 국민의 혈세를 허투루 쓰지 않으려면 부처 공무원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국민이 새로운 정부에게 요구한 과제를 촌음을 아껴 수행하여야 할 텐데, 현재로서는 그게 구조적으로 가능할 리가 없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현 정부의 독임장관(獨任長官)형 부처가 아닌 위원회(委員會)형 부처가 모두 공통되게 가지고 있는 문제로 보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여야 모두 알기에 대통령의 임기와 위원회 정무직의 임기를 일치시키는 법률안이 제안되었지만, 쉽게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법이 그러하니 법대로 하겠다’라고 한다면 그 역시 존중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위원회형 부처의 전 정부 임명 정무직들이 오직 법의 준수만을 이유로 하여 그 자리를 지키려는 것인지에 관하여는 다양한 의문들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런저런 썰과 분석이 떠돌지만, 굳이 언급하거나 의미를 두지는 않겠습니다.
현행법이 만들어질 당시만 하더라도 정무직 공무원은 정권이 교체되면 의당 사직하는 관행이 있었던 듯합니다. 그러니 큰 고민 없이 법을 만들었을 겁니다. 이제 새로운 문제점이 부각(浮刻)되었으니, 개인적 용단과 관련된 입법을 통하여 문제를 푸는 것이 국민의 선택을 존중하는 현명한 방법으로 사료됩니다.
전 정부의 정무직이든 현 정부의 정무직이든 모두 국민의 필요에 따라 사용되는 단순한 용기(用器)에 지나지 않습니다. 국민의 선택과 뜻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국민에 대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지키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이상이 국민권익위원회에 투입되어 적응기를 거치고 있는 저의 짧은 그간의 소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