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이화순 칼럼니스트] 21세기를 주도하는 미술 현상이 ‘융합형 미술’이라고 한다면, 설치미술가 심영철(수원대 명예교수)은 독자적 위치를 점하고 있다. 특히 1993년 ‘일렉트로닉 가든’을 발표한 이후 그는 국내 미디어 아트 분야에서 주목받는 작가로 부상했다. 이후에도 ‘정원’(garden) 시리즈를 통해 작가는 자연과 인간, 예술과 과학기술의 공존, 공생을 강조하는 메시지를 어필했다.
심영철 초대개인전 ‘댄싱 가든(Dancing Garden)’전(선화랑, 29일까지)은 40년간 주력해온 심영철의 미디어아트와 설치미술이 함축적으로 담긴 전시이다.
“이번 전시는 그동안 해온 모든 작업을 정리하고 작가로서의 삶을 완전히 새롭게 시작하는 중요한 전시”라는 심영철은 “전시 이후 독일에서 제2의 작가 인생을 시작하려 한다”고 밝혔다. 또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이어 베를린에서도 적당한 작업 공간을 얻을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벚꽃을 주요 소재로 생명의 신비로운 에너지와 상상력 가득한 상징체계를 연출하는 한편, 고려청자, 그림자 산수, 흙, 물 등 한층 한국적이며 사유적인 새로운 작품세계를 펼쳤다. 층별 전시장에는 네 개의 소주제로 녹아드는 스토리텔링이 들어있으며, 거기에 걸맞는 색다른 향기와 사운드가 오감을 자극해 관객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세상 속 벚꽃은 졌지만 ‘댄싱 가든’ 속 벚꽃은 눈부시게 만개해 꽃비를 뿌린다. 1층에서 관람객의 호평을 받는 또다른 포인트는 관객이 작품과 상호 교감하며 주인공이 되도록 만들어 주는 인터렉티브 아트(interactive art)라는 점이다.
관람객은 이번 전시를 통해 심영철의 작품 세계의 일관된 주제인 자연 환경의 문제, 신과 인간의 문제, 관계 및 소통, 사랑 등에 대한 작가의 메시지를 읽게 된다. 또 아트 힐링의 실체를 접하게 되며 자연스럽게 영혼의 휴식, 사랑의 속삭임도 느낄 수 있다. 또 설치작가이면서 테크놀로지, 미디어 아티스트인 심영철 작가의 다채로운 예술세계도 맛볼 수 있다. 오랫동안 이중 현실(Dual Reality)를 추구해 온 작가의 예술관을 살펴볼 수도 있다.
전시를 통해 멀티미디어를 한 편의 교향곡처럼 펼쳐 보이면서 관객에게 치유와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는 작가는 1층 ‘꽃비 정원’, 2층 ‘흙의 정원’, 3층 ‘물의 정원’, 4층 ‘하늘 정원’을 보여준다. 다채로운 곳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하는 오늘날 예술과 기술의 융합, 미디어아트와 설치미술의 미래를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1층의 '꽃비 정원'은 벚꽃이 비처럼 흩날리는 영상이 전시장에 전방위로 투사되는 거대한 인터렉티브 공간이다. 천장에는 자개로 만든 벚꽃들이 봄 향기를 뿜으며 매달려 있고, 바닥에는 벚꽃 형상의 거대한 거울 방이 자리한 채 인피니티 이미지를 관객에게 선사한다.
2층의 ‘흙의 정원’(Soil Garden)은 자연이 자리한 공간이자, 역사적 전통을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 새롭게 해석하는 공간이다. 수많은 흰색 스테인리스 스틸 볼로 표현된 10m ‘그림자 산수(Shadow Sansu)’가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 앞에는 벚꽃이 새겨진 몸체 안에서 빛이 새어나오는 2m 높이의 거대 청자 ‘빛의 도자기(Ceramics of Light)’가 흙 속에 우뚝 서 있다. 전시장 한쪽에는 작가의 이전 작업 아카이브를 살펴볼 수 있는 ‘VR 아카이브(VR Archive)’가 영상에 담겨있다.
3층 '물의 정원'(Water Garden)은 신성한 생명수를 상징하는 물의 공간이다. 검은색 물이 채워진 커다란 수조 안에 스테인스 스틸로 만들어진 대형 꽃 3개가 자리해 있다. 분홍, 노랑, 그리고 뼈대와 수술만 남은 꽃 옆엔 물방울 모양의 유리 오브제가 여기 저기 매달려 있다.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침묵을 깬다. 물의 정원은 꽃의 몸체를 빠져나온 여러 색상의 빛이 전시장 주변을 환상적인 공간으로 물들이는 동안, 간헐적으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침묵을 깬다.
4층 하늘 정원(Sky Garden)은 이상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곳이다. 그곳에는 황금빛 원형 스테인리스 스틸 판들로 만들어진 한 쌍의 연인이 가느다란 와이어에 몸을 의지한 채 서로 입맞춤을 한다. 아담과 하와 같기도 하고, 견우와 직녀 같기도 하다. 창조주를 배신했던 인간이 신(神)과 화해하는 사랑의 공간이기도 하다.
심영철과 '가든' 연작
‘열정과 낭만의 작가’로 통하는 심영철은 미국 유학 이후인 1980년대 말 미디어 아트와 설치미술의 조형 언어를 실험한데 이어, 테크놀로지와 예술을 접목한 미디어아트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1993년 ‘일렉트로닉 가든(대전엑스포)’은 당시 그룹전에서 돋보이는 작품으로 손꼽히면서 미디어 아트 분야에서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2002년 ‘환경을 위한 모뉴멘탈 가든(인사아트센터)’, 2009년 ‘시크릿 가든(선화랑)’, 2012년 ‘매트릭스 가든(한국미술관)’, 2014년 ‘블리스플 가든(제주현대미술관)’ 등 정원 시리즈의 설치와 미디어 작업을 발표해왔다. 작가는 미국 유학 이후인 1980년대 말부터 미디어 아트와 설치미술의 조형 언어를 실험하며 한국미술의 현장에서 테크놀로지와 예술을 접목한 미디어 아트 분야에서 선도적 역할을 견인했다.
심영철의 ‘가든’은 연작의 뿌리는 성경 속 에덴동산이다. 하지만 작품 속 '가든'은 완벽하지만 실제로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 인간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현실화된 유토피아’를 의미한다.
심영철 작가는 토탈미술상(1994), 한국미술작가상(2001,) 석주미술상(2007) 등을 수상하며 미술계에서 이름을 알리고 실험적인 작품과 전시를 개최해왔다. 2018년 한국여류조각회 회장직을 맡을 당시 여류조각회의 창립 45주년 기념전을 이끌며 전시수익금을 미혼모 돕기 기부 운동에 앞장서기도 했다.